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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서핑차이나]‘칼과 쟁기의 노래’…군민융합으로 '강군몽' 펴는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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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 17일 중국 하이난 해군기지에서 열린 국산 항공모함 산둥함의 취역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갑판에 올라 의장대 사열을 받고 있다. 산둥함 건조와 취역에도 중국의 군민융합 전략이 기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화=연합]

지난 17일 중국 하이난 해군기지에서 열린 국산 항공모함 산둥함의 취역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갑판에 올라 의장대 사열을 받고 있다. 산둥함 건조와 취역에도 중국의 군민융합 전략이 기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화=연합]

지난 12일 찾아간 중국 베이징 중관춘의 군민융합산업원 D동. 국가안전법, 반(反)간첩법 포스터가 첫 눈에 들어왔다. 올 초 입주를 시작한 4층 건물에는 미국의 위성기반 위치정보 시스템(GPS)을 대체하는 중국판 GPS인 베이더우(北斗) 내비게이션, 국영 대형 방산업체인 중국 병기 공업집단의 자회사 북방폭파과기 등이 있다.

중관춘, 군·민 R&D기지로 변신 #첨단기술 유출에 미국 위기감 고조 #한국, 군사전용 우려품 수출 4위국 #“군민융합은 신 차이나 리스크”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베이징 중관춘의 군민융합산업원. 인민해방군과 연계된 각종 방산 업체가 입주해 군·민 연구개발(R&D) 기지로 탈바꿈 중이다. 신경진 기자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베이징 중관춘의 군민융합산업원. 인민해방군과 연계된 각종 방산 업체가 입주해 군·민 연구개발(R&D) 기지로 탈바꿈 중이다. 신경진 기자

이처럼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에 인민해방군이 새롭게 가세했다. 베이징대, 칭화대 등 중국 최고 학부와 정보기술(IT) 기업, 투자사 등과 시너지를 내기 위해 중관춘을 군·민 연구개발(R&D) 기지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것이다. 불과 5년 전까지 자동차 부품상가였던 11만㎡ 부지를 전국 36개 군민융합 산업단지의 새로운 모델을 탈바꿈시키고 있다.

“총이냐 버터냐”  중진국 함정 돌파

중관춘의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부상한 군민융합은 중국에선 낯선 개념이 아니다. 군대와 민간의 칸막이를 허물어 해양·우주·인터넷·바이오·신에너지 등 첨단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중국판 군사-경제 병진 노선이다. 실크로드 외교와 함께 중진국 함정을 돌파하기 위한 국가전략이기도 하다.

그 시작은 2012년 18차 당 대회 정치보고였다. 장루밍(姜魯鳴) 국방대 군민융합발전연구센터 교수는 “군민융합의 핵심은 국방과 군대 건설을 경제와 사회 발전 시스템 안으로 유기적으로 녹여내 부국과 강군을 통일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중국 군민융합 연혁.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중국 군민융합 연혁.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국방과 경제를 대립하는 제로섬 관계로 봐온 전통적인 거시경제학에 대한 도발적 해석인 셈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화약과 비료의 공통 재료인 질산염의 최적 비율을 찾아 ‘총이냐 버터냐(gun versus butter) 모델’을 만들었다. 중국은 한 발 더 나아가 ‘총과 버터를 모두 갖겠다(gun and butter)’는 통합 전략을 내놨다. 북한의 핵·경제 병진 전략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중국은 총과 버터 대신 ‘칼과 쟁기의 노래(劍犁協奏·검려협주)’라고 부른다.

구체적으로 방위 산업에 민간의 참여를 장려하는 민참군(民參軍), 군사 기술의 민간 전용을 늘리는 군전민(軍轉民)이라는 방법론도 내놨다.

중국 군민융합 대표 기업 광치그룹의 창업자 류뤄펑을 미국 첨단 기술의 무단 유출 사례로 고발한 미 연방수사국(FBI)의 보고서. [FBI보고서 캡처]

중국 군민융합 대표 기업 광치그룹의 창업자 류뤄펑을 미국 첨단 기술의 무단 유출 사례로 고발한 미 연방수사국(FBI)의 보고서. [FBI보고서 캡처]

중국판 일론 머스크도 군민융합 기업가

군민융합 스타 기업가도 나왔다. 중국의 일론 머스크로 불리는 광치그룹의 창업자 류뤄펑(劉若鵬·41)이 대표 주자다. 홍콩과 인접한 선전 출신인 류뤄펑은 미국 듀크대에서 메타물질을 연구했다.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스텔스 기술을 접목한 ‘투명망토’ 논문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어 유명해졌다. 이후 2010년 귀국해 창업한 광치를 2012년 12월 당 총서기에 막 취임한 시진핑 주석이 방문했다.

그러자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듀크대는 류뤄펑을 의도적인 첨단 기술 유출 사례로 꼽았다. 미 의회는 올해 초 청문회에서 광치가 현재 인민해방군, 항천(우주)과공그룹과 함께 중국의 위성 정찰 플랫폼인 후난성의 068기지에서 군사 기술 개발을 돕고 있다고 폭로했다.

지난 17일 정식 취역한 중국의 첫 국산 항공모함 산둥함도 군민융합의 산물이다. 베이징의 군납업체 하이랜더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해서다.

하이랜더는 2016년 미 해군을 고객으로 하는 캐나다의 해저 관측 기업 오션웍스 인터내셔널을 인수했다. 산둥함 등 최신 함정에 쓰이는 해저관측망을 위한 전략적 합병이었다. 이를 알아챈 미 법무부는 오션웍스의 고위 임원을 미 해군 잠수함 관련 기술을 중국과 부적절하게 공유한 혐의로 기소했다. 캐나다 당국은 하이랜더에 오션웍스의 노하우와 비밀 거래, 극비 정보에 접근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하이랜더 사례는 미국 싱크탱크 선진국방연구센터(C4ADS)가 군민융합 보고서 ‘오픈 암스’를 통해 폭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의 군민융합 전략에 따른 기술 유출에 워싱턴의 위기감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싱크탱크 선진국방연구센터(C4ADS)의 최신 중국 군민융합 보고서 ‘오픈 암스’ 표지 [C4ADS 캡처]

미국 싱크탱크 선진국방연구센터(C4ADS)의 최신 중국 군민융합 보고서 ‘오픈 암스’ 표지 [C4ADS 캡처]

한국도 빨간불…중국군 조달 세계 4위

중국의 군민융합에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중국의 군납 채널이 넓어지면서 한국의 연루 가능성이 거론된다. C4ADS가 중국 내 방산 클러스터의 무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중국에 군사전용 우려 품목을 수출하는 4번째 국가로 나타났다.

여기에 국제통일상품분류 체계인 HS 코드를 통해 잠재적으로 군사 전용이 가능한 이중용도 물자의 비율로는 일본과 한국이 각각 62%, 58%로 1, 3위를 차지했다. 일본은 라디오 항법 보조기구(HS코드 852691)를 173차례 중국에 선적했고 이를 수입한 중국업체 중 한 곳은 세 번째 항공모함을 만들고 있는 장난조선그룹이다. C4ADS는 HS코드가 군사적 사용을 증명하진 못하지만, 중국이 군사용 부품을 국제적으로 조달하는 사실은 잘 드러낸다고 분석했다.

중국 국방산업단지 관련 기업의 주요 수입국. 그래픽=신재민 기자

중국 국방산업단지 관련 기업의 주요 수입국. 그래픽=신재민 기자

잠재적 이중용도 제품 수입 상위 국가. 그래픽=신재민 기자

잠재적 이중용도 제품 수입 상위 국가. 그래픽=신재민 기자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미·중 경쟁이 구조적으로 심화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군민융합 움직임에 대한 미국의 우려가 한국에겐 새로운 차이나 리스크가 될 수 있다”며 “선제적으로 중국 군민융합 흐름에 대한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베이징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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