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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110개국 외국인 귀화 20만명 돌파… "대한민국은 축복의 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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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지구촌 110개국에서 귀화한 '새 한국인'들의 얼굴과 직업은 다양하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우미다(우즈베키스탄·의료 코디네이터)씨와 아들, 데이비드 린튼(미국·변호사), 박아름(몽골·다문화 강사), 정제한(네팔·의사)씨와 딸, 도은아(베트남·상담팀장), 로이 알록 꾸마르(인도·교수).

지구촌 110개국에서 귀화한 '새 한국인'들의 얼굴과 직업은 다양하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우미다(우즈베키스탄·의료 코디네이터)씨와 아들, 데이비드 린튼(미국·변호사), 박아름(몽골·다문화 강사), 정제한(네팔·의사)씨와 딸, 도은아(베트남·상담팀장), 로이 알록 꾸마르(인도·교수).

외국인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귀화 사례가 지난 11월 20일 기준으로 사상 처음 20만명(누적 기준)을 돌파했다. 1957년 당시 대만 국적자 손일승씨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9년 만에 최초로 귀화한 것을 기준으로 보면 62년 만에 20만배 증가했다.
 외국인의 귀화는 2000년까지 연평균 33명에 불과했다. 2000년까지 1494명이던 누적 귀화자 수는 2011년 1월 10만명을 돌파했고, 연평균 1만명 이상 늘더니 불과 8년 만에 20만명을 넘었다. 귀화 신청자는 2014년 1만4331만명에서 지난해 2만2153명으로 약 55% 급증했다. 귀화 허가율은 65% 정도다.
 그렇다면 과연 지구촌 몇 개 나라 외국인들이 한국인으로 귀화했을지 궁금해 법무부의 통계를 따로 찾아봤다. 무려 110개국이나 됐다. 2020년 창립 75주년을 맞는 유엔 회원국 숫자(193개국)를 고려하면 대한민국이 또 하나의 '민간 유엔'을 품은 셈이다.

누적 귀화자 현황

누적 귀화자 현황

 한국의 선진 인프라와 복지 혜택에 편승하기 위해 동남아 등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한국으로 몰려온다는 선입견과 달리 스위스·스웨덴·덴마크·네덜란드·독일·프랑스·미국·일본 등 선진국 사람들이 상당수 포함된 것도 의외였다.
 실제로 네덜란드 출신 30대 여성 귀화자는 한국인 배우자를 만나 결혼해 두 자녀를 출산했다. '북유럽 복지 천국' 스웨덴의 30대 남성도 유학 시절 크리스마스 때 한국 여성을 만나 2011년 한국 전통혼례를 치렀다. 덴마크 출신 남성은 "사랑하는 사람의 나라 한국을 사랑한다"며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미국 출신 킷스 샤켓 전 제일은행 부행장은 "마늘과 청국장도 잘 먹는다. 한국에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 귀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스위스 국적 남성의 10대 딸도 엄마의 나라인 한국을 선택했다.
 물론 한국에서 불법체류 등의 문제로 인해 '외국인 혐오'가 생길 정도로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2016년 21만명이던 불법체류자는 지난 10월 말 38만명으로 급증했고, 연말까지 40만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하지만 까다로운 심사 절차를 거친 합법적 귀화자들은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대한민국의 부가가치를 높이는데 묵묵히 역할과 기여를 하고 있다. 지난 18일 법무부에서 모범 귀화자 선정 및 축하 행사가 열렸다. 국민의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진행되는 동안 이들의 표정이 매우 진지했다. 4명의 귀화자는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경례하고 애국가 1절을 또박또박 불렀다.

법무부가 선정한 모범 귀화자들과 가족, 지인들 엄숙한 표정으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법무부가 선정한 모범 귀화자들과 가족, 지인들 엄숙한 표정으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모범 귀화자 4명이 법무부가 수여한 기념패를 들고 가족, 지인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모범 귀화자 4명이 법무부가 수여한 기념패를 들고 가족, 지인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2014년 귀화한 네팔 출신 정제한(48·라제스 찬드라 조시)씨는 경북 경주 시립노인전문병원에서 가정의학과장으로 일하는 의사다. '행복을 나누는 의사'가 되겠다는 각오로 노인 환자들을 세심하게 진료한다. 그는 "서울대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가정과 직업을 한국에서 얻었다. 나에게 축복의 땅인 이 나라에 더 도움이 되는 국민이 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베트남 호찌민 출신인 도은아(36·도티 탄 응아)씨는 초등생 쌍둥이 엄마다. 2009년 귀화한 그는 경기도 부천 이주민 지원센터에서 상담팀장으로 일한다. 국내에 체류 중인 이민자들의 한국 사회 적응을 돕고 취약 계층의 복지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그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빨리빨리'라는 단어 등 문화 차이 극복이 힘들었다"며 "인내심과 성실이 한국인의 강점이라면 돈만 보고 사는 듯한 것은 단점 같다"고 말했다.
 귀화 한국인의 생각을 좀 더 자세히 들어보기 위해 법무부 국적과 송소영 과장(변호사)의 추천을 받아 귀화자 6명을 인터뷰했다.
 미국 출신 데이비드 린튼(48) 변호사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강점은 유능하고 기지가 넘치는 한국 사람들이다. 반면 가장 큰 약점은 국가의 과도한 규제로 인해 한국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제한이 가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한국인이 되면서 소득세율이 거의 두배가 됐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의료코디네이터로 일하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우미다(39)씨는 한류 드라마 '겨울연가'를 보면서 한국을 알게 됐고 의사인 남편과 2005년 결혼했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와 이후 대통령 선거에 꼭 투표하겠다"는 그는 "앞으로 해외여행을 하면서 강력해진 한국 여성의 파워를 직접 느껴보고 싶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명의 어린이집에서 다문화 이해 교육 강사로 일하는 도야르(39·박아름)씨는 몽골 출신으로 초등생 아들·딸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 엄마로 불리고 싶어 부모님 반대에도 귀화했다"며 "아들이 18세 될 때 병역 의무가 생기더라도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 언론인 출신 알파고 시나씨는 한국어로 '세계 독립의 역사'를 펴낼 정도로 지식을 갖췄다. 한국인과 결혼한 그는 최근 방송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터키 언론인 출신 알파고 시나씨는 한국어로 '세계 독립의 역사'를 펴낼 정도로 지식을 갖췄다. 한국인과 결혼한 그는 최근 방송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연세 세브란스 암병원 폐암센터에서 신약을 연구중인 중국 교포 3세 출신 의학도 신춘봉 연구원 "폐암 연구의 선두주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한국은 절대 살기 어려운 나라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연세 세브란스 암병원 폐암센터에서 신약을 연구중인 중국 교포 3세 출신 의학도 신춘봉 연구원 "폐암 연구의 선두주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한국은 절대 살기 어려운 나라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연세 세브란스 암병원 폐암 센터에서 일하는 신춘봉(34) 박사과정 연구원은 중국 교포 3세다. 그는 "해외 학술회의를 많이 다녀야 하는데 한국 여권은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와 무비자 또는 간소화 비자여서 여행 다니기가 아주 편리하다"고 말했다.
 귀화자들은 한국인들에게 다문화에 대한 포용, 열린 국제주의가 더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광주광역시 국제협력담당관실에서 근무하는 김혜문(51) 주무관은 "중국 출신인데 지역감정을 느낄 때 귀화를 후회한 적이 있다. 귀화 외국인을 학연·지연·혈연과 무관하게 오직 능력에 따라 평등하게 대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로이 알록 꾸마르(64) 부산외국어대 인도학부 교수는 1980년 한국 정부의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된 이후 31년의 준비 끝에 2011년 10만 번째 귀화자가 된 인도 출신이다. 그는 " 한국 사회가 단순히 다인종을 받기보다는 글로벌 인재를 수용해 내·외국인 차별이 없는 선진 미래 국가가 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로마제국이든 당나라든 미국이든 폐쇄적 민족주의가 아닌 열린 국제주의 정책을 펴면서 외국인과 다른 문화를 포용할 때 국운이 융성했다. 하지만 단일민족이란 인식이 뿌리 깊은 한국은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민법학회 김환학 연구위원장은 "부가가치 높은 우수 해외 인력을 유치하려면 비전문인력을 충당하기 위한 고용허가제 때와는 전혀 다른 정책 발상이 필요하다"며 "한국인 간호사와 광부가 독일에서 낳은 자녀에게 국적 선택권을 부여한 독일처럼 한국도 앞으로 영주권을 가진 F5 비자 보유자(약 10만명)의 자녀가 한국에서 태어날 경우 국적을 부여하는 전향적 정책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인터뷰〉

'헬 조선'에 그들은 왜 몰려올까? #스위스·스웨덴 출신도 귀화 선택 #국익 기여하는 모범 귀화자 많아 #2000년대 급증, 경제·한류 등 영향 #로마 당나라 개방해 융성한 것처럼 #다른 문화 포용하고 차별 없애야 #시대 뒤떨어진 국적법 개정해야

 "우수한 능력 갖춘 외국인에겐 신속하게 국적 부여"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국적 제도는 고쳐 나갈 것"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본부장은 "국적 제도를 시대 변화에 맞게 고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본부장은 "국적 제도를 시대 변화에 맞게 고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차규근 본부장(변호사)을 인터뷰했다.
 -귀화 정책의 대원칙은.
 "신중하고 엄정하게 심사하는 것이다. 인구 정책적 차원뿐 아니라 주권 행사, 복지체계 편입 등 한국 사회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다. 다만 우수한 능력과 자질을 갖춰 대한민국 국익에 도움이 되는 외국인은 가급적 신속하게 국적을 부여하려고 한다. 최장 2년이 소요되는 심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행정 절차를 개선하고, 국적 심사와 조사 분야 인력 증원을 병행해야 한다."
 -후진국에서만 귀화한다는 오해가 있다.
 "2010년 우수 인재에 대한 복수국적 허용 이후 선진국 출신 귀화자가 증가하고 있다. 과학·경영·문화·체육 등 특정 분야에 전문지식을 갖춘 외국 인재가 일반외국인보다 간소화된 특별귀화 절차를 통해 국적을 취득하고 있다. 지금까지 156명이 우수 인재로 인정받아 국적을 취득했다."
 -복지 제도에 무임승차한다는 비판도 있는데.
 "각종 세금 및 건강보험료 체납 사실을 확인해 엄격하게 귀화 심사를 하고 있다. 귀화자가 국민의 권리·의무를 다하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도록 하기 위해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
 -귀화를 통한 인구 유입보다 '헬 조선'이라며 떠나는 인구 유출(이민 등)이 더 많다.
 "2018년에는 국적 상실이 2만6608명,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선택 기간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국적 이탈이 6986명을 기록했다. 글로벌 시대에 유학·취업 등의 목적으로 새로운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려는 사람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 국적 정책만으로 인구의 유출보다 유입을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현행 국적법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비판이 있다.
 "1948년 12월 제정 이래 엄격한 혈통주의(속인주의) 원칙을 근간으로 하고 있어, 시대 환경 변화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국적법 개정 10주년을 맞는 2020년에 국민 공감대를 모아 시대 변화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국적 제도를 고쳐나가도록 노력하겠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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