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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수 끝 대상 박나래…중년 남성 중심 예능 세대교체 이끌어

중앙일보

입력

29일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박나래가 울면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 MBC]

29일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박나래가 울면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 MBC]

“올해는 박나래가 받았으면 좋겠다.”(유재석)
29일 ‘MBC 방송연예대상’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박나래(34)의 대상을 기원했다. 2017년 ‘나 혼자 산다’로 처음 대상 후보에 오른 이후 3년 연속 ‘유력 후보’로 점쳐져 온 그가 트로피를 거머쥘 수 있기를 바란 것이다. 유재석뿐만 아니라 다른 후보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김구라는 “대상이란 게 받을 사람이 받아야 하고, 주면서 표도 나야 하고, 받아야 할 때도 있다”며 “올해 이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것은 박나래와 유산슬뿐”이라고 아예 못을 박았다.

‘나 혼자 산다’ ‘구해줘! 홈즈’로 MBC 대상 #“키 작아 높이 못가…낮은 자세로 임할 것” #‘농염주의보’ 등 스탠드업 코미디도 도전 #무명 함께 견딘 안영미·장도연 등과 전성기

이 같은 분위기에 시종일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박나래는 본인의 이름이 호명되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3수 끝에 수상에 성공한 그는 “솔직히 이 상은 제 상이 아니라 생각했지만 너무 받고 싶었다. 나도 사람이니까”라고 소감을 밝혔다. 연예계 대표 단신인 그는 “키가 148cm라 항상 바닥에서 위를 우러러보는 게 행복하다”며 “어차피 키가 작아서 높이도 못 가지만 항상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고 덧붙였다. 공약으로 뽑은 코끼리 코를 돌며 끝까지 망가짐을 주저하지 않았다.

콩트와 토크 다되는 멀티 개그우먼

‘나 혼자 산다’에서 조지나로 활약한 박나래.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였다. [사진 MBC]

‘나 혼자 산다’에서 조지나로 활약한 박나래.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였다. [사진 MBC]

2006년 K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해 올해로 14년 차가 된 박나래의 수상은 본격적인 세대교체를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지난해 데뷔 27년 만에 MBC와 KBS에서 여성 최초 2관왕에 오른 이영자나 SBS 수상자인 이승기를 제외하면 지난 10여년간 방송 3사 연예대상은 40~50대 중년 남성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KBS2 ‘해피투게더’의 신동엽(2002년)이나 유재석(2005), SBS ‘스타킹’의 강호동(2008)이 처음 대상을 받을 때만 해도 모두 30대였지만 이들의 3강 체제가 공고하게 유지되면서 젊은 피가 수혈되기 어려운 구조였다.

하지만 박나래는 선배 개그우먼들과 달리 정면 승부를 펼치며 이를 돌파해 나갔다. KBS2 ‘개그콘서트’와 tvN ‘코미디빅리그’에서 다져진 콩트와 분장 실력을 버라이어티에서도 십분 활용했다. ‘나 혼자 산다’에서도 집 안에 설치된 ‘나래 바’로 사람들을 초대해 일상을 낱낱이 공개하는 동시에 조지나ㆍ나래 바르뎀ㆍ나래코기 같은 새로운 캐릭터를 꾸준히 탄생시켰다. 전현무ㆍ한혜진 등 기존 멤버들의 빈자리를 채우는 진행자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플레이어로서 본분을 잊지 않은 것이다.

지난 3월 론칭한 ‘구해줘! 홈즈’에서 2MC를 맡고 있는 박나래와 김숙. [사진 MBC]

지난 3월 론칭한 ‘구해줘! 홈즈’에서 2MC를 맡고 있는 박나래와 김숙. [사진 MBC]

올 3월 론칭한 ‘구해줘! 홈즈’에서도 이러한 적극성이 돋보였다. 각각 복팀과 덕팀 팀장을 맡은 박나래와 김숙은 오랜 자취 및 이사 경험을 살려 직접 현장을 돌아다니며 꼼꼼히 매물을 살폈다. 스튜디오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발로 뛰며 살아있는 정보 전달에 앞장선 것이다. MBC 역시 자사 예능 중 유일하게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나 혼자 산다’에 ‘올해의 예능 프로그램상’ 등 8관왕을 몰아줬지만, 최우수상 4명 중 3명(김숙ㆍ노홍철ㆍ양세형)을 ‘구해줘! 홈즈’에 안기면서 빠르게 신규 프로를 안착시킨 공을 인정했다.

“스스로 방송용 아니라 생각해 겁먹기도”

KBS 공채 개그맨 선후배 사이로 오랜 무명 시절을 함께 견딘 안영미(36)와 장도연(34)도 박나래의 수상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수위 높은 발언과 개그로 ‘비방용’ 취급을 받던 이들은 시대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2017년 시작한 팟캐스트 ‘안영미의 귀르가즘’으로 “올바른 성문화 정착에 앞장서겠다”고 나선 안영미는 2007년 론칭 이래 금녀의 구역으로 여겨진 ‘라디오스타’의 첫 여성 MC 자리를 꿰차며 활약했다. 유혹의 기술을 설파해온 박나래는 지난 10월 넷플릭스 오리지널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로 스탠드업 코미디 열풍을 불러오기도 했다.

2015년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안영미, 박나래, 장도연, 이국주. [사진 MBC]

2015년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안영미, 박나래, 장도연, 이국주. [사진 MBC]

이날 우수상을 받은 안영미는 “스스로 방송용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많이 겁먹고 있었는데 먼저 손 내밀어주시고 사람 만들어주신 송은이ㆍ김숙 선배님께 너무 감사하다. 정말 어머니 같은 분들”이라며 큰절을 올렸다. “25년 만에 처음 MBC 시상식에 왔다”는 김숙이나 “다섯 계단 올라오는 데 13년 걸렸다”는 장도연(베스트 엔터테이너) 등 여성 예능인의 활약과 연대가 두드러진 한해이기도 했다. ‘전지적 참견 시점’의 송은이까지 2년 연속 최우수상을 받자 MC 전현무는 “오늘 진짜 셀럽파이브 잔칫날”이라며 감탄했다.

이 같은 여풍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박나래는 올해만 반짝한 게 아니라 지난 3년간 꾸준히 활약해 왔다. 위기에 처한 ‘나 혼자 산다’를 끌고 가는 동시에 넷플릭스 등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도전을 병행하며 성장 서사를 보여줬다”며 “여성 예능인층이 두터워진 것도 프로그램 다양화를 이끄는 데 일조했다”고 분석했다. 앞서 SBS는 9년째 ‘런닝맨’을 이끌어온 유재석, KBS는 6년째 방영 중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아빠들(샘 해밍턴ㆍ박주호ㆍ문희준ㆍ홍경민ㆍ도경완)에게 대상을 안겨 ‘안일한 선택’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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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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