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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룰까지 바꾸자는 범여권, 온갖 꼼수 다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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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법대로 한다’고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도 지켜야 한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스티븐 레비츠키 등은 “정당이 상대 정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과 이해, 그리고 제도적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자제(forbearance)”를 기본으로 꼽았다. 다수결이 원칙이지만 소수자도 배려해야 한다는 것도 한 예다.

‘늦게 낸 수정안부터 표결’ 이용 #여당, 의안과 죽쳤다 벼락 제출 #23개 안건 건너뛰어 선거법 상정 #여당도 야당 대응용 필리버스터

23일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 신당)의 범여(汎與)가 주도한 패스트트랙 안건 강행 국면은 일종의 반면교사였다. 범여는 반대 진영에 불리한 ‘게임의 룰’(선거법)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과시키려는 과정에서 ‘변칙’을 앞세웠다. 소수자의 권리인 필리버스터(filibuster·무제한 토론)를 다수자가 행하는 코미디도 벌어졌다. 자유한국당도 무리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부끄러운 일을 하면서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초현실적인 상황”이라고 요약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지난 23일 밤부터 선거법 개정안 등 패스트트랙 법안 의결을 놓고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다. 토론 첫 주자로 나선 주호영 한국당 의원이 토론 중 물을 마시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밤샘토론이 이어지자 24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의원들. [연합뉴스]

여야 국회의원들이 지난 23일 밤부터 선거법 개정안 등 패스트트랙 법안 의결을 놓고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다. 토론 첫 주자로 나선 주호영 한국당 의원이 토론 중 물을 마시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밤샘토론이 이어지자 24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의원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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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예산부수법안 단 두 건 처리=범여의 선거법 개정안은 당초 본회의의 27번째 안건이었다. 그 앞엔 예산부수법안 22건이 있었다. 당정이 신속처리를 다짐한 게 예산부수법안이었다. 하지만 결국 두 건만 처리됐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증권거래세법·자유무역협정(FTA)관세법에 이어 네 번째 안건으로 선거법을 끌어올려서다. 보수 야권이 “불법 기습 상정”이라고 했지만 범여는 국회법상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으로 맞섰다.

② 윤후덕 대표 발의 안건만 통과=이날 통과한 안건은 ‘회기 결정의 건’과 ‘동의의 건’까지 네 건이다. 모두 윤후덕(원내부대표 입법 담당)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한국당이 법안당 30여 건의 수정안을 제출하자 민주당이 마지막에 윤후덕 안을 내는 방식을 채택해서다. 헷갈릴까 봐 모두 ‘윤후덕’으로 통일했다고 한다. ‘가장 늦게 제출된 수정안부터 먼저 표결한다’는 국회법 96조를 활용했다. 의안 접수를 담당하는 민주당의 한 당직자가 의안과 앞에서 기다렸다가 마지막 순간에서야 수정안을 제출했다고 한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이 24일 무제한 토론 발언 도중 화장실을 다녀와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원욱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선거법 개정안 적용 시 예상 의석수를 보는 모습. [연합뉴스·뉴시스]

김종민 민주당 의원이 24일 무제한 토론 발언 도중 화장실을 다녀와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원욱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선거법 개정안 적용 시 예상 의석수를 보는 모습. [연합뉴스·뉴시스]

③ 해석은 맘대로=이날 본회의의 결정적 국면은 의사일정 1안이었던 ‘회기 결정의 건’이었다. 당초 문 의장이 제안한 회기 결정의 건에는 “12월 11일부터 1월 9일까지 30일간”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민주당은 곧바로 “12월 11일부터 12월 25일까지 15일간”이라는 내용의 수정안을 제출했다. 주호영 한국당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하려 했으나 문 의장이 거부했다. 범여의 ‘쪼개기 국회’의 첫발이었다.

④ 화장실행 논란=본회의에 선거법 개정안이 상정된 23일 오후 9시49분쯤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고, 주호영 의원이 첫 토론자로 단상에 올랐다. 그는 24일 오전 1시48분까지 3시간59분을 쉬지 않고 발언했다. 생리 현상을 감안, 기저귀를 착용한 채였다. 두 번째 발언자인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0분가량 더 길게 말했다. 문 의장의 양해하에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했다.

신보라 한국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민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에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의사를 진행해 놓고 그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토론을 한다니 이런 ‘막장 코미디’가 어디 있나”라고 했다. 필리버스터는 25일 자정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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