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41)
아파트의 숲, 한국을 떠나 북극항로로 9시간 30분을 비행하면 침엽수와 호수가 가득한 나라, 핀란드의 헬싱키 공항에 도착한다. '호수의 나라' 수오미(Suomi), '인내와 끈기'를 상징하는 시수(Sisu)의 나라다. '밤이 없는 밤' 백야가 있고, 북쪽 라플란드에는 선한 눈을 가진 순록이 살고 있다.
핀란드는 우리와 닮은 점도 있지만 또 매우 다른 나라이기도 하다. 주변 강국에 끼여서 전쟁을 치렀고, 부존자원이 없어 대외 환경에 취약한 점은 같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국가이자 혁신과 사회적 평등이 일상화된 것은 우리와 다른 점이다.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알바르 알토(Alvar Aalto), 세계 육상 최강자 파보 누르미(Paavo Nurmi)의 조국이다. 강인하고 부지런하며 소박한 민족이다. 면적은 한반도의 1.5배이고 인구는 550만 명이다. 그런 핀란드가 세계 경쟁력 지수 1위, 행복지수 1위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로는 스웨덴, 동으로는 러시아와 1300㎞의 긴 국경선을 맞대고 있다. 그런 지정학적인 여건이 바로 핀란드의 역사를 말해준다. 600여년간 스웨덴 왕국의 일부였다가 1809년 러시아에 합병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소련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1917년 핀란드는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소련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지정학적인 여건 때문에 "코앞에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하여 그 위험을 피하는 것"이 외교의 기본이 된 것이다. 25년간 대통령을 지낸 케코넨(Kekkonen, 1956∼1981)이 자서전에서 밝힌 내용이다.
서구와의 관계를 꾸준히 개선하면서, 소련과의 신뢰를 깨지 않는 것이 핀란드 외교였다. 소련과 수차례 격렬한 전쟁도 했지만, 이런 신뢰관계 덕분에 2차대전 후 동유럽 국가들이 소련 위성국이 된 것과 대조적으로 그들은 독립을 유지했다. 핀란드는 교육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학교가 사회와 호흡하면서, 사회통합을 이루는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또 모든 국민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한다. 교육비 부담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교육방식은 수업 시간이 적고, 시험은 가급적 적게 보며, 다양성과 형평성을 존중한다. 사교육은 전혀 없다. 대신 방과 후 활동이나, 공부 모임, 성장에 도움이 되는 스포츠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 있다.
사범대학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며, 교사는 석사 이상의 자격을 요구한다. 하루 4시간 이상의 학습시간과 연구개발로 전문성을 기르고, 교사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핀란드에서는 의사, 변호사 못지않게 선호하는 직업이 교사라고 한다. 이런 교육 환경 덕분에 'OECD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핀란드가 늘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는다.
핀란드는 스타트업 강국이다. 정부가 전략산업 육성에 발 벗고 나서서 규제와 장벽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대처한다. 그런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AI, IT, 바이오, 자율주행차 등에 대한 연구개발이 활발하고 최고의 혁신 국가로 평가받는다.
디자인도 유명하다. 단순하면서도 다소 투박한 면이 있다. 유행이 아니라 그들만의 고유한 특성을 살려낸다. 또, 버려진 그 무엇인가의 가치에 주목하여 쓸모없어 보이는 소재를 사용,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낸다. 건물을 지을 때도, 공원의 벤치 하나도, 마치 자연 속의 일부인 듯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룬다.
핀란드는 역사적으로 ‘특권계층’이 군림하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평등과 인간존중이 사회 전반에 자연스럽게 베여있다. 직업에 대한 선입견이 없고, 대학 총장과 스쿨버스 기사의 월급에 큰 차이가 없는 나라이다. 그래서 직업 선택은 '돈이나 명예'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한다.
핀란드인은 과묵하고 자기 자랑을 싫어한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를 만들어 나가고 끊임없이 혁신한다. 복지·평등·정직·신뢰가 기본적인 가치로 생활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또 그들은 다른 이들의 삶에 대하여도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그 결과 숲과 장거리 육상 선수만 있던 나라가 교육, 산업,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걸출한 성취를 이루어내고,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되었다. 이웃 러시아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외교도 참고할 만하다.
부강한 나라는 돈만 많은 나라가 아니다. 서로 배려하고, 평등과 공정이 사회에 뿌리내리고, 계층과 서열이 없어야 한다. 12월 8일 34세 여성이 세계 최연소 총리로 선출되어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다. 나이와 젠더(성별)가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는다. 국가적 이슈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양한 이해관계를 수렴, 조화롭게 합의를 만들어낸다. 이런 나라가 진정 부강한 나라이다.
한국은 어느 정도 양적 성장은 이루었지만, 사회갈등과 불평등이 심각하다. 이제 우리도 핀란드와 같이 '질적인 성숙함'을 추구해 나갈 때이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정직·평등하며 신뢰하는 사회' 말이다. 이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국민의 합의와 공감대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청강투자자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