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생각들이 문화유전자처럼 퍼진다면 그게 희망”

중앙일보

입력 2019.12.23 00:02

업데이트 2019.12.23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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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7일 서울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열린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 주최 ‘이상과의 만남’ 행사 때 강연자로 나선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사진 이광기]

17일 서울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열린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 주최 ‘이상과의 만남’ 행사 때 강연자로 나선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사진 이광기]

“사람에겐 생물학적 죽음 혹은 사회적 죽음이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떠나도 죽지 않는 것이 있어요. 땅을 많이 남기거나 돈을 남기는 것보다, 죽음 후에도 내 생각이 끝없이 문화유전자처럼 퍼진다면 이게 하나의 희망이 되지 않겠나. (중략) 이상(본명 김해경)을 보세요. 스물일곱 살에 폐결핵으로 객사한 사람이 살던 자리에 우리가 지금 있어요. 순간이지만 영원한 것, 우리가 시간을 이기고 환란을 견디고 살 수 있는 방법이 뭔가를 이상이 보여주는 겁니다.”

후원자들이 되살린 ‘이상의 집’서
암 친병(親病) 중인 이 전 장관 특강
후원회원 배우 이광기가 행사 촬영

여든일곱 살 노학자의 나지막이 힘준 목청이 서울 종로구 통인동 ‘이상의 집’에 울렸다.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교수다. ‘이상의 집’은 시인이자 소설·건축가 이상(1910~1937)이 세 살 때부터 20여년 살았던 집터에 자리 잡은 일종의 기념관. 그는 이곳에서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는 은밀한 이야기, 내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영영 몰랐을, 이상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 17일 저녁 풍경이다. ‘이상의 집’을 관리하는 문화유산국민신탁(이하 국민신탁)이 일종의 송년 행사로 마련한 자리였다. 각계 각지의 문화지킴이들 50여명이 한데 모여 작은 한옥이 북새통을 이뤘다. 특히 암에 걸린 후 ‘투병’이 아니라 병과 친해지는 친병(親病)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해온 이 전 장관의 특강 소식이 전해지면서 취재진도 몰렸다.

문학사상 창간호와 이상의 흉상이 나란히 전시된 ‘이상의 집’. [사진 이광기]

문학사상 창간호와 이상의 흉상이 나란히 전시된 ‘이상의 집’. [사진 이광기]

이들 가운데 탤런트·방송인 이광기(50)씨가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그는 조용히 셔터를 누르며 이 전 장관의 모습을 일기 쓰듯 담았다.

이틀 뒤인 19일 경기도 파주출판도시 내에 위치한 ‘스튜디오 끼’에서 이씨를 따로 만났다. 연기자 외에 사진작가, 미술 컬렉터로도 활동하는 그의 작업 공간이다. 이 전 장관과의 인연을 묻자 “매년 1월 김종규 국민신탁 이사장님, 임권택 감독님, 박정자·손숙 선생님 등과 함께 새해 덕담 모임을 오래 해왔는데 늘 귀한 말씀 해주시는 큰 어른”이라고 소개했다.

연극배우 박정자와 인사 나누는 이 전 장관. [사진 이광기]

연극배우 박정자와 인사 나누는 이 전 장관. [사진 이광기]

이씨는 국민신탁의 오랜 후원회원이기도 하다. 2010년 가입 이후 적극적으로 후원회원을 유치해온 활동 등으로 ‘이상의 집’에서 정재숙 문화재청장으로부터 감사패도 받았다. “오기 전에 저랑 친한 개그우먼 이성미·박미선 누나를 포함해 30명 가입신청서를 또 받아왔다”라는 소감에 박수가 쏟아졌다.

위의 사진들은 모두 배우 겸 사진작가 이광기가 직접 찍었다. 이날 정재숙 문화재청장(오른쪽)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김 이사장과 함께 포즈를 취한 모습. [사진 문화유산국민신탁]

위의 사진들은 모두 배우 겸 사진작가 이광기가 직접 찍었다. 이날 정재숙 문화재청장(오른쪽)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김 이사장과 함께 포즈를 취한 모습. [사진 문화유산국민신탁]

이날 자리에는 이홍구 전 국무총리, 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전 기획예산처 장관),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근배 대한민국예술원 신임회장, 신연균 아름지기 이사장, 이건무 전 문화재청장 등이 함께 했다.

이상 집터는 2009년 헐릴 뻔하다가 국민신탁 및 각계 후원 덕에 가까스로 보존돼 지난해 말 재개관했다. 이씨는 “이상이 짧은 생을 살아갔지만 그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서 보이듯, 그날 이어령 선생님을 통해서 또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는 힘을 느꼈다”고 전했다. 그랬던 이유가 한국 현대문학에서 이상이라는 ‘잊혀진 유산’을 길어 올린 이가 문학평론가 이어령이라서다. 청년평론가 이어령은 이상에 대한 전복적인 해석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그의 사진·자료 등 유품을 모으는 데도 전력을 다했다. 그가 1972년 문단의 ‘우상 파괴’를 주창하며 ‘월간 문학사상’을 창간했을 때 첫 호 표지가 꼽추화가 구본웅이 그린 이상의 초상화였다.

이 전 장관은 특강에 앞서 자신의 삶을 회고할 때도 ‘이상을 한국문학사에 복원시킨 것’을 첫손에 꼽았다. 이 말을 들으며 이씨는 겨울 나목(裸木)을 떠올렸다고 한다.

“겨울나무가 가지 하나 없을 때는 죽었나 싶지만. 봄에 다시 꽃을 피우는 과정이잖아요. 선생님이 ‘만약 내가 없더라도 남겨진 것을 잊지 말라’면서 종자씨 같은 걸 남겨주시는 느낌이었어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맞이한 그대로 즐기시는 모습이랄까.”

뿌리가 썩지만 않으면 다시 꽃이 피는 생명의 순환. 자신의 사진작업과도 맞닿은 화두다. 앞서 이씨는 생화와 조화를 시간 경과에 따라 대조한 뒤 ‘삶이 꽃이라면 죽음은 삶의 뿌리’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한 바 있다. 이를 비롯해 임진각 피스 핀(Peace Pin) 프로젝트 등 전시·설치에 몰두하게 된 데엔 2009년 11월 아들 석규(당시 7세)를 신종플루로 떠나보낸 고통이 깔렸다.

비탄의 낭떠러지에서 그를 끌어올려 준 이가 김종규 이사장이었다. 덕분에 이어령 선생을 비롯, 많은 “인생의 어른들”을 만났고, 아이티·브룬디 등 세계 곳곳 재해·낙후 지역 봉사도 다녔다. “슬픔을 더 큰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법”을 배운 요즘은 문화 창작·매개 및 봉사활동을 통해 얻은 에너지를 세상에 되돌려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 말을 하면서도 그는 눈가에 차오른 물기를 닦아냈다.

‘이상의 집’에서 이 전 장관도 이런 말을 남겼다. “이상은 1930년대 외롭게 죽은 사람이지만 오늘날도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권력이나 돈을 남긴 사람보다 우리에게 더 큰 의미죠. (중략) 우리가 모인 이 집은 그가 남긴 정신의 신탁이 돼 오래오래 갈 것입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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