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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부수법안 처리 못하면 셧다운?…관계자 19명에게 물었더니

중앙일보

입력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이해찬 대표. 김경록 기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이해찬 대표. 김경록 기자

“모든 야당에 조건 없는 민생 경제 법안을 우선 처리할 것을 제안한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9일 원포인트 본회의를 제안했다. 전날 '3+1'(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이 제안한 석패율제를 민주당이 거부된 뒤 ‘우선순위’를 급변경한 것이다. 박찬대 원내대변인도 “지금 민생과 예산 부수법안이 시급하다”며 보조를 맞췄다. 교착국면에 접어든 선거법 협상에서 한숨 돌리자는 취지도 있었지만, 정부가 연일 예산부수법안 처리를 압박하고 있는 게 여당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지난 17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초유의 일”이라고 지적했고 19일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비정상적 사태를 국회가 하루빨리 시정해 달라”고 말했다. 예산안은 처리됐지만 세입의 근거가 되는 예산이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기형적 상황을 해소해 달라는 호소였다. 예산 부수법안이 연말까지 처리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기에 여권에 비상이 걸린 걸까. 이유를 찾아 떠난 여행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①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지난 18일 의원총회 직후 "예산부수법안 처리 안되면 준예산에 들어가고 국가기능이 마비되는 셧다운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조 의원의 해당 발언은 이른바 '준예산 공포'가 확산된 계기가 됐다. [중앙포토]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지난 18일 의원총회 직후 "예산부수법안 처리 안되면 준예산에 들어가고 국가기능이 마비되는 셧다운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조 의원의 해당 발언은 이른바 '준예산 공포'가 확산된 계기가 됐다. [중앙포토]

“현 상황에서 예산이 처리 안 되면 준예산에 들어가고 국가기능은 말 그대로 셧다운(shutdown·업무정지)입니다.”

의문에 처음 답을 내놓은 이는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지난 18일 의원총회 직후 조 의원은 ‘준예산 위기론’을 폈다. 준예산은 다음 회계연도 개시 전까지 국회가 예산안을 의결하지 않을 경우 의결할 때까지 전년도에 준해서 예산을 집행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준예산의 법적 근거인 헌법 54조 3항은 집행 대상을 3가지(▶헌법이나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기관 또는 시설의 유지·운영 ▶법률상 지출 의무의 이행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사업의 계속)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국책 사업이나 예산이 필요한 새로운 제도의 시행은 올스톱된다.

그러나 헌법 문구상 준예산은 ‘예산안이 의결되지 못한 때’ 발생하는 상황이다. 예산안은 의결됐지만 예산부수법안만 처리되지 않았을 경우에도 준예산이 적용될 수 있을까.

민주당 정책위 예산 전문가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당 정책위에는 당내 예산통 당직자뿐 아니라 기획재정부 등에서 파견된 공무원도 있다.

②민주당 예산 전문가

김재원 위원장,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간사, 이종배 자유한국당 간사 등이 참석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 [중앙포토]

김재원 위원장,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간사, 이종배 자유한국당 간사 등이 참석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 [중앙포토]

“글쎄요. 저도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습니다.”

민주당 정책위 당직자에게 “조응천 의원 말처럼 준예산 위기라고 보는 게 맞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그는 “예산안이 통과된 만큼 준예산 체제가 발동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기재부에서 민주당 정책위 파견됐다가 최근 부산시 경제부시장으로 발령 난 박성훈 전 수석전문위원의 답도 비슷했다. “일단 부수법안과 무관한 예산 집행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부수법안 때문에 준예산 사태가 오는지는 조금 더 명확히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책위의장실 관계자는 원내대표실 고위 당직자를 소개했고 이 당직자는 “준예산이요?”라고 되물은 뒤 “그런 것보다는 일단 제가 알기론 예산부수법안 중 하나가 지방소비세법인데 5조1000억원 규모다. 법안 통과가 안 되면 그 예산을 지자체에 내려보내지 못해서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문제가 있지만, 정확히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③기획재정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정부가 내년도 예산에 대한 집행준비, 특히 예산의 조기집행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도 예산부수법안들의 조속한 처리가 매우 시급하다"고 했다. [중앙포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정부가 내년도 예산에 대한 집행준비, 특히 예산의 조기집행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도 예산부수법안들의 조속한 처리가 매우 시급하다"고 했다. [중앙포토]

조응천발(發) ‘준예산 위기론’의 사실 여부는 기재부에 전화를 걸고서야 알 수 있었다. 예산 관련 업무를 하는 A씨는 “예산부수법안과 준예산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부수법안이 남아있다 해도 예산안 자체가 통과됐으니 준예산 체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조 의원 위기론은 과장이라는 의미였다. 준예산 위기가 아니라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기재부에서 답을 듣지 못해 전화를 다시 국회 예결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에게 돌렸다.

④민주당 예결위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연내엔 꼭 통과시켜야죠.”

민주당의 한 예결위원의 호언장담은 “초유의 사태”라는 대통령과 총리의 말을 무색케 했다. 또 다른 예결위원도 “심각한 문제가 없다는 정도만 알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는 잘 모른다”며 “다른 위원들도 마찬가지 아닐까”라고 했다. 이후 전화가 연결된 10여 명의 민주당 의원들의 답은 실제로 그랬다.

⑤송언석

자유한국당 송언석 의원은 기재부 예산실을 거친 대표적인 '예산 전문가'다. 송 의원은 준예산 공포에 대해 '근거 없는 거짓말'이라며 "다만 소재부품장비 특별회계 등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예산안은 날치기로 처리하고, 예산부수법안은 처리 안하는 건 참으로 무능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송언석 의원은 기재부 예산실을 거친 대표적인 '예산 전문가'다. 송 의원은 준예산 공포에 대해 '근거 없는 거짓말'이라며 "다만 소재부품장비 특별회계 등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예산안은 날치기로 처리하고, 예산부수법안은 처리 안하는 건 참으로 무능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3시간여의 전화 취재는 자유한국당 송언석 의원과 연결된 뒤 마무리될 수 있었다. 송 의원은 기재부 예산실장과 차관을 거친 ‘예산통’이다.

"세출에 해당하는 예산안이 통과됐기 때문에 예산이 묶여도 준예산이 발생한다거나 국정 운영 자체가 셧다운 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다만, 일본 경제보복 국면에서 한국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특별회계(2조1000억원) 법안을 마련했는데 예산부수법안 중 하나로 붙잡혀 있습니다. 부수법안 처리가 안 되면 이 예산은 전혀 집행할 수 없습니다.”

그제야 지난 17일 이낙연 총리가 ‘소재·부품·장비 강소기업 100 출범식’에 참석해 “예산안은 의결하고 예산 부수 법안은 의결하지 않은 초유의 비정상 사태를 속히 치유해 달라”고 말한 이유가 이해됐다.

예산부수법안이 덩그러니 남겨진 데는 민주당의 귀책사유가 컸다. 20대 국회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지난 10일 예산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하면서 예산부수법안을 먼저 처리하는 통상적인 절차를 변경해 예산안을 먼저 상정해 통과시킨 뒤 예산부수법안을 순차적으로 올려 처리하다가 26개 중 22개가 남겨진 것이다. 한국당의 반발을 감안해서라지만 당내에선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예결위 소속 한 민주당 초선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시야가 아주 좁았던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국회에 있다 보면 가끔 눈앞에 닥친 문제에만 집중하느라 그 외의 것을 놓치고 지나갈 때가 많습니다. 지금 국회 전체가 선거법 문제에 갇힌 것처럼요. 특히 예산부수법안과 같은 경우엔 치밀하게 준비해 신속하게 처리하는 게 원칙인데 둘 다 놓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고 또 부끄럽습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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