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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32년만에 다시 만난 엄마

중앙일보

입력

23일 대구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계 사무실에서 손동석씨가 32년만에 어머니와 상봉해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 대구경찰청]

23일 대구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계 사무실에서 손동석씨가 32년만에 어머니와 상봉해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 대구경찰청]

“32년 동안 찾아 헤맸는데 믿기지가 않아요.”

23일 대구서 상봉한 母子…끌어안고 오열 #1987년 엄마 찾아간다며 버스탔다가 실종 #“가족 만나고싶다”며 대구경찰청 문두드려

23일 오전 대구시 수성구 대구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계에 한 중년 여성이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곁에 앉아 있는 아들 둘 또한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윽고 사무실 문이 열리며 붉은색 점퍼를 입은 한 남성이 들어왔다. 잔뜩 긴장해 있던 여성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면서 그에게로 달려갔다. 연신 남성의 볼을 쓰다듬으면서 “내 아들, 내 아들 맞아. 어떻게 그래…”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도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1987년 실종돼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막내아들이었다.

무려 32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다섯살 어린 나이에 실종됐다가 미국으로 입양된 손동석(37·미국명 숀 페티프런)씨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경북 영천에 살던 손씨는 일터에 나간 어머니를 찾아가겠다며 버스를 탔다가 대구에서 실종됐다.

미국으로 떠난 손씨는 양부모의 보살핌 아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고 한다. 미국인 아내도 만나 미국 위스콘신주에 살림을 꾸리고 엔지니어로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손씨는 대구경찰에서 많은 해외 입양인들에게 가족을 찾아줬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장기실종수사팀 담당자에게 “가족을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대구경찰청 장기실종수사팀은 지난 1월 어린 시절 예식장에서 길을 잃어 미국으로 입양 간 여성의 가족을 찾아주는 등 현재까지 해외입양아동 26명의 가족을 찾아줬다.

수사팀은 실종 아동의 입양기록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손씨를 미국으로 입양 보낸 곳은 대구 대성원(현 대구아동복지센터)이었다. 87년 2월 11일 대구 동부정류장(옛 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손씨를 발견해 보호하고 있다가 홀트아동복지센터를 통해 88년 6월 미국 한 가정으로 입양보냈다는 기록도 찾았다. ‘손동석’이라는 한국 이름 석 자를 알게 된 것도 이 기록을 통해서였다.

1987년 대구에서 실종됐다가 대구경찰청 장기실종수사팀의 도움으로 어머니와 상봉했던 손동석씨의 당시 사진. [사진 대구경찰청]

1987년 대구에서 실종됐다가 대구경찰청 장기실종수사팀의 도움으로 어머니와 상봉했던 손동석씨의 당시 사진. [사진 대구경찰청]

이를 토대로 경찰은 실종아동의 이름을 찾아 92년부터 주소변동이 없는 손동석 1명을 확인했다. 손씨가 실종되고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주민등록이 말소된 채 옛 주소지가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손씨의 가족을 찾는 일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경찰이 조회 대상자의 형에게 연락을 하니 “어릴 적 동생을 잃어버렸다. 찾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못 찾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경찰은 국제우편으로 실종 아동의 DNA 샘플을 받아 어머니의 DNA 샘플과 비교, 최종적으로 친자관계임을 확인했다.

우여곡절 끝에 어머니와 32년 만에 만난 손씨는 영어로 “정말 많이 보고 싶었다. 나는 당신과 똑같이 생겼다. 오랫동안 찾고 싶었다”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와 형들과 함께 했던 어릴 적 기억이 아득히 생각난다”며 “가족을 만날 줄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가족을 찾게 돼 너무 기쁘다”고 했다. 어머니와 형제들도 가족을 다시 만나게 도움을 준 경찰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안중만 대구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계장은 “입양아들이 한국으로 오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국제우편으로 DNA 샘플을 받아 등록하는 실종아동 찾기 정책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며 “대구경찰청에 등록된 해외입양아의 DAN 샘플은 110명”이라고 설명했다.

손씨와 가족들은 앞으로 일주일간 대구와 경북에서 그간 나누지 못한 회포를 풀 계획이다. 한국의 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경북 경주로 가족여행도 예정돼 있다고 한다. 손씨는 “오랜 세월 만나지 못했던 만큼 부모와 형제들과 자주 보고 잘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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