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미쳤다" 위탁부모 하겠다는 나를 혼낸 어머니

중앙일보

입력 2019.12.23 15:00

업데이트 2019.12.24 12:39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14)

어머니는 내가 ‘위탁부모’가 되는 걸 속상해하셨다. 교사인 언니처럼 여행도 다니고, 사업하는 동생처럼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여유롭게 살길 바라셨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의 바람과는 반대였다.

20대엔 커다란 여행 가방 하나를 들고 지적장애 시설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열다섯 명의 원생들과 작은 방에서 함께 살았다. 목욕을 시키고, 산더미 같은 빨래를 하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 월급도 아주 적었는데 그 돈으로 적금도 넣고, 기부도 하며 살았다. 원생들과의 교감이 행복했고, 매일매일 반복되는 생활이었지만 지루하지도 않았다. 후원물품으로 들어온 헌 옷을 골라 입으면서도 마치 백화점에서 쇼핑하듯 뿌듯해했다.

여름에 휴가차 제주에 오신 친정 어머니, 언니, 남동생, 은지와 함께 애월 바닷가에서. [사진 손어진]

여름에 휴가차 제주에 오신 친정 어머니, 언니, 남동생, 은지와 함께 애월 바닷가에서. [사진 손어진]

한 달에 한 번 휴가를 받아 집에 가면 친정어머니는 나를 딱하게 바라봤다. 꼭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정말 속을 알 수 없다는 듯 애처롭게 여기셨다. 한숨을 푹푹 쉬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주셨다.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고, 아파트를 살 때, 어머니는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이제 좀 살 만한가, 하면서 안심하셨다. 그런데 또 ‘위탁부모’를 하겠다고 나섰으니. 어머니는 ‘위탁부모’가 뭔지 잘 모르셨지만 직감적으로 느끼신 것 같다. 또 힘들고 고된 일을 자처하는구나, 하고….

“위탁부모? 그럼, 돈은 나오냐?”
“조금, 보조해 주긴 하는데…”
“아이고, 미쳤다!”

지난 14일(토) 제주가정위탁지원센터 송년의 날 행사장에서 은지. [사진 배은희]

지난 14일(토) 제주가정위탁지원센터 송년의 날 행사장에서 은지. [사진 배은희]

나는 미친 사람이었다. 낯선 아기를 데려와서, 자유도 없이, 내 돈을 들여가며 키우는 일이 보통 사람의 상식으론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어머니의 심정을 알면서도 내 편을 좀 들어줬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졌었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위탁부모로서의 이야기를 이곳에 연재하고 있다. 어머니는 인터넷을 못 하시니까 찾아서 읽어볼 수도 없는데, 언니를 통해 뉴스를 전해 듣고 또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아이고, 잘했다. 잘했어!”

부모 마음이 다 그런가 보다. 온 신경이 자식에게 가 있다. 자식 중에서도 더 어렵고 힘든 자식이 마음에 걸리는지 어머니는 오늘도 내 걱정이다. 은지가 말썽은 안 부리는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대학원 학비는 냈는지….

자식으로서 부모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게 효도인데, 올해도 나는 어머니께 걱정만 끼친 것 같다. 잘 먹고, 잘 자고, 건강하게 지내면서 어머니께 조금 더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데.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기술’이라고 했다. 한순간 확 달아올랐다가 사그라지는 감정이 아니라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아가는 기술이라고.

어머니는 삶 속에서 그 기술을 익히신 게 아닐까? 내가 정의감에 불타서 지적장애 시설에 들어갈 때도, 위탁부모가 되겠다고 할 때도, 화를 내거나 반대하지 않으셨다. 돌아서서 속앓이하셨겠지만, 그 아린 마음을 쓸어내리며 묵묵히 지켜봐 주셨다.

어머니 나름의 사랑 표현이었다. 믿어주고, 변함없이, 바라봐 주는 것. 끝까지 기대하는 것…. 어머니는 사랑을 아는 분이셨다. 지금도 명절이 돼서 친정에 가면 어머니는 몰래 음식을 담아 혼자 사는 어르신께 갖다 드린다.

지금의 나는 어머니 때문에 존재한다. 그 사랑과 헌신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다. 욱신거리는 무릎을 끌고 김장을 하시고는 자식 줄 생각에 활짝 웃는 어머니. 그 사랑에 무한한 경의를 느낀다.

은지가 잘 읽는 『강아지 똥』의 마지막 장면엔 강아지 똥이 민들레를 힘껏 끌어안는다. 산산이 부서지고 녹아들어서 결국 노란 민들레를 피워낸다. 어디 꽃뿐일까? 자식은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으로 피어난 사람들 아닌가?

오늘도 휘청거리고 포기하고 싶지만 내 안에 녹아든 어머니의 사랑이 방패가 되어주고 있다. 산산이 부서져 내 안에 녹아든 어머니가 육아에 지친 나를, 새벽마다 원고 쓰는 나를 안아 주신다.

은지를 품은 지 5년, 어머니를 흉내 내는 시간이었다. 앞으로의 시간도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을 기억하면서 그걸 이어가는 게 내 몫이라 생각한다. 내리사랑이라고 하지 않았나? 은지를 꼭 끌어안고 노란 민들레 한 송이를 피울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인생인가? 나의 어머니 이화자 여사처럼. “피어라, 은지야!”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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