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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홍콩 시위와 스위스 시계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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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이동현 산업1팀 차장

1969년 일본 시계업체 세이코는 ‘아스트론’이란 이름의 시계를 선보였다. 당시까지 시계는 태엽장치를 이용한 시계가 주류였지만 아스트론은 시계의 개념을 바꿔놓은 혁신적 제품이었다. 수정 진동자에 전기를 흘려 작동하는 ‘쿼츠(Quartz)’ 시계의 탄생이다.

장인이 오랫동안 수작업해야 했던 기계식 시계와 달리 쿼츠 시계는 싸게 대량생산이 가능했고 누구나 만들 수 있었다.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던 스위스 고급시계의 몰락이 시작됐다. 1980년대 중반 기계식 시계가 ‘사치품’으로 다시 각광받기까지 스위스 시계산업은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이른바 ‘쿼츠 파동’이다.

쿼츠를 넘어 이동통신, 위성을 이용한 시계가 등장했지만 스위스 시계는 살아남았다. 무브먼트(시계의 내부 기계장치) 전문 회사들은 거대 자본에 흡수됐고, 스와치그룹·리치몬트그룹·LVMH 같은 대형 업체로 재편됐다. 시간을 알려주는 본연의 기능은 퇴색했지만, 사치품으로서의 위상은 더 높아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9일 ‘스위스 시계가 35년 만에 최악의 실적에 다가섰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세계 경제 하락과 홍콩 민주화 시위의 영향으로 스위스 시계업체들이 ‘쿼츠 파동’ 말기인 1984년 이래 최악의 실적을 기록할 것이란 내용이다.

스위스시계산업협회(FHS)에 따르면 11월 말 현재 스위스 시계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나 줄었다. 홍콩과 중국 수출이 각각 26.7%, 5.5% 줄었고, 독일 수출도 1.9% 감소했다. 싱가포르(+29.6%), 일본(+7.8%) 수출은 늘었지만 ‘고급시계 시장의 큰손’ 중국인들의 구입이 줄어든 게 가장 큰 타격이 됐다. (본지 9월 20일 35면 ‘홍콩 시위와 스위스 시계’ 참조) ‘쿼츠 파동’ 이후 30년, 콧대 높은 스위스 시계산업이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