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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하수관에 머리 처박은 거북이, 그곳 못 떠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9월 18일 필리핀 보라카이섬 불라복 해안. 바닷속 하수관 구멍에 바다거북 한 마리가 머리를 깊숙이 처박고 있다. 하수관에서는 오수가 바다를 향해 마구 뿜어져 나오고 있다. 이 바다거북에게는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플라스틱 아일랜드]

※자세한 스토리는 영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불법 오수 배출 알린 바다거북

9월 18일 필리핀 보라카이섬 불라복 해안에서 바다거북이 오수가 나오는 하수관 구멍에 머리를 대고 있다. [사진 박부건]

9월 18일 필리핀 보라카이섬 불라복 해안에서 바다거북이 오수가 나오는 하수관 구멍에 머리를 대고 있다. [사진 박부건]

지난 9월 필리핀 중부의 휴양섬 보라카이가 발칵 뒤집혔다. 한국인 다이버가 SNS에 올린 영상 때문이었다.

영상에는 멸종위기종인 푸른바다거북 한 마리가 바닷속에서 오수를 내뿜고 있는 하수관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불라복 비치에서 400m가량 떨어진 지점이었다.

“파이프 끝쪽을 보니까 뭐가 나오고 있더라고요. 거기 앞에 커다란 바위 같은 게 놓여 있어서, 뭐지 했는데 바위가 움직이는 거예요. 딱 보니까 거북이였던 거죠. 처음에 너무 충격을 받아서 깜짝 놀랐어요. 거북이 얼굴에 빛도 비추고 하면서 쫓아 보냈어요.” -박부건(39) 한국인 다이빙 강사

앞서 보라카이는 수질 오염 등 환경 문제가 심각해지자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섬을 전면 폐쇄했고, 다시 문을 연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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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카이섬 불라복 해안에서 바다거북이 오수가 나오는 하수관 구멍에 머리를 박고 있다. [박부건 제공]

보라카이섬 불라복 해안에서 바다거북이 오수가 나오는 하수관 구멍에 머리를 박고 있다. [박부건 제공]

논란이 커지자 필리핀 환경청은 하수관 현장에 조사관을 파견해 수질 검사를 했고, 기준치가 넘는 오수가 방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환경청은 규정을 어기고 오수를 방류한 업체에 영업정지 처분과 함께 수천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나티비다드 베르나르디노 보라카이 재건관리 관계기관 협의회의(BIARMG) 회장은 “당시 하수처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을 안했기 때문에 오수가 나왔다. 문제가 해결되고 수질 기준을 충족시킬 때까지 업체에 오수 방출을 멈추라고 명령했다”고 말했다.

하수관 구멍은 막았지만…

11월 18일 필리핀 보라카이섬 불라복 해안의 하수관이 돌무더기로 막혀 있다. 그 옆에 바다거북 한 마리가 보인다. [사진 박부건]

11월 18일 필리핀 보라카이섬 불라복 해안의 하수관이 돌무더기로 막혀 있다. 그 옆에 바다거북 한 마리가 보인다. [사진 박부건]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11월 18일, 바다거북을 발견한 박 씨와 함께 배를 타고 보라카이 불라복 해안을 다시 찾았다.

다이빙 자격증을 가진 기자도 박 씨를 따라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주변을 둘러보니 바닥에 길게 뻗어 있는 하수관이 보였다.

왼쪽부터 지난 9월 바다거북이 하수관에 머리를 박고 있는 모습. 두 달 뒤 같은 장소에서 하수관을 막은 돌무더기 옆에 앉아 있는 바다거북. [사진 박부건]

왼쪽부터 지난 9월 바다거북이 하수관에 머리를 박고 있는 모습. 두 달 뒤 같은 장소에서 하수관을 막은 돌무더기 옆에 앉아 있는 바다거북. [사진 박부건]

하수관을 한참 따라가자 끝에 거대한 돌무더기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앞에 바다거북 한 마리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박 씨는 수신호로 두 달 전 하수구에 머리를 박았던 그 바다거북이라고 알려줬다.

돌무더기 위로는 약하게 오수가 나오고 있었고, 주변에는 물고기 떼들이 몰려 있었다.

바다거북은 주변에 사람이 나타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 동안 막힌 하수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자가 옆에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수관을 떠나지 않는 바다거북. [사진 박부건]

기자가 옆에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수관을 떠나지 않는 바다거북. [사진 박부건]

1m 넘는 길이의 바다거북은 암컷으로 50살 정도 되는 개체로 보인다고 박 씨를 설명했다.

그는 “해당 업체에 페널티를 줬다니까 무슨 조치가 있었겠지 생각하고 처음 가본 건데 그 자리에 여전히 그 거북이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오수에서 나오는 따뜻함이 그리운 것 같다”고 말했다.

바다거북은 왜 하수관을 떠나지 않고 있는 걸까.

바다거북 전문가인 김일훈 한국해양생물자원관 연구관은 “푸른바다거북은 해초류나 조개 등을 먹는 잡식성으로 따뜻한 물을 좋아한다”며 “하수관에서 나오는 오수로 인해 먹이가 있을 것 같은 냄새가 있어서 주변에 머무는 게 아닐까 추측된다”고 말했다.

보라카이=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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