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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태연 "나도 있다"…용기있는 고백, 우울증 편견 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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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 분 노래를 들으면 마음의 평안이 있다고 합니다.”

마음의 병 우울증 ② #셀럽들의 용기, 편견 깨는 데 도움 #이병헌·이경규는 공황장애 공개 #팬들은 아픔 이해하고 지지 보내 #유명인 고백 계기로 병원 찾기도

지난 3일 서울 상암동 YTN홀. YTN라디오가 주최한 고(故) 임세원 교수 1주기 추모 콘서트 현장에 한 가수가 등장했다.

“누군가 얘기할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추모하는 자리에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맨발의 디바’라 불리는 이은미. 그는 무대에 올라 “투어 콘서트 중이어서 오늘 무대가 쉽지 않았다”면서도 “임 교수님을 추모하는 자리에 꼭 함께하고 싶었다. 또다른 희망을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는 약 1년 전 진료 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활동 못할까봐’ 과거엔 고백 잘 못해 

우울증을 고백한 가수 이은미. 이은미는 3일 ’우울증으로 고통스러웠다. 노래가 다시 무대에 서게 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우울증을 고백한 가수 이은미. 이은미는 3일 ’우울증으로 고통스러웠다. 노래가 다시 무대에 서게 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이은미는 이날 ‘국민 애창곡’이자 제 2의 전성기를 가져다 준 ‘애인있어요’를 부르기 전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꽤 고통스러운 시간을 4년 반 정도 겪었기 때문에 마음의 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을 고통스러웠고, 다시 무대에 설 때까지 정말 힘들었거든요.”

이은미는 지난 9월 YTN라디오에 출연해 “데뷔 후 30년간 슬럼프가 없었느냐”는 질문에 “많았다. ‘재능이 여기까지인가 봐’ 하고 몇번을 때려치웠었다”며 “정말 다 타 버린 느낌,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울증이 심했고 한 1년 반을 녹음실에 들어가 마이크 앞에 서도 노래가 안 나왔다. 그때 만난 곡이 ‘애인있어요’였고 저를 다시 마이크 앞에 서게 해준 곡”이라고 말한 바 있다.

최근 우울증 경험을 터 넣고 얘기하는 셀럽(유명인)이 적지 않다. 낙인 탓에 치료를 기피하는 환자가 많은데 이런 용기있는 고백이 편견을 깨는 데 힘을 보탠다. 아이돌 스타는 소속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소셜미디어(SNS)나 팬카페에서 알린다. 의사 상담을 받고 약을 먹으며 적극적으로 치료받고 있다고 알린다. 항우울제나 ‘F 코드’라 불리는 정신과 진료이력 관련 우울증 괴담을 무너뜨린다.

우울증을 고백한 가수 태연. [중앙포토]

우울증을 고백한 가수 태연. [중앙포토]

지난 6월 걸그룹 소녀시대 소속 가수 태연(30)은 SNS로 팬들과 대화하던 도중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약물치료를 열심히 하고 있고, 나으려 노력하고 있다”며 “조울증이든 우울증이든 ‘쯧쯧’ 거리면서 바라보지 말아달라. 다들 아픈 환자들”이라고 강조했다.

우울증을 고백한 가수 현아. [중앙포토]

우울증을 고백한 가수 현아. [중앙포토]

걸그룹 포미닛 출신 현아(27)도 지난달 인스타그램에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고 썼다. 그는 “2016년 병원 가서야 알게 됐다. 저도 마음이 아픈 상태였다. 처음엔 진단이 믿기지 않았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2주에 한 번 꾸준히 치료받고 있고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워너원 출신의 강다니엘(23)은 이달 초 팬카페에 고통을 호소했다. “상반기부터 잦은 건강악화에다 심리적 불안증세로 병원을 방문했더니 우울증과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현재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 개그맨 이경규와 정형돈, 배우 차태현, 가수 이상민 등이 공황장애를 호소하면서 장벽을 깼다. 배우 이병헌은 2013년 공황장애로 힘들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그 자리에서 쓰러지거나 견디지 못해서 (촬영 중)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말 방송사고가 나는 줄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10·20대 우울증 환자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10·20대 우울증 환자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나면 연기 등의 활동을 중단하고 휴식을 취해야 하는 현실적 필요성 때문에 (앓는다는 사실을) 노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공황장애보다 우울증이 5~10배 흔한 병이다. 우울증에 대한 편견이 과거보단 줄면서 힘들다는 사실을 얘기하고 지지받으려는 이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항우울제를 먹고 있는 정모(21·여)씨는 “나 혼자만 앓고 있는 병이라 생각해 자꾸 숨기고 싶다. 아무래도 공인들이 자신도 그렇다고 고백하면 나한테도 (이 병이) 올 수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고 했다.

이국종 교수 우울증에도 환자들 공감 

인구 1000명당 복용하는 항우울제. 그래픽=신재민 기자

인구 1000명당 복용하는 항우울제. 그래픽=신재민 기자

홍 교수는 “최근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가 우울증 때문에 힘들었다〈중앙일보 10월28일자 1,4면〉고 고백한 이후 환자들이 와서 그 얘기를 많이 한다. ‘그분을 존경하고 있었는데 그런 분도 힘들 수 있구나’란 식이다. 셀럽의 고백은 정신질환자가 무능하다든지 나약하다든지 그런 게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기 때문에 일반인들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주연 정신과 전문의는 “연예인이 묘사하는 증상을 보고 친구가 공황장애 같다고 해서 병원을 찾은 환자도 있었다. 유명인이 말한 계기로 한 번 더 병원 치료를 고려해보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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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마음먹기에 따라 극복 가능한 질병이 아니다. 개인이 힘을 내 이겨낼 수 있는 기분 문제도 아니다. 전문적인 치료와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사람이 치료받는 비율은 15.3%에 그친다. 미국(39.2%), 뉴질랜드(38.9%) 등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인식 개선을 위해 국제구호 NGO인 ‘기아대책’과 롯데백화점은 우울증에 관심을 갖고 ‘리조이스’ 캠페인을 2017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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