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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돈 잃으면 X신" 文정부서 개념 바뀐 부동산 투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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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급등 피로, 보유세 인상도 안 먹히자 정부 고강도 12·16 대책 발표
국토부 공급 확대보다 수요 억제에 올인… 서울 집값 ‘불패신화’ 중대 기로에

문재인 정부 30개월 중 26개월 동안 집값이 올랐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의 아파트 밀집 지역.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30개월 중 26개월 동안 집값이 올랐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의 아파트 밀집 지역. / 사진:연합뉴스

[월간중앙] 대한민국 부동산의 ‘암울한 상승’ 어디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집값에 초강력 규제로 맞서다

부동산은 원래 중(中)위험 투자 상품에 속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과 수도권 요지 아파트에 한해서 이 개념은 바뀌었다. 경제가 불확실할수록 이 지역 아파트는 심리적 ‘안전자산’으로 각인돼 온 것이다. “서울에서 부동산으로 돈 잃으면 등신”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서울 아파트는 사놓고, 깔고 앉아 있으면 저절로 가격이 오르는 ‘리미티드 에디션’처럼 여겨졌다.

부동산114는 문재인 정부(2017년 5월) 출범과 거의 겹치는 2017년 1월부터 2019년 12월 6일까지 서울 아파트 거래 건수 총 24만1621건을 전수 조사했다. 이 기간 실거래 가격 평균값은 5억8524만원에서 8억2376만원으로 40.76%의 상승률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강남·종로·광진·용산구의 집값 상승률은 50%를 넘겼다. 연 2%도 간당간당한 정기예금 금리와 비교 불가 수준이다. 주식·금·달러·비트코인처럼 출렁이지도 않았다.

미국의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019년 12월 4일 “디플레이션이 한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소비·투자·생산이 총체적으로 악화하는 국면에 집값만 오르고 있다. 정부가 경기부양 목적으로 돈을 아무리 풀어도 부동산으로만 흐르는 ‘대략난감’한 상황이다. 체감 경기는 신음하는데, 부동산 가치만 상승하는 현실은 무주택 서민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다. 되돌리기 어려운 초(超)양극화 사회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문 정부 집권 후반기에 돌입하는 2020년, 부동산 시장은 뉴노멀(new normal, 저성장·저금리·저물가) 흐름에서 나 홀로 상승을 거듭할 수 있을까.

보유세로 상승 누를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말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말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2020년 집값 조정(보합 혹은 하락)을 주장하는 이들은 큰 틀에서 세 가지 요인을 부각한다. ▷2018~2019년에 걸쳐 오를 만큼 올랐다.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부담이 커지는 추세다. ▷한국 경제가 부진한데 부동산만 계속 상승할 순 없다.

서울 집값은 2019년 여름부터 상승 반전한 뒤, 비수기인 겨울에도 꺾이지 않았다. 한국감정원은 2019년 12월 2일 ‘2019년 11월 서울 아파트 가격은 2018년 9월 이후 14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0.68%)’이라고 발표했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전셋값도 0.41% 뛰었다. 이는 2015년 12월(0.76%) 이후 가장 높게 오른 수치였다. 12월 12일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전세가는 24주 연속 상승(한국감정원 통계) 중이다.

단기간에 너무 가파르게 올랐으니 ‘매수 대기자가 집 구매를 관망하거나 아예 포기할 것’이라는 예상이 역설적으로 설득력을 얻을 법하다. 특히 시세를 주도하는 고가 아파트는 취·등록세와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미래의 양도세 부담까지 고려하면 투자액 대비 수익률에서 매력이 반감될 수 있다. 전세 끼고 집을 사는 갭 투자자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받아 집을 산) 투자자들은 가격이 계속 오르지 않으면, ‘하우스 푸어(House Poor)’로 전락할 수도 있다.

종부세 인상도 집값 상승의 잠재적 부담 요소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19년 종합부동산세 수를 3조328억원으로 추산했다. 2018년보다 1조1600억원 증가한 금액이다. 재산세를 합한 부동산보유세 수는 2018년보다 2조1000억원가량 증가한 15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2019년 연말에 종부세 고지서를 받아든 사람만 대략 60만 명이다.

채상욱 하나금융투자 건설 분야 수석연구위원은 “보유세 효과는 벌써 나타난 것”이라고 진단했다. 2018년 9·13대책 이후 강화된 보유세로 인해 집값이 잡혔다는 뜻이 아니라 그 정책의 여파로 집을 사는 구매 주체가 달라졌다는 의미다. 9·13대책 이전에는 다주택자가 주도했다면, 이후에는 무주택자나 상급지로의 갈아타기를 원한 1주택자가 2019년 하반기 시장을 끌었다고 분석했다.

문 정부가 다주택자를 세금으로 압박하자 시장은 소위 ‘똘똘한 한 채’ 테마로 응수했다. 물결이 퍼지는 부동산의 특성상, 서울 요지의 신축이 가격을 선도한 뒤 재건축과 구축으로 퍼졌다. 그다음 수순으로 서울 주변부나 경기도, 지방 핵심지로까지 갭 메우기가 확대되고 있다. 정책 의도와 달리 대세 상승장이 열리자, 국토교통부는 공시가격 현실화에 착수했다. 쉽게 말해 보유세를 더 올리겠다는 얘기다. 채 위원은 “다주택자가 양도세 부담에도 불구하고, 파는 것을 생각할 정도로 (종부세를) 올릴 수 있느냐가 핵심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상된 종부세 고지서가 날아오는) 2020년 2분기가 분기점 중 하나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12·16대책 발표 전까지 2020년 부동산시장 전망은 일방적이었다. 절대다수 부동산 전문가들은 ‘폭등이냐, 강보합이냐’는 차이만 있을 뿐 상승론에 힘을 실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인 이상우 익스포넨셜 대표는 “수요·공급이 안 맞았을 때, 상승장의 끝은 아무도 모른다”고 단언했다. 이 대표는 예상을 훨씬 웃돈 2019년 상승장의 근원 중 하나로 “(사람들의) 주거의 질(質) 개선 욕구”를 꼽았다. 가족을 위해 더 좋은 곳에서 살고 싶고, 돈(대출 여력 포함)도 있는데, 사려고 보니 입지 좋은 곳의 새집은 희소하다면? 이들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라도 사는 쪽을 택했다. 정부는 다주택자·투자자를 묶어놓는 데 정책을 집중했지만, 정작 2019년 하반기 집값은 실수요자들이 주도했다. 30대가 상당수인 이들은 ‘집값이 단기적으로 떨어지지 않고 장기적으로 우상향이라면, 비싸 보여도 살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 “서울 집값은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은 부동산 불패론을 압축한다.

“매물이 없는데 어떻게 집값이 잡히느냐?”

김현미 국토부 장관(오른쪽)이 분양가 상한제 핀셋 규제를 한 뒤, 유은혜 교육부 장관(왼쪽)은 자사고·특목고 폐지를 발표해 정책 엇박자를 노출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오른쪽)이 분양가 상한제 핀셋 규제를 한 뒤, 유은혜 교육부 장관(왼쪽)은 자사고·특목고 폐지를 발표해 정책 엇박자를 노출했다.

12·16대책 이전까지 최환석 하나은행 부동산자문센터 팀장도 “(2020년에도) 가격이 내려가기 어렵다”고 예측했다. 서울 집값의 하방 경직성을 담보하는 가장 확고한 기반은 매물이 씨가 마른 현실이다. “매물이 없는데 어떻게 집값이 잡히느냐?”는 견해를 반박하지 못하는 한, 상승장 혹은 강보합 장은 유효하다.

박천규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연구센터장은 “거래가 잘 안 되고, 가격만 오르면 고점이라고 인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 상황은 매수세가 안 붙어서 거래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사고 싶어도 팔지 않으니 없어서 못 사는 시장에 가깝다. 그 결과 2019년 부동산 시장에선 ‘점 상승’이라는 기이한 현상까지 등장했다.

일례로 마포구 대장 아파트로 꼽히는 용강동 래미안 리버웰과 이편한세상 리버파크에서 59㎡(25평) 매물이 0개인 초유의 상황이 빚어졌다. “집 사려면 대기표 받고 기다려야 한다”, “매도인 계좌 받기가 수능 1등급 받기보다 어렵다”는 뼈 있는 농담이 돌았다. 실제 14억원짜리 매물은 나오자마자 거래 완료됐다. 그다음 매물은 호가 1억이 오른 15억원으로 등장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강남·서초·송파·마포·용산·성동 등의 대장 아파트들만의 특수 케이스가 아니란 사실이다. 서울 요지의 신축은 말할 필요도 없고, 재건축 이슈가 없는 서울 주변부 구축조차도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 집주인은 팔면 더 오를까 무서워서 매물을 거둬들이기 일쑤였다. 매수 대기자도 대체 꼭지가 어디인지 감이 안 오는 가격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몽롱한 시장이다. 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임장 한번 가본 사람이라면, 지금 대한민국 부동산시장의 현실이 아수라장임을 바로 체감할 수 있었다.

‘점 상승’은 거래가 하나 성사된 뒤, 다음 매물이 직전 매매 가격보다 훨씬 높은 신(新)고가를 찍는 것을 일컫는다. 거래량을 수반하지 않은 급등이다. 가령 종로구 경희궁 자이 2단지 84.613㎡(34평형)에 관한 국토부 실거래를 보면, 2019년 5월 14억원(1건), 6월 15억원(1건), 7월 15억3000만원(1건), 8월 16억4000만원(1건) 식으로 뛰었다. 물론 동이나 층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상승 폭이 작지 않다. 강남구 삼성동 센트럴 아이파크 84.99㎡(34평형) 최근 실거래가는 22억7000만원(2019년 7월)이었다. 그런데 현재 호가는 30억원이다. 워낙 가격이 단기간에 튀어 오르니 매수 대기자가 가격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만큼 거래량은 침체된다. 강남은 물론이고, 서울 어지간한 아파트 단지는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점 상승’의 갈림길에 처해 있었다.

‘터무니없는 가격이라면 안 사면 그만’이라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땅은 빵처럼 무한정 만들어낼 수 없다. 땅이 한정된 이상, 입지는 대체불가다. 잠재 수요자 중 한 명이라도 가격을 받는 순간, 시장이 가치를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구조를 잘 아는 강남 부자들 사이에선 “서울 집은 파는 것이 아니라 모아서 자식에게 주는 것”이 상식으로 통한다.

‘진정한’ 일반인들이 정책의 최대 피해자

2018년 강남의 한 아파트 견본주택에 몰린 인파. 2019년 신길 지역의 아파트 청약은 경쟁률 712:1을 찍기도 했다. / 사진:뉴시스

2018년 강남의 한 아파트 견본주택에 몰린 인파. 2019년 신길 지역의 아파트 청약은 경쟁률 712:1을 찍기도 했다. / 사진:뉴시스

이런 환경에선 정부가 소위 ‘종부세 폭탄’을 투하해도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 가능성은 희박하다. 보유세 인상은 부동산 정체기나 하락기에 효험을 발할 수 있는 정책에 가깝다. 시중은행 PB는 “상승기에 집값이 몇 억씩 오르는 데, 몇백·몇천만원 종부세 무섭다고 집을 내놓는 사람이 나오겠느냐”고 반문했다. 대한민국 대장 아파트로 꼽히는 서초구 반포아크로리버파크와 강남 재건축 골드 칩으로 불리는 래미안원베일리를 소유하고 있는 A씨 부부는 2020년에 4000만원 이상의 보유세를 감당해야 함에도 집을 팔 생각이 추호도 없다. “은행에 신용대출을 받아서라도 보유세 내고 버틴다”는 것이 강남 다주택자들의 정서다. 이들 중 다수는 일찌감치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으로 묻어놨거나 증여를 통해 절세 방안을 마련했다. 또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같은 전통의 부촌은 1주택 장기 보유 노인 집주인이 꽤 된다. 나이와 보유 기간에 따른 감세 혜택(최대 70%)을 적용하면, 시세가 25억원을 넘어도 종부세는 몇십만원 수준으로 내려갈 수 있다.

종부세를 무지막지하게 올린다 해도, 근본적 처방일 수 없다는 반론도 견고하다. 왜냐하면 집주인들이 전세나 월세를 올려서 보유세 부담을 메우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전·월세 세입자가 가장 고통 받게 된다.

이에 대해 정부는 전·월세 상승 폭을 5%로 제한하는 상한제와 전세 기간을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계약 갱신제 도입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얼핏 전·월세 서민을 위한 정책처럼 비치지만 시장이 더 망가질 개연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집주인들은 첫 계약 때 전세 금액을 대폭 올려놓을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5% 넘게 못 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면 전셋값이 폭등하고, 결국 매매가와 격차가 줄어든다. 다시 갭 투자가 활성화되는 것은 수순이고, 집값은 천장마저 뚫게 된다.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실 소속으로 종부세 계산기를 고안한 이재용 비서관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처럼 전·월세 상한제와 갱신제 역시 서민층의 표를 얻기 좋아 보이는 정책이다. 그러나 결국 최종적 부담이 서민에게 전가될까봐 경계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증세는 정부 의도와 무관하게 양극화로 가는 것이 필연적이다. 초강력 종부세를 못 버티고 강남 아파트를 던지는 사람이 나온다고 가정하자. 그럼 그 집을 누가 살 수 있을까. 굉장한 현금 부자만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진정한 부촌이 탄생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그 지역 집값은 어지간한 사람은 범접조차 못 할 수준까지 올라가게 된다. 계층 간 사다리는 거의 완전히 끊어지게 되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진보 정부에서 이런 위기감을 생각하는 현실은 희극적 비극에 가깝다.

이상우 대표는 “정부 말만 믿고 1주택자로 산 사람들은(상급지로) 이사를 못 하게 됐다. 젊은 층들은 청약도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진정한 일반인들’이 문 정부 부동산정책의 최대 피해자라고 봤다.

김현아 의원은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집값을 잡으려는 정책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증세를 목표로 삼지 않는 이상, 이럴 수 없다’는 의구심이다. 익명의 부동산 시장 참여자는 “종부세를 많이 걷어서 무주택자의 주거 안정을 위한 집을 짓는 데 쓰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결국 ‘공급 부족으로 집값 상승→증세→보편적 복지 명목의 현금 살포→공급 부족으로 집값 상승’의 무한 반복 중”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것은 대책인가? 부양책인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2019년 12월 16일 청와대 고위공직자들을 향해 수도권 다주택자는 1채만 남기고 팔 것을 주문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2019년 12월 16일 청와대 고위공직자들을 향해 수도권 다주택자는 1채만 남기고 팔 것을 주문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712:1. 189가구를 짓는 신길동 ‘더 샵 파크 프레스티지’ 1순위 청약 전용면적 114.65㎡의 경쟁률이다. 2019년 12월 11일 진행됐는데 2만1367명이 모였다. 단순 계산으로도 114:1이다. 청약 당첨이 로또 1등에 비견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이재용 비서관은 “규제 일변도로 가다가 적기에 공급을 못 해줬다”며 “집값이 올라가고, 서울의 멸실 주택 자료가 나왔는데도 타이밍을 놓치다 뒤늦게 3기 신도시를 내놨다”고 말했다. 그나마 3기 신도시는 서울이 아닌 경기도 지역에 편중돼 있고, 공급까지 시간이 걸린다. 교통망인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는 완공 시한을 아무도 확언하지 못한다.

단기적으로 국토부는 재개발·재건축을 활성화하는 공급 증가가 아닌 수요 억제책을 선택했다. 2019년 12월 초까지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내놓은 17번의 부동산 안정화 대책은 수요 관리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럴수록 시장은 ‘정말 집이 귀해져서 저러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예정된 결말은 약간의 시차를 두고 벌어진 더 강력한 상승이었다. “집값을 받쳐주는 가장 든든한 지지대는 정부 정책”, “대책이라 쓰고 부양책이라 읽는다”는 냉소마저 나왔다. ‘경제가 어려워 기업 법인세 등이 감소하는 마당에 512조원 예산이 편성됐다. 집값마저 내려가면 세금 걷을 곳이 딱히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집값 안정화를 외치는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중대하게 훼손된 상황이었다. 이러면 어떤 정책을 내놔도 효과가 반감되는 악순환에 빠지기 십상이다.

만약 정부가 진정성 있게 서울 집값을 안정화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어떤 정책을 펴야 효험을 얻을까. 이상우 대표는 “부동산의 햇볕정책”을 말한다. “그냥 시장을 내버려두면 안 되겠나? 단기 부작용은 있겠지만, 저절로 치유하는 곳이 시장이다. 재건축하고 싶은 사람들이 해서 새집이 많아져야 사람들이 집을 그만 산다.”

일각에선 ‘양도세를 일시적으로 완화해서 물량이 나오도록 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보유세 강화와 양도세 완화가 패키지로 이뤄져야 효과가 나온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버티면 정부가 타협한다는 선례가 만들어지면 정책 신뢰도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문 정부의 ‘철학’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한번 양도세 완화 혜택을 받고, 집을 판 사람이 부동산 말고 어디다 다시 그 돈을 넣겠는가?”라는 반문도 나온다.

정부가 거부감 없이 취할 수 있는 범위 내의 대책으로 최환석 팀장은 “그물을 촘촘히 짜는 구조”를 언급했다. “(정부 규제는) 계속 잽을 날리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잽도 계속 날리면 누적되는 충격이 작지 않다”고 말했다. 가령 정부가 규제지역이나 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을 확대할수록 상승 동력이 소진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실제 정부는 12·16대책에서 이를 실행했다.

채상욱 위원은 전세자금 대출 규제를 ‘급소’로 봤다. 2020년 부동산시장의 테마로 채 위원을 비롯한 상당수 전문가는 전세 급증을 꼽는다. 그 흐름은 이미 시작됐다. 왜냐하면 최대 80%까지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셋값 상승을 국가가 커버해주는 구조에서 전세가가 매매가를 밀어 올리는 상황은 명약관화하다.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가 줄어들면 다시 갭 투자 메리트가 발생한다. 다시 집값은 올라가고, 이 상황은 계속 반복된다. 어찌 보면 규제가 가능한 주택담보 대출보다 전세자금 대출이 집값 상승을 일으키는 더 강력한 트리거다. 전세 제도가 존속하는 한, 외국처럼 PIR(소득 대비 집값 비율)이 높다고 집값이 꼭지라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다수 전문가는 문 정부가 여기에 손을 안 댈 것이라고 확신한다. 전세자금 대출을 규제하는 순간, 지지율에 치명상을 입을 것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문가는 “전세자금 대출을 제한하는 것은 현 정부가 지지층이라 여기는 서민층에게 ‘지금보다 열악한 집에 가서 살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인데 할 리가 없다”고 회의했다.

강남이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는다?

정부는 집값 안정화에 대해 얼마나 절박함을 가진 것일까. 시중은행 PB는 “(정말 심각하게 봤다면 당연히 나왔어야 할) 김현미 장관 경질설을 지금껏 들은 적이 없다”며 비관적으로 봤다. 오히려 그는 “김 장관이 모두가 행복한 구조를 만들었다”고 반어적으로 답했다. “집 가진 사람들은 집값이 올라서 행복하다. 집 없는 사람들은 정부가 집 가진 사람들을 계속 때려주니까 대리만족으로 행복하다. 정부는 세금을 많이 걷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정부로선 계속 이렇게 집값 잡는 시늉만 하는 게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 관리에서도 합리적인 것 아닌가?”

익명의 부동산 전문가도 2020년 4월 총선에서 부동산 이슈가 점화될수록 서울은 오히려 민주당에 유리할 것이라고 봤다. “강남 부자들이 예전 노무현 대통령 때는 정부를 욕했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당을 찍겠다고 말한다. 겉으론 세금 많이 걷는다고 욕해도 그들도 욕망 앞에서 솔직해진 것이다. 존재감도 없는 자유한국당보다 확실하게 내 재산을 늘려줄 민주당 득표율이 강남에서 올라갈 것이라고 장담한다.” 북한이 심각한 도발을 일으키거나 중국발 경제위기 같은 극단적 외부충격이 오지 않는 한, 도저히 잡히기 힘든 지경으로 비쳐졌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2019년 12월 3일 “문재인 정부 2년 새 역대 최고로 땅값이 상승(1988조원)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국토부는 공개토론을 제안하며 반박했다. 그러자 경실련은 12월 11일 ‘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한 전·현직 참모진의 아파트·오피스텔 재산이 최근 3년간 평균 3억2000만원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설계자로 통하는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과천 주공아파트는 2017년 1월 9억원에서 2019년 11월 19억4000만원으로 올랐다. 그런데도 김 전 실장은 12월 3일 JTBC에 출연해 “주요 국가 중에서 한국이 부동산 가격을 가장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경실련 발표에 관해 “소수를 일반화하지 말라”고 언급했다. 사과의 말이나 안정화하겠다는 다짐은 없었다.

집값 하락이나 폭락이 정부 부동산 정책의 목표가 될 순 없다. 인플레를 먹고 자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동산 안정화는 완만한 우상향을 뜻한다. 몇 년에 걸쳐 서서히 오를 것이 단기간에 올라버린 현 시장은 정상궤도를 이탈한 셈이다.

빚내서 집 산 사람이 승자인 세상

부동산 정책의 설계자로 지목되는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과천 재건축 아파트는 문재인 정부 2년여 동안 10억원 이상 올랐다.

부동산 정책의 설계자로 지목되는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과천 재건축 아파트는 문재인 정부 2년여 동안 10억원 이상 올랐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부동산 투자 ‘대박’ 사례는 문 정부 부동산 정책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그는 2019년 12월 1일 페이스북에 “흑석동 상가주택 건물을 매각하고 차익을 기부하겠다”고 밝혀 다시 화제가 됐다. 그는 청와대 대변인 시절인 2018년 7월 재개발 대상 건물을 샀다. 25억7000만원이 매입가였다. 당시 김 전 대변인이 손에 쥔 돈은 9억2000만원이었다. 나머지 16억5000만원이 차입금, 즉 빌린 돈이었다. 은행대출이 10억원이었고, 지인 대출이 3억6000만원, 보증금이 2억6500만원이었다. 그는 2019년 12월 문제의 건물을 34억5000만원에 팔았다. 9억2000만원만 수중에 든 사람이, 8억8000만원(세전)의 수익을 올린 것이다. 1년 5개월 만에 거둔 자기자본 대비 수익률이 95.7%(8.8억원/9.2억원)에 달한다. 월 500만원의 대출을 감당하며 부동산에 ‘몰빵’한 사람이 무조건 이기는 판으로 만든 것이 문 정부 부동산 정책이다. 김 전 대변인은 민주당에 복당을 신청했고, 총선(전북 군산) 출마설이 돌고 있다.

김수현 전 실장은 사회수석 시절인 2018년 8월 “2019년 4월까지 집 팔 기회를 주겠다”고 말했다. 그 말 믿고 집을 판 사람이 있다면 땅을 치며 통곡할 상황이다. 실제 청와대 등 정부·여당의 강남 주택 소유자 중 집을 판 이는 거의 없었다.

정부 말 믿고 집 사기를 주저했던 사람들은 이제 세 가지 선택지만 남아 있다. ▷지금이라도 신고가에 산다. ▷계속 전세 살며 청약에 올인한다. ▷내 집 마련은 포기하고 전·월세 살며 해외여행 등에 소비한다. 대다수 서민들(특히 젊은 층)은 세 번째 옵션으로 몰리고 있다. 정부 의도와 무관하게 ‘국민을 가난하게 만들어서 표를 얻으려 한다’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 없게 되고 있다.

어느덧 서울 집값은 6년 연속 상승이라는 신기록을 열었다. ‘샤워실의 바보들’ 우화처럼 시장이 다 오르고 난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대책이 나오니 타이밍이 맞을 리가 없다. 국토부는 분양가 상한제 핀셋 규제를 발표해 시장을 냉각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 바로 다음 날, 교육부는 자사고와 특목고 폐지를 발표해 학군 지인 강남과 목동 집값에 기름을 부었다. 한 금융인은 “이제 가격이 어깨를 넘어 목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 (정부가) 그 목을 기린 목으로 만들어놨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국토부는 12월 11일 “실거래가격만으로 주택가격 변동을 판단하는 것은 시장 상황을 과잉 해석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전 정부의 규제 완화 및 주택경기 부양책 영향, 저금리 기조 하의 풍부한 유동성 지속 등 상승 압력이 상존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최근 서울 주택가격은 예년에 비해 크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실거래가를 외면하고 문 대통령 임기 절반을 넘겼음에도 전임 정부에 책임을 전가하는 한,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듯하다.

“시장 이기는 정책 없다지만, 정책 이기는 투자자도 없다”란 명제는 부동산 투자의 격언이다. 연전연패로 몰리던 정부가 2019년 12월 16일, 기습적으로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금융위원회·국세청 합동으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칼을 갈고 준비했다’는 것이 느껴질 만큼 “강도가 세다”고 시장은 평가했다.

대책은 대출 규제 강화와 보유세 강화 및 양도세 보완에 방점이 찍힌다. 핵심은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관한 주택담보대출 금지가 꼽힌다. 이렇게 되면 15억원을 넘기는 아파트 거래가 움츠러들 개연성이 커진다. 속칭 대장 아파트들의 가격이 잡히면, 그 아래 가격대 물건들도 도미노 현상으로 상승이 억제될 수 있다.

4월 총선 앞둔 정부의 총력 반격

전세를 활용한 갭 투자를 차단하려는 의지도 강력히 드러냈다. 전세대출을 이용한 갭 투자를 제한했고, 조정대상지역에서의 일시적 1가구 2주택자의 양도세 면제 허용 기한도 기존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했다. 장기보유특별공제도 당초 보유만 해도 연 8%씩 양도세를 감면해주던 것을 보유(연 4%)와 거주(연 4%)를 모두 충족해야 연 8% 공제가 되도록 변경했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높여 종부세도 상향했다. 특히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의 세부담 상한율을 종전 200%에서 300%로 확대했다. 이로써 3주택자 이상과 마찬가지로 3배까지 세금을 올릴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양도세에 한해선 ‘다주택자가 조정지역대상 내 10년 이상 보유한 주택을 양도하는 공유, 한시적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 및 장기보유특별공제 적용’이라는 개선책도 내놨다. 그 시한은 2020년 6월 말까지로 정했다. 2020년 4월 총선에 맞춰 시장에 물량을 늘려놔 집값을 붙잡아 놓겠다는 정부의 셈법이 묻어난다. 다주택자들이 못 버티고 집을 팔도록 만들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는 2019년 11월 6일 핀셋 적용에 이어 이번에는 지역을 대폭 확대해서 풍선효과 차단을 꾀했다. “서울 13개구(강남·서초·송파·강동·영등포·마포·성동·동작·양천·용산·서대문·중구·광진) 전 지역이 대상으로 지정됐고, 강북 5구(강서·노원·동대문·성북·은평)의 37개동이 추가됐다. 경기도에서는 과천·광명·하남의 13개동이 지정됐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18번째 부동산대책을 내놓은 뒤 “이후에도 부동산 시장 불안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추가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철저한 매도자 우위 시장을 단 번에 뒤집을만한 파괴력’과 ‘시장은 버티기에 들어갈 것’이란 관점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2017년 8·2대책과 2018년 9·13대책에도 잠시 숨 고르기 후 멈추지 않았던 집값이 또 다시 갈림길에 서 있다.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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