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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횡령ㆍ배임 '나쁜기업'에 주주권 칼 휘두른다

중앙일보

입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과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27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9차 국민연금 기금 운용위원회에서 입장하고 있다. [연삽뉴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과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27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9차 국민연금 기금 운용위원회에서 입장하고 있다. [연삽뉴스]

국민연금이 횡령이나 배임을 저질러 기업가치를 훼손한 투자 기업에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할 전망이다.

국민연금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27일 2019년도 제9차 회의를 열고 ‘국민연금기금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과 ‘2020년 목표 초과수익률’, ‘채권 위탁운용 목표비중 조정 및 해외채권 관련 기금운용지침 개정안’을 심의ㆍ의결했다고 밝혔다.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기업에서 횡령ㆍ배임ㆍ사익편취 등으로 기업가치가 훼손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해당 기업이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경우에는 국민연금이 이사해임, 정관변경 등의 주주제안을 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기금위가 자본시장법 등의 테두리 안에서 가장 적절한 내용을 결정한다.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장치도 뒀다. 경영계의 의견을 반영해 산업의 특성과 기업의 여건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주주제안을 아예 하지 않거나 철회할 수 있게 했다. 지난달 복지부가 내놨던 가이드라인 초안과 달라진 부분이다.

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주주 제안 대상에 오른 기업에 특별한 사정이 있거나 산업계 전체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해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행사로 산업계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으면 주주 제안을 아예 하지 않거나 철회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넣었다”고 밝혔다.

그는 “관점에 따라 후퇴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제도적 장치 마련으로 보면 된다"며 "재계나 산업계에서는 안정성을 위해 해당 조항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기업에 칼을 휘두른다는 비판을 의식했는지 박 장관은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의 주된 취지는 기업 경영에 개입하거나 간섭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로 기업 가치를 높이고 주주가치를 제고하고 국민연금의 수익성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주주활동이 자의적으로 결정되지 않도록 원칙과 기준, 절차를 투명하게 규정해 시장의 예측가능성을 더욱 높이려는 것이 이번 가이드라인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금위는 적극적 주주활동 대상에 드는 ‘중점관리사안’, ‘예상하지 못한 우려사안’ 항목도 바꿨다. 초안에서 예상하지 못한 우려사안에 해당하던 ‘기금운용본부의 정기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평가 하락 사안’은 ‘중점관리사안’으로 분류됐다.

기금운용본부의 ESG 등급을 사전에 알 수 없어 대응이 어렵다는 경영계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중점관리사안에 해당하는 기업은 비공개대화, 비공개 중점관리기업, 공개중점관리기업을 거친 뒤에 주주제안을 하게 된다.

박 장관은 “중점관리사안으로 분류한 건 기업에 더 신중하게 접근한다는 뜻"이라며 "예상하지 못한 우려사안은 2단계를 거치는데 중점관리사안은 4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더 장기적으로 대안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ESG 평가방식이나 내용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1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21년 이후에 시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노조ㆍ시민단체 측 입장도 반영됐다. 초안에서 1년으로 정해져있는 수탁자책임활동 기간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나 기금위가 필요하다고 결정하면 단축하거나 바로 다음 단계로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기업이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등 개선 의지가 없는 경우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이날 회의에는 기금위 위원 20명 중 13명만 참석했다. 경영계 추천 위원들이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하려는 것”이라며 불참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은 이날 기금위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민간기업 경영개입 목적의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 도입을 의결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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