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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말고 꽃병을"...지금 북한 낙관론을 펴는 유일한 사람은 트럼프

중앙일보

입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성탄절을 맞아 세계 각지에서 근무중인 미군 장병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성탄절을 맞아 세계 각지에서 근무중인 미군 장병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어쩌면 좋은 선물일 수도 있다. 그가 내게 보내려는 선물이 미사일 시험이 아니라 아름다운 꽃병일 수도 있다.”

24일 김정은의 성탄절 선물 기다리면서 #트럼프 "미사일 아니라 꽃병일지도" 농담 #대북 경고하면서 북핵 위협 의도적 경시 #협상 유도, 연내 중대 도발 없다는 안심(?) #북미 대치 1월로 넘어간다는 예측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현지시간) 북한 미사일을 놓고 농담을 했다. 북한이 예고한 ‘성탄절 선물’ 배달 시한을 앞두고 북ㆍ미 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고 있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기자로부터 북한의 크리스마스 ‘깜짝 선물’에 대한 질문을 받고 “괜찮다. 깜짝 놀랄 일이 뭔지 알아낼 것이고, 성공적으로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고 보자”라면서 “상황 전개를 봐가면서 대처하겠다”고 덧붙였다.

질문이 이어졌다. ‘북한이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할 경우 미국은 어떤 선택권을 검토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트럼프는 즉답을 피했다. 대신 “어쩌면 그(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로부터 꽃병 같은 좋은 선물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웃으면서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누가 알겠나”라고도 했다.

폭스뉴스는 "지금 상황에서 낙관론을 펴는 유일한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전했다. 군과 정보당국이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같은 강도 높은 도발 가능성에 대비하며 경계 태세를 높이는 가운데 군 통수권자인 트럼프 대통령의 농담은 어떤 의미일까. 몇 가지 가능성을 짚어봤다.

① 북한에 대한 우회적 경고

북한에 대해 미사일 실험을 자제하라는 우회적인 경고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농담하기 전 북한이 깜짝 놀랄만한 일을 하면 미국은 “성공적으로 처리하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북한이 끝내 ‘레드라인(금지선)’을 밟을 경우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레드라인을 명확하게 정의한 적은 없지만, 대체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단을 약속한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두 가지를 꼽는다. 북한이 올해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대형방사포를 13차례나 발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문제 삼지 않았다. 핵 실험은 비핵화를 약속한 북ㆍ미 싱가포르 합의문 파기를 의미한다.

② 북한 위협에 대한 의도적 경시

북한 위협을 대단치 않게 생각한다는 태도를 보이기 위해서일 수 있다. 대북 정책 실패론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잠재적인 위협에 동요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탄핵 국면에서 내년 대통령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는 북한 리스크를 부각하기보다는 경시하는 쪽이 더 유리하다. 미국 최대 명절 크리스마스를 맞아 가족 단위로 모인 유권자 식탁 위에 대북 정책 실패 논쟁을 안줏거리로 올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ㆍ미 정상회담 직후 트위터에서 “더 이상 북한으로부터 핵 위협은 없다”라면서 “모든 사람이 내가 취임한 날보다 더 안전하게 느낄 수 있게 됐다”고 선언했다.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평범한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는 모습을 공개했다. 오전에는 세계 각지에서 근무하는 미군 장병들과 영상 통화를 하고, 오후에는 교회에서 성탄 예배를 본 뒤 '퍼스트 패밀리'가 모여 성탄절 저녁 식사를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24일(현지시간) 크리스마스 가족 만찬을 위해 플로리다주 마러라조 리조트에 도착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24일(현지시간) 크리스마스 가족 만찬을 위해 플로리다주 마러라조 리조트에 도착했다. [AP=연합뉴스]

③ 대북 유화 제스처

대화의 문이 아직 닫히지 않았다는 신호다. 긴장 상황을 유머로 풀어내는 트럼프 특유의 화법을 살려 미국은 여전히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의향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 대신 꽃병을 기대하고 있다고 유머로 구사해 김 위원장으로부터 협상을 계속할 뜻을 담은 친서 등을 받고 싶다는 희망의 표현일 수 있다.

약 2주 전 비슷한 질문이 나왔을 때 “그렇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한다면 군사적 옵션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한 답변과 결이 다르다. 북한을 자극하는 표현을 자제하려고 한 흔적도 엿보인다. ‘군사적 옵션’이라는 표현 대신 ‘처리’라고 했다. 엄포성 언사는 최대한 피했다.

④ 북한 도발 내년으로 넘어갈까

북한의 ‘크리스마스 선물’ 위협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의 북한 관찰자(watcher)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최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적어도 연내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크게 역정 낼 만한 일은 벌이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가 용납할 수 없는 도발을 하는 순간 김 위원장은 지난 2년간 쌓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수위 조절을 할 거라는 분석이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도 인터뷰에서 “김정은도 대미 압력을 서서히 올리는 게 효과적이라는 것을 안다”라면서 “트럼프 심기를 건드리는 선을 넘지 않으면서 각종 시도를 해 볼 것”으로 예상했다. 작은 도발들을 시도하며 간을 본 뒤 내년 초에 보다 심각한 도발을 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내다봤다.

트럼프 재선을 바라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선 행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ICBM 발사는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했다고 주장해 온 트럼프를 궁지에 빠뜨릴 수 있다. 김정은이 트럼프를 망신줄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속에 트럼프가 여유 있게 농담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분석도 과신할 수 없다. 북한 연구자들은 김정은과 북한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만큼 불완전한 건 없다고 말한다. 한 연구자는 말했다. "북한이 김 위원장이 꿈꿔왔던 정상국가라면 지금 도발하지 않겠지만…"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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