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만의 인간혁명]배트맨의 고담 블룸버그의 뉴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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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의 인간혁명]미국 대선 돌풍 될까

세계 9번째 부자로 꼽히는 마이클 블룸버그(77) 전 뉴욕 시장이 내년 미국 대선에 출마한다. 민주당 대선 후보에 도전하는 블룸버그는 중도층을 끌어안을 수 있을 ‘트럼프 대항마’로 꼽힌다. [로이터]

세계 9번째 부자로 꼽히는 마이클 블룸버그(77) 전 뉴욕 시장이 내년 미국 대선에 출마한다. 민주당 대선 후보에 도전하는 블룸버그는 중도층을 끌어안을 수 있을 ‘트럼프 대항마’로 꼽힌다. [로이터]

올여름 세계적으로 흥행한 영화 ‘조커’의 주 무대인 고담(Gotham)시는 뉴욕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1939년 배트맨 캐릭터를 처음 만들어낸 빌 핑거는 뉴욕시의 전화번호부에서 ‘고담 보석점(Gotham Jewelers)’이란 상호를 보고선 작품 속 도시 이름을 생각해 냈죠. 배트맨의 배경이 1930~40년대 뉴욕으로 설정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습니다.

 사실 고담은 19세기 유럽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새로운 항구도시에 붙여 준 별명이기도 합니다. 1807년 ‘살마군디(Salmagundi)’라는 잡지에서 극작가 워싱턴 어빙은 뉴욕을 ‘염소의 도시(Goat's Town)’란 뜻으로 고담에 비유했습니다. 실제 영국 노팅엄주의 고담 지역에 내려오는 민간 설화에 빗대 뉴욕시민들의 어리석음을 풍자한 것이었죠.

 이후 배트맨은 여러 편의 영화로 제작되면서 1970~80년대 뉴욕으로 배경을 옮겼습니다. 영화 ‘조커’ 또한 파산 직전에 몰린 뉴욕의 암울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죠. 이때의 뉴욕은 치솟는 범죄율과 심각한 재정 파탄으로 사회 혼란이 극에 달했습니다. 뉴욕시는 1970년대 말 1만 여명의 교사와 수천 명의 경찰·소방관을 해고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했죠.

고담은 뉴욕의 어두운 면 

뉴욕의 어두운 면을 고담으로 표현한 영화 '조커'. [사진 영화 캡처]

뉴욕의 어두운 면을 고담으로 표현한 영화 '조커'. [사진 영화 캡처]

 서민들의 삶은 더욱 살기 어려워지고 길거리에선 총기사고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뉴욕은 진짜 무질서한 도시 ‘고담’으로 변해 갔습니다. 극중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사람이 배트맨의 아버지 토마스 웨인입니다. 웨인기업의 오너로 억만장자인 그는 시장에 출마해 고담을 살리려고 합니다. 자선 사업가이기도 한 그는 시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습니다.

 그러나 웨인은 조커가 촉발한 성난 군중들의 시위에 휘말려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웨인의 어린 아들 브루스는 아버지의 복수를 명분삼아 자경단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아버지의 죽음이 배트맨의 탄생을 야기한 것이죠. 그 다음부터 브루스가 자신의 어마어마한 재력을 활용해 고담시를 구해내는 게 배트맨의 주요 스토리입니다.

 실제 1970년대 뉴욕은 마피아의 주요 거점이었고 경제 불황까지 겹쳐 사회적 아노미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이 발견됐고 강도 사건이 빈번했습니다. 길거리에선 매춘부와 마약 중독자를 쉽게 볼 수 있었고요. 1977년 3월엔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하자 도시 전역에서 약탈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혼란스러웠던 뉴욕의 모습은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 자세히 묘사돼 있습니다. 택시기사인 주인공(로버트 드니로)은 거리에서 매일 술에 취하고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을 만납니다. 퇴역군인인 그는 이들을 ‘쓰레기’로 생각하지만 주인공 또한 점점 테러범으로 변해가죠.

배트맨과 슈퍼맨의 도시 뉴욕

 반면 슈퍼맨의 배경인 메트로폴리스 역시 뉴욕에서 모티브를 따 왔습니다. 데일리 플래닛의 기자인 클라크 켄트는 평소엔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지만, 악당을 마주하면 정의의 히어로 슈퍼맨으로 변신합니다. 작품 속에서 메트로폴리스는 고담보다는 밝은 색채로 그려지긴 하지만, 악당의 주요 무대인 점은 동일합니다.

 이처럼 뉴욕은 영화와 소설 등 각종 예술 작품의 주요 배경으로 쓰입니다. 세계 금융의 심장 월스트리트가 있고, 뮤지컬의 중심지인 브로드웨이가 있습니다. 맨해튼의 마천루는 자본주의의 꽃이며, 항구 앞에 우뚝 솟은 자유의 여신상은 민주주의의 상징입니다. 인구 830만, 면적 1213㎢(서울의 2배)의 뉴욕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도시죠.

 이런 이유로 뉴욕엔 늘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됩니다. 특히 최근에는 뉴욕시장으로 3선을 연임했던 마이클 블룸버그가 2020년 미국 대선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블룸버그가 이끌었던 뉴욕의 12년은 황금기로 꼽힙니다. 뉴욕시장 재임시절 성공적인 시정 운영으로 퇴임 직후엔 ‘런던시장 영입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블룸버그 런던시장 영입 주장도 

런던시장을 지낸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AP=연합뉴스]

런던시장을 지낸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AP=연합뉴스]

 2015년 4월 영국의 선데이타임스는 “프리미어 리그에 출중한 외국인 선수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외국인 영입이) 아스날과 첼시에 좋았던 것처럼 런던에도 좋을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당시 런던시장이었던 보리스 존슨(현 영국 총리)의 측근도 해당 기사에서 “블룸버그는 런던의 좋은 친구이자 기여자다, 존슨 시장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그를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블룸버그가 얼마나 시장 역할을 잘 했으면 런던에서도 그를 모셔 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까요? 최근 블룸버그가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자 워싱턴 포스트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트럼프가 갖지 못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그는 훌륭한 대통령은 될 수 있을 것”이라고요. 다만 “민주당 후보가 되기엔 힘들 듯하다”는 단서를 붙이긴 했습니다.

 어찌 됐든 정치인에 대한 칭찬에 까다롭기 소문난 워싱턴 포스트가 그의 능력만큼은 높이 평가한 것입니다. 과연 블룸버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트럼프보다 18배 부자

 최근 한국에서 이슈가 된 블룸버그의 이야기는 그가 트럼프보다 훨씬 돈이 많다는 부분입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올해 9월 기준) 그의 자산은 555억 달러입니다. 자신의 부를 입버릇처럼 자랑하는 트럼프(31억 달러)보다 18배 돈이 많습니다. 전 세계에서 9번째 부자입니다. 이를 의식했는지 트럼프는 “블룸버그가 (대통령 도전에) 실패할 것”이라고 견제합니다.

 부자가 된 방식에 있어서도 블룸버그는 남다릅니다. 금수저였던 트럼프와 달리 블룸버그는 스스로 사업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1942년 보스턴 외곽의 브라이턴에서 평범한 유대인 부모 아래 태어났습니다. 러시아 혈통의 아버지(헨리 블룸버그)는 유제품 회사의 회계원, 어머니(샬럿 루벤스 블룸버그)는 벨라루스 출신 이민자의 딸이었죠.

 블룸버그는 지난해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나는 국가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 근로 장학금으로 존스홉킨스대를 졸업했다”고 밝혔습니다.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주차장 안내원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1964년 대학 졸업 후 블룸버그는 곧바로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입학합니다. 1966년에는 미국의 4대 투자은행이었던 살로몬 브라더스에 입사해 세일즈와 주식거래 부문에서 능력을 인정받죠.

회사에서 쫓겨나 전화위복

포브스 선정 세계의 부호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포브스 선정 세계의 부호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러나 1981년 살로몬 브라더스가 다른 회사에 인수·합병 되는 과정에서 조직과 마찰을 빚고 해고당합니다. 갑작스런 실직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됩니다. 조그만 사무실 한 칸을 얻어 회사를 세우고 ‘이노베이티브 마켓 시스템스’라는 이름을 짓습니다. 그가 내놓은 상품은 증권회사에서 수작업 했던 금융 분석 자료를 컴퓨터로 일괄 처리해 제공하는 일종의 ‘증권뉴스’였습니다. 바로 블룸버그 통신의 모태입니다.

 이듬해 블룸버그는 메릴린치를 첫 고객으로 유치했고, 전용 단말기 22대를 공급했습니다. 그 후 사업이 번창하면서 1990년에는 8000여 개의 단말기를 계약했습니다. 그 사이 회사명을 자신의 이름을 따 블룸버그로 바꿨죠. 1991년에는 뉴욕 타임스까지 블룸버그 단말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블룸버그는 증권 정보 외에도 종합 뉴스를 함께 제공하는 미디어 그룹으로 성장합니다. 24시간 방송하는 블룸버그 라디오·텔레비전, 전문가를 위한 블룸버그 마켓 매거진 등 다양한 매체로 사업을 확대합니다. 현재 블룸버그 그룹은 180여개 지역에 1만9000여명의 인원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사업이 번창하면서 회사 지분의 88%를 소유한 그는 막대한 부를 거머쥐게 됐죠.

살기 좋은 도시 뉴욕으로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사진 NYC]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사진 NYC]

 세계 최고의 부호 중 하나가 된 블룸버그는 정치에 눈을 돌립니다. 2001년 뉴욕시장이던 루돌프 줄리아니가 상원의원 출마를 이유로 3선 연임을 포기하자 블룸버그는 유력주자로 급부상합니다. 공화당 후보로 나선 블룸버그는 50.3%를 얻어 시장에 당선됩니다. 그러나 그의 앞길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2002년 1월 취임한 그는 불과 몇 달 전 벌어진 9·11 테러의 후유증을 치유하는데 집중했습니다. 당시는 테러의 충격과 공포가 뉴욕시를 여전히 뒤덮고 있던 때였습니다. 외국인은 물론 자국민조차 뉴욕에 가길 꺼려하던 시절이었죠. 취임식에서 블룸버그는 “뉴욕을 재건해 자유세계의 수도로 만들겠다”며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성공한 사업가 출신답게 블룸버그는 제일 먼저 방만한 재정 문제를 바로 잡기 시작합니다. 취임 초기 40억 달러 안팎의 적자 상태였던 시 재정은 2007년 35억 달러 흑자로 돌아섭니다. 캐릭터 산업의 최강자인 디즈니의 마케팅 전문가를 영입해 뉴욕 브랜드를 전 세계에 홍보합니다.

블룸버그의 위기 

2011년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의 모습. [중앙포토]

2011년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의 모습. [중앙포토]

 그러다 또 다시 뉴욕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2008년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금융위기 탓에 도시의 분위기는 침몰 직전의 타이타닉과 같았습니다. 특히 뉴욕의 한복판인 맨해튼에서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에서 비롯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가 벌어집니다. 하지만 그가 3번의 연임 기간 동안 쌓아온 신뢰와 정책의 성과들로 인해 그의 지지율은 견고했습니다. 특히 2009년 선거 때는 공화당을 탈당해 무소속 후보로 나왔지만 과반(50.7%)을 득표하는데 성공했죠.

 아울러 블룸버그가 재직했던 12년 동안 뉴욕은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스타트업의 요람으로 성장합니다. 실리콘 밸리를 본 따 ‘실리콘 앨리(Silicon Alley)’란 말도 생겨났죠. 블룸버그가 시장으로 재임했던 12년간의 일관된 정책 기조는 ‘과학기술의 도시 뉴욕’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경제개발 전략을 추진했죠. ①삶의 질 향상 ②비즈니스 환경 구축 ③스타트업 허브 조성 ④교통·주택 등 인프라 확대 등입니다. 블룸버그 스스로 ‘스타트업 시장(Startup Mayor)’이 되겠다고 선언하며 뉴욕을 최첨단 기술 도시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연봉 1달러 ‘기부왕’ 시장

뉴욕시장 재임 시절의 마이클 블룸버그. [중앙포토]

뉴욕시장 재임 시절의 마이클 블룸버그. [중앙포토]

 블룸버그가 가장 공들였던 분야 중 하나인 공교육 개혁과 빈곤 퇴치는 미국 주류 언론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습니다. 뉴욕의 교사 임금을 다른 지역보다 높게 인상하고, 저소득 자녀들도 좋은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공교육 예산을 늘려 다양한 방과후 프로그램을 개설했습니다.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교내 휴대전화 반입도 금지했죠.

 그는 또 강력한 공중보건 정책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식당의 위생 규제를 강화하고 시민 건강을 위해 탄산음료 소비를 억제했죠. 사무실 내의 흡연도 전면 금지했습니다. 그가 시장으로서 마지막 결재한 서류 역시 전자담배를 일반담배와 같이 제한하는 것이었습니다. 퇴임 후에도 청소년들의 전자담배 흡연을 줄이는 캠페인에 1억6000만 달러를 기부했고요.

 무엇보다 단 1달러의 연봉만 받으며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그의 모습에 많은 시민들이 지지를 보냈습니다. 특히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한 트럼프와 달리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캠페인도 벌였습니다. 2013년 9월 뉴욕 타임스는 "뉴욕의 하늘이 50년 만에 가장 깨끗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영광스런 퇴임 

뉴욕시장 시절 동성애자 커플인 시청 직원들의 결혼식 주례를 보고 있는 블룸버그. [뉴욕 AFP=연합뉴스]

뉴욕시장 시절 동성애자 커플인 시청 직원들의 결혼식 주례를 보고 있는 블룸버그. [뉴욕 AFP=연합뉴스]

 앞서 금연 캠페인에 거액을 내놓은 것처럼 그는 ‘기부왕’입니다. 2018년에는 모교인 존스홉킨스 대학에 18억 달러(약 2조1000억 원)를 기탁했습니다. 미국 대학 기부 역사상 최대 금액입니다. 당시 블룸버그는 “나 역시 누군가의 도움 덕분에 대학을 졸업하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기부금을 내는 것은 젊은이들이 기회의 평등을 누릴 수 있도록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재까지 그는 기후변화와 교육,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60억 달러에 이르는 돈을 기부했습니다.

 기부계의 큰 손인 블룸버그를 기념해 뉴욕 타임스는 2013년 12월 그의 퇴임을 알리는 기사에서 “시장 재임기간 동안 개인 돈 6억5000만 달러를 쓰고 물러난다”고 보도했습니다. 그가 쓴 돈의 내역도 간단히 소개했는데요. 직원들에게 아침·점심 식사와 간식을 제공하기 위해 80만 달러, 시민단체 등 지원금 50만 달러, 미술·복지·문화 단체에 2억6300만 달러, 흑인·히스패닉 남성을 돕는데 3000만 달러를 사용했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알려진 금액만 이 정도이고 실제 쓴 돈은 6억5000만 달러보다 많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뉴욕은 블룸버그 재임 기간 전반적으로 더 나아졌다, 시민으로 돌아가는 블룸버그가 잘 되길 바란다”며 훈훈하게 기사를 마무리 했습니다. 블룸버그는 지난 100년간 뉴욕에서 3선을 한 네 번째 시장으로 남았고요.

블룸버그의 어두운 이면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 스틸컷. [사진 영화 캡처]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 스틸컷. [사진 영화 캡처]

 고담을 지키는 배트맨은 시민들로부터 ‘히어로’로 칭송받지만 다른 한편에선 폭력을 정당화하고, 돈으로 정의를 매수한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때론 원칙을 지키기 위해 내렸던 과감한 결단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기도 합니다. 블룸버그도 마찬가지입니다. 뛰어난 업적도 있지만 약점도 존재합니다.

 가장 큰 비난을 받는 게 강경한 ‘불심검문(stop and frisk)’ 정책입니다. 블룸버그 시장 시절의 경찰은 합리적 의심이 된다는 판단을 내리면 동의 없이 시민을 검문하고 연행했습니다. 블룸버그는 적극적으로 이 정책을 펼치면서 우범자로 예상되는 시민을 탐문하고 조사해 범죄율을 낮췄습니다. 2011년 기준 뉴욕시에서 불심검문을 받은 사람은 68만 여명에 달했습니다. 문제는 불심검문이 일부지역에 편중돼 있다는 것이었죠.

 특히 불심검문 대상자는 흑인들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뉴욕의 인종 비율은 백인 35%, 히스패닉 28%, 흑인 23%, 아시안 14%입니다. 그러나 불심검문 비율은 흑인 55%, 히스패닉 32%, 백인 10%였습니다. 차별 논란이 제기되자 이 정책은 법원의 판결대 위에 섰고 2013년 8월 지방법원은 “미국 헌법에 위배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블룸버그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입니다. ‘돈 많은 백인 남성’ 이미지에다 인종차별적이라는 오해까지 받게 된 것이죠. 공화당 출신 뉴욕시장이면서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오겠다는 그에게 있어 이 같은 논란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때문에 워싱턴 포스트는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민주당 후보가 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평한 것이죠.

 그러나 블룸버그의 강력한 치안정책덕분에 범죄가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1980~90년 연간 2000건에 달했던 뉴욕의 살인사건은 2000년대 이후 500건 이하로 줄었습니다. 2017년엔 290건으로 급감해 빌 드 블라시오 뉴욕시장은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12년간 공권력을 강화한 전임 블룸버그의 공이 컸다고 이야기할 수 있죠.

'블룸버그 2편'은 다음 주에 계속.

sam@joongang.co.kr

#'윤석만의 인간혁명'은 월간중앙 1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윤석만은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국회·청와대·교육부 등 다양한 출입처를 거쳤다. 201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희대에서 미래 사회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산업만이 아닌 인간과 문화, 의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조망하며 미래인문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휴마트 씽킹』, 『리라이트』, 『인간혁명의 시대』(2018 세종도서), 『미래인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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