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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 폰 주운 택시기사, 무죄 뒤집은 2심···대법원 또다른 반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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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뉴스1]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뉴스1]

길거리에서, 혹은 택시 안에서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를 주워 자신이 가지려 했다면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대법원이 승객의 휴대전화를 주워 이틀간 가지고 다닌 택시기사 김모(55)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의정부지법으로 파기환송했다. 2심서 유죄를 받은 김씨는 어떻게 무죄 취지 판결을 받게 됐을까. 대법원이 주목한 건 ‘휴대폰 화면을 켜는 특이한 방식’이었다.

택시 승객 황모씨는 2018년 2월 28일 새벽 택시에 휴대전화를 놓고 내렸다. 황씨는 날이 밝은 뒤부터 그다음 날 오후까지 잃어버린 휴대폰으로 전화 6통에 문자 2통을 남긴다. 습득한 휴대전화를 돌려달라는 내용과 경찰에 도난 신고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답을 기다리던황씨는 휴대폰을 주운 사람이 돌려줄 의사가 없다고 판단해 경찰에 도난 신고를 했다.

택시 기사 김씨는 3월 2일 이유는 모른 채 경찰 조사에 응했다. 경찰서에 도착해서야 자신이 주운 휴대폰 관련 사건임을 알게된 그는 "돌려줄 생각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핸드폰이 특이한 것인지, 잠금이 열리지 않아 전화가 걸리지도 않고 켜지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점유이탈물횡령죄(누군가가 잃어버리거나 놓고 간 물건을 가져갔을 때 적용받는 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가 자신이 이용하던 이발소에 가서 "승객이 놓고 간 건데 충전을 좀 해달라"고 부탁한 점 등을 근거로 삼았다. 이발소 주인도 법정에 나와 같은 취지로 진술했다. 당시 배터리가 6~7% 정도 있었는데, 충전기 종류가 달라 충전을 못 했다는 취지였다. 1심 재판부는 "김씨가 주운 휴대폰을 불법으로 가지려 했다는 점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에서는 결론이 뒤집혔다. 재판부가 주목한 것은 김씨의 진술이었다. 김씨는 휴대폰에 잠금장치가 돼 있어 전화를 걸지도 못했다고 주장했는데, 당시 이 휴대폰에는 비밀번호나 패턴인식 같은 잠금장치가 되어있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김씨는 평소 스마트폰을 자주 쓰는 사람이라 황씨에게 받은 문자와 통화를 모두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적은 배터리 용량으로도 통화하거나 문자 메시지는 보낼 수 있다"며 김씨와 이발소 주인의 진술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김씨가 경찰 출석 직전 블랙박스 영상을 모두 지운 점도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2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가 주운 휴대전화 기종의 잠금해제버튼은 휴대전화의 뒷면에 있다. [사진 LG전자 홈페이지]

김씨가 주운 휴대전화 기종의 잠금해제버튼은 휴대전화의 뒷면에 있다. [사진 LG전자 홈페이지]

대법원은 이를 다시 한번 뒤집었다. 대법원은 "여러 사정을 살펴보면 김씨가 정말 휴대전화에 잠금이 돼 있었다고 오해할만한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해당 휴대전화는 다른 일반적인 스마트폰과는 달리 전원 버튼이 휴대폰 뒷면에 있었다. 대부분의 스마트폰이 측면 버튼으로 전원을 켜고 끄는 것에 반해 해당 스마트폰은 측면 버튼을 눌러도 화면이 켜지지 않았다. 이어 대법원은 "만약 김씨가 잠금장치가 없다는 걸 알았다면 경찰 조사에서 휴대전화만 확인하면 바로 알 수 있는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경찰 출석 직전 블랙박스 영상을 지운 이유 역시 이 사건과 관련돼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덧붙여 대법원은 항소심이 1심과 판단을 달리할 때 충분하고 납득할만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1심 법정에서 이발소 주인이 직접 나와서 증언했고 그의 태도와 뉘앙스를 모두 고려해 법원은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는데 2심 재판부가 이런 점을 너무 쉽게 뒤집었다는 취지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사건을 의정부지법 합의부로 파기환송한다고 29일 밝혔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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