ADVERTISEMENT

[Focus 인사이드] “김정은, 희망과 좌절로 보낸 2019년…새로운 도전은?"

중앙일보

입력

Focus 인사이드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당초 2019년을 자랑스럽고 기대에 가득 찬 한 해를 보내려고 했을 것이다.

“희망의 꿈을 안고 2019년 맞이” #‘병진노선’ 성과 기대도 가져봐 #하노이 북·미 정상 '노딜' 회담 #핵무력 강화 ‘항미전선’ 결집하나

실제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희망의 꿈을 안고 2019년을 맞이한다"고  신년사에서 밝혔다. 그는 2018년이 '자주노선과 전략적 결단'에 의해 대내외 사업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고, '사회주의 건설'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역사적인 해'였다고 자평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 간부들과 함께 군마를 타고 백두산을 등정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 간부들과 함께 군마를 타고 백두산을 등정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올 초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선 생각보다 손쉽게 북·미 정상회담(싱가포르 정상 회담)이 성사됐고, 동시에 2차 정상회담(하노이 정상회담)조차 예정된 상황이었다.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 남북교류 협력에 대한 기대는 한껏 올라갔다. 특히 남북 군사회담을 통해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전략자산 이동 및 배치, 한국의 여타 군사활동(훈련, 신규무기 도입 등)을 제한할 수 있는 토대도 마련한 것으로 북한은 판단했다.

김정은 정권이 '병진노선'의 승리에 기반을 둬 그들의 혁명을 드높이고, 사회주의 전진 속도를 계속 높여 나가는 데 전략적 우위를 갖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고 강조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에 기초해 김정은 위원장은 '자력갱생의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진격로를 열어나가자'는 2019년 구호를 제시했다. 대내적으로 2019년의 '새로운 진격로'는 병진노선에서 경제발전 우선 노선에 초점을 맞춘 듯했다. 2019 신년사에서도 경제발전 문제를 가장 앞세워 강조한 것이 이를 말해 준다.

2019년 2월 1일 북한이 김정은의 신년사를 반영해 발행한 우표의 모습. [사진=우리민족끼리 홈페이지]

2019년 2월 1일 북한이 김정은의 신년사를 반영해 발행한 우표의 모습. [사진=우리민족끼리 홈페이지]

대남 차원에서도 그들의 '새로운 진격로'의 방향을 제시했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 사이의 교류와 협력을 전면적으로 확대 발전해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공고히 하면서 겨레가 남북관계 개선의 덕을 실제로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개성공단 사업 및 금강산 관광 사업 재개도 강력히 주문한 듯했다.

이를 위해 외세의 개입을 단호히 배격하고 '우리 민족끼리' 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세와의 합동군사연습'도 '외부로부터 전략자산을 비롯한 전쟁장비 반입'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대미 관계 차원에서도 그들의 '새로운 진격로'를 제시했다. 먼저 그들은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완전한 비핵화'로 나가고자 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임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하고 여러 가지 관련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왔다고 천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언제 어느 때고 다시 대좌할 준비가 돼 있다고도 했다. 이같이 김정은 정권은 대미 관계 개선을 통한 정치·군사적 목표 달성 추구에 대한 강한 기대를 갖고 2019년을 시작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아무 성과 없이 끝나게 되자 김정은 정권은 지극히 곤혹스럽게 됐다. 2019 신년사에서 보여줬던 자신감과 희망 가득 찬 메시지는 김정은 정권에 대한 실망감으로 되돌아갈 수 있어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월 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월 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위원장은 보무도 당당하게 장장 60여 시간 열차를 타고 하노이를 찾았는데 아무 성과도 없이 빈손으로 되돌아 왔다는 것은 '수령 무오류'의 북한 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실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핵무장 선언 이후 한껏 자랑해 왔던 그들의 '전략적 결단'의 '승리'에 따른 김정은 정권의 치적 주장도 결국 허장성세가 돼버렸다. 말 위기에 빠져 버렸기 때문에 만회할 방도를 찾지 않으면 안 됐을 것이다. 그것이 곧 그들이 내세운 '새로운 길'일 수 있다.

2019년 신년사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이 "세계 앞에서 한 자기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 하여 미국을 압박할 수도 있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김정은 정권의 '새로운 길'은 비핵화 대화를 중단하고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무위로 돌리면서, 핵 무력 강화를 통한 그들의 전략적 지위를 높여 미국을 인위적으로 움직여 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북한 당국은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 측의 요구(선 실질적인 비핵화, 후 보상)를 강하게 비난하면서 북·미 회담을 거부하는 태세를 유지했다. 이에 더해 북한은 군사적 행동으로 미국과 한국을 위협했다. 각종 단거리 미사일과 방사포 등을 시험 발사함으로써 한·미를 긴장시켰다.

7월 26일 '북한판 에이태킴스'로 불리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표적을 향해 비행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7월 26일 '북한판 에이태킴스'로 불리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표적을 향해 비행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연말을 시한으로 장거리 미사일(ICBM) 발사를 예고하는 듯한 군사적 움직임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크리스마스 선물론’이 초미의 관심을 끌었지만, 아무 일 없이 끝났다. 2019년 한해는 한국과 미국을 위협하는 기만적 전술에 초점을 맞추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당국에 대한 비난 포화도 주로 외부를 대상으로 한 보도 행태를 보였다.

실질적으로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심각한 군사적 긴장 상태에 돌입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빤하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관련 보도를 통해 대비 태세를 유지하도록 해야 할 것이나,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같은 파장이 큰 도발은 대외적 이목이 쏠릴 때보다는 관심이 느슨해질 때 갑자기 감행하는 경향이 강했다. 도발 움직임을 일부러 노출해 대내외적 목적에 필요한 긴장 조성에 치중하는 때가 허다했다. 2019년 말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도발 위협 행태도 같은 맥락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도발은 반드시 감행된다는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내일이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여부는 2020년 전 기간을 달구게 될 이슈가 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사실상 김정은 정권은 2021년이면 10년 집권기를 맞게 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북한에서는 꺾어지는 연도를 정주년이라고 해서 중요하게 활용한다. 10년 집권을 기점으로 최고 지도자의 '위대성'을 고양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김정은 정권의 정통성을 새로이 다지고자 할 것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이틀째 진행된 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를 직접 주재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30일 보도했다. 사진은 이날 조선중앙TV가 보도한 이틀째 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이틀째 진행된 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를 직접 주재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30일 보도했다. 사진은 이날 조선중앙TV가 보도한 이틀째 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를 위한 대내적 준비도 착착 진행되는 움직임을 보였다. 지난 5일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의 백두산 군마 등정 보도를 내놓았다. 일제에 맞서 싸운 '항일 빨치산'의 정신을 본받아 '백두혈통 체제'를 과시했다.

여기에서 '항일'이 아닌 '항미' 전투에서 승리로 이끌어 나가는 김정은 위원장의 지도력을 부각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이 부인 이설주와 조용원 당 제1 부부장, 박정천 총참모장 등 당 군 고위 간부들과 함께 모닥불에 손을 쬐는 모습의 사진도 공개했다. 김일성 주석이 부인 김정숙, 그리고 '항일빨치산'들과 모닥불을 쬐면서 '항일의지'를 불태웠다는 그들의 정치적 선전과 같이 김정은 위원장의 '대미 항전 의지'를 함께 다지는 지도자상을 내비추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 간부들과 함께 군마를 타고 백두산을 등정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백두산 천지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 간부들과 함께 군마를 타고 백두산을 등정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백두산 천지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이 백두산 군마 등정과 백두산 지구 혁명 전적지 시찰 과정에서 '제국주의자들의 전대미문의 봉쇄책동 속'에서 '자력부강, 자력번영의 노선을 생명으로 틀어쥐고 자력갱생의 불굴의 정신력으로 사회주의 부강 조국 건설에 총매진 할 것'을 강조한 내용을 보도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행정적으로 백두산을 포함한 삼지연군을 시로 승격하면서 '백두혈통'의 성지를 재구축하려고 한다. 삼지연 시 재구축의 2단계 공사가 준공됐고 3단계 마무리 공사를 내년에 마칠 수 있도록 재촉할 전망이다.

이에 더해 북한의 '항일 빨치산' 신화는 무력 투쟁을 기본으로 하는 바, 김정은 위원장의 군사 지도력 제고에 중점을 둔 현지 지도 또는 군사 활동에 집중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남북접경 창린도 방어 부대를 시찰하고, 해안포 사격을 지시한 과감한 행보를 보였다. 초대형 방사포 등 잇따른 무기의 발사를 김정은 위원장의 지도력으로 꼽았다. 백두산 군마 등정 보도에 이어 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를 열어 '당의 군사전략적 기도에 맞게 새로운 부대를 조직하거나 확대 개편하는 문제'를 토의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군사 관련 '새로운 길' 선택을 암시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북한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2일 차 회의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은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나라의 자주권과 안전을 철저히 보장하기 위한 적극적이며 공세적인 조치”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더 과감한 대결적 대미안보 태세를 견지하겠다는 뜻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대외사업부문’에서는 ‘항미전선’ 결집을 위한 공격적 대미·대외정책을 비타협적으로 전개하고자 할 것이며, ‘군수공업 부문’에서는 지속적인 각종 무기개발을, 그리고 ‘무장력 부문’에서는 핵무력 강화를 위한 공격적인 군사 지도력을 과시하고자 할 것이다. 이 같은 김정은 위원장의 군사 지도력 제고를 보여주는 군사활동이 2020년엔 단순 시험 과시가 아닌 실질적인 군사 도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우리의 고민거리다.

정영태 북한연구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