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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서울 남산 숲…"못생긴 소나무조차도 점점 사라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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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조경학자인 이경재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서울 남산 숲을 둘러보고 있다. 강찬수 기자

원로 조경학자인 이경재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서울 남산 숲을 둘러보고 있다. 강찬수 기자

서울의 상징인 남산 숲이 속으로 앓고 있다.
애국가에도 나오는 철갑을 두른 소나무 대신에 구불구불하고 형태도 좋지 못한 것들만 자라고 있고, 그나마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40년 연구한 원로 조경학자 이경재 교수 #'서울 남산 숲 40년간의 변화' 책도 펴내 #

원로 조경학자인 이경재(70)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2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서울 남산 숲은 전국의 소나무 숲 중에서도 가장 불량한 숲"이라며 "지속적인 생태 연구와 더불어 좋은 소나무로 대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1978년 서울대 임학과 대학원 시절 연구과제로 남산 숲을 처음 조사·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1984~2014년 서울시립대에서 강의와 연구를 진행했고, 정년퇴직 후에도 '대하자연연구소'에서 공원과 도시녹지를 주제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이 교수는 그동안의 조사·연구 결과를 묶어 최근 '서울 남산 숲 40년간의 변화'란 책도 펴냈다.
지난 24일 서울 남산을 함께 걸으며 이 교수를 인터뷰했다.

이경재 교수가 서울 남산 소나무 숲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애국가에 나오는 낙락장송은 남산에서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강찬수 기자

이경재 교수가 서울 남산 소나무 숲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애국가에 나오는 낙락장송은 남산에서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강찬수 기자

서울 남산은 어떤 산인가.
서울의 상징이다. 조선왕조가 서울을 도읍지로 정했을 때 풍수에 따라 북쪽 백악산, 동쪽 낙산, 서쪽 인왕산과 남쪽 남산(목멱산)을 내사산(內四山)으로삼았다. 왕실에서는 이들 산의 벌목을 엄격하게 금했다. 남산에는 지금도 묘지 하나 없을 정도로 관리가 철저했다. 남산은 누에 모양이어서, 남산이 보이는 곳에서는 뽕나무를 심었다. 남산의 기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누에머리에 남산 타워를 건설했다.
40년 전 처음 조사할 때 남산의 모습은 어떠했나.
78년 조사를 나왔을 때는 북쪽 사면에는 개울이 졸졸 흘렀다. 물소리와 새소리, 바람 소리 등을 듣노라면 마치 강원도 심산유곡을 걷는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남산이 가장 예쁠 때는 단풍나무 등의 잎이 연두에서 초록으로 바뀔 때다. 산벚나무가 피어난 모습도 예쁘다.
남산 소나무 숲. 수령 100년 이상된 것은 보기 드물고, 20~30년 전에 심었던 것들도 구불구불하고 수형이 좋지 못한 편이다. 강찬수 기자

남산 소나무 숲. 수령 100년 이상된 것은 보기 드물고, 20~30년 전에 심었던 것들도 구불구불하고 수형이 좋지 못한 편이다. 강찬수 기자

현재 남산 소나무 숲은 어떤 상태인가.
애국가에 등장하는 남산 소나무는 낙락장송(落落長松)을 말하는데, 남산에는 그런 소나무가 없다. 서까래나 기둥으로 쓸 수 없는 것들만 있다. 못생긴 소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수령이 100년 넘은 소나무도 10그루가 채 안 된다. 남산 전체 면적이 297㏊(297만㎡)인데, 78년 조사에서는 소나무 숲이 남산의 26%를 차지했는데, 지금은 17.5%에 불과하다. 소나무는 남쪽 사면에만 있다. 북사면을 중심으로 면적의 21%는 신갈나무가, 10%는 아까시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서울 남산 성곽 주변의 소나무. 똑바로 서 있는 나무를 찾기가 어렵다. 강찬수 기자

서울 남산 성곽 주변의 소나무. 똑바로 서 있는 나무를 찾기가 어렵다. 강찬수 기자

남산 제 모습 찾기 운동을 하지 않았나.
90~2000년 사이 10년간 진행됐다. 당시 전체 면적의 10%에 해당하는 24만㎡에서 아까시나무를 잘라냈다. 소나무도 1만8295그루를 심었다. 하지만 아무 소나무나 가져다 심었다. 그냥 소나무였다. 이게 벌써 20~30년 자랐는데, 대부분 가지가 비틀어지고 볼품이 없다. 남산 소나무는 줄기가 붉고 곧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남산 소나무를 이대로 둘 것인가, 좋은 소나무로 대체할 것인가를 놓고 공론화가 필요하다. 남산 제 모습 찾기 당시 외인 아파트를 철거했는데, 소나무 숲 복원 대신 식물원을 지었다. 특색이 없어 시민들도 잘 찾지 않는다.
1994년 외인아파트 폭파 철거 폭파 후 서울 남산 모습. [중앙포토]

1994년 외인아파트 폭파 철거 폭파 후 서울 남산 모습. [중앙포토]

북사면의 신갈나무 숲은 어떤가.
신갈나무는 강원도 오대산처럼 온대 북부에 자생한다. 남산 높이가 해발 286m이고, 과거에는 추워 신갈나무가 자랐다. 그런데 2009~2013년 참나무 시듦병이 퍼지는 바람에 신갈나무 6700여 그루를 잘라냈다. 그러면서 신갈나무 도토리가 떨어져도 자라지 않고, 단풍나무나 팥배나무만 잘 자란다. 팥배나무는 빨간 열매가 수없이 달려 번식력이 좋다. 그러면서 숲이 단순화됐다. 가을에는 숲이 온통 붉은색이다.
이경재 교수가 남산 북쪽 사면의 신갈나무와 팥배나무 숲을 살펴보고 있다. 강찬수 기자

이경재 교수가 남산 북쪽 사면의 신갈나무와 팥배나무 숲을 살펴보고 있다. 강찬수 기자

남산 숲의 변화 원인은.
보통 숲은 100년 정도 시간을 두고 서서히 변화하는데, 남산은 30~40년 만에 크게 변했다.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건조화가 가장 큰 문제다. 70년에 남산 1호, 2호 터널이 건설됐고, 78년에 남산 3호 터널이 건설됐다. 남산 남쪽은 화강암, 북쪽은 화강편마암으로 이뤄져 있다. 화강편마암은 균열이 많이 가 있는데, 당시에는 균열을 제대로 막지 않는 바람에 지하수가 그대로 새 나왔다. 터널 위 남산이 건조화되기 시작했다. 남산 주변에도 고층건물을 건설하면서 터파기를 하고 지하 수위가 낮아졌다. 남산 약수터가 마르고 사라진 게 그 증거다. 남산 한옥마을 개울도 처음엔 남산 터널에서 나온 물을 흘려보냈지만, 이제는 지하철역에서 나온 물을 끌어다 쓴다. 연간 전기요금만 8억 원이 든다.
서울 남산에서 자라는 팥배나무 열매. 붉은 색을 띠고 있다. 강찬수 기자

서울 남산에서 자라는 팥배나무 열매. 붉은 색을 띠고 있다. 강찬수 기자

도시 대기오염 영향도 받았을 것 같은데.
자동차 매연도 당연히 영향을 준다. 수피(樹皮·나무껍질)가 검게 변한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산성비는 토양 산성화, 식생 변화로 이어진다. 강한 산성인 pH 4 미만으로 떨어진 곳도 있다. 토양이 산성화되면 마그네슘·칼슘 같은 토양 속의 양(陽)이온이 떨어져 나간다. 영양이 부족해지면 나무가 자라기 어렵다. 가죽나무·팥배나무·때죽나무 등은 산성 토양에 비교적 잘 적응한다. 90년대 후반 토양 개량을 시도했지만, 효과가 별로 없었다.
서울 남산 타임캡슐 광장에 있는 대리석 구조물 처마 끝에 산성비 등으로 생긴 '종유관'이 고드름 처럼 달려 았다. 2000년대 중반에 촬영한 사진이다. [중앙포토]

서울 남산 타임캡슐 광장에 있는 대리석 구조물 처마 끝에 산성비 등으로 생긴 '종유관'이 고드름 처럼 달려 았다. 2000년대 중반에 촬영한 사진이다. [중앙포토]

남산 숲을 어떻게 해야 하나.
20년 전 외환위기 이후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가 자연환경에 소홀해졌다. 시민들도 폐기물이나 미세먼지 같은 인간 환경에만 관심을 보인다. 자연환경에 대해 큰 그림 없이 방치하고 있다. 남산 제 모습 찾기 10년 동안 많은 일을 했다며 더는 관심을 안 갖는다. 제모습 찾기가 면죄부만 준 셈이다. 남산의 상징성, 가치를 고려한다면 남산 생태계를 지속해서 모니터링해야 한다. 숲이 어떻게 변화했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를 예상하면서, 관리해야 한다.
이경재 교수는 "보통 숲은 100년 정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변화하는데, 남산은 지난 30~40년 동안에도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강찬수 기자

이경재 교수는 "보통 숲은 100년 정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변화하는데, 남산은 지난 30~40년 동안에도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강찬수 기자

앞으로의 계획은.
정년퇴직 후 일본 도시의 정원, 국영공원 등에 관해 책을 꾸준히 써왔다. 가로수 등 도시 숲에 대한 사진과 자료를 정리해 책을 낼 계획이다. 86년부터 현장 조사 때 촬영한 사진(슬라이드 필름)을 디지털로 옮기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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