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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북한 ICBM 쏴도 미국 군사옵션 꺼내기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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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민석
김민석 기자 중앙일보 전문기자

북한의 ‘크리스마스 선물’ 전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7년 8월 국방과학원 화학재료연구소를 시찰하고 있다. 북한은 당시 김 위원장 왼쪽 벽에 부착된 3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3의 설계도를 노출했다.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7년 8월 국방과학원 화학재료연구소를 시찰하고 있다. 북한은 당시 김 위원장 왼쪽 벽에 부착된 3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3의 설계도를 노출했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이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미국에 ‘나쁜 선물’을 보내면 미국은 군사옵션을 사용할까. 찰스 브라운 미 태평양공군사령관은 지난 17일 워싱턴에서 북한이 레드 라인(Red Line)을 넘지 말도록 경고음을 보냈다. 미국의 레드 라인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나 핵실험 재개다. 그땐 미국이 군사공격을 한다는 것이다. 브라운 사령관은 “2017년 우리가 하던 것(군사옵션)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이 군사옵션 준비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사령관의 톤은 경고가 아니라 북한에 ‘제발 레드 라인을 넘지 말아 달라’고 애걸하는 듯한 느낌이다.

좋은 선물 아닌 나쁜 미사일 우려 #2017년처럼 미군 움직임은 없어 #북, 연말보다 내년초 도발 가능성

현재로썬 북한이 올 연말 미국에 ‘좋은 선물’을 보낼 가능성은 매우 낮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절실한 대북 경제제재를 해제 또는 완화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는 중국과 러시아가 지난 16일 유엔 안보리에 제출한 대북제재 완화 결의안에 대해 곧바로 반대 입장을 냈다. 이런 점을 간파한 김정은은 미국의 협상 재개 요청에 눈길도 주지 않고 있다.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가 최근 방한해 북한과 회동을 희망했지만, 북한은 외면했다. 속 빈 강정은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비건 대표가 중국으로 날아갔지만 소득은 별로 없었다.

한반도는 자칫 2017년 위기로 복귀할 상황이다. 그때보다 더 위험하고 복잡하다. 전략적인 상황이 판이해졌다. 북한이 핵무장을 해서다. 우리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과 트럼프의 북 비핵화 협상이 사실상 실패하면서 북한에 핵무장할 시간만 벌어줬다.

2년 전엔 불리했던 북한이 이젠 핵무기(20∼60발)와 각종 미사일로 큰소리치고 있다. 북한을 상대로 한 미국의 군사옵션 사용도 쉽지 않다. 핵무기는 사용하지 않는 무기라지만 상대방에게 공포심은 충분히 줄 수 있다. 최악의 상황에선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법도 없다.

이런 환경에서 나올 북한의 나쁜 선물은 단거리 미사일 이상의 도발로 보인다. 북한이 올해 들어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대형 방사포(다연장포)를 13차례나 발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단거리 미사일이 미국에 당장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최근 동창리에서 시험한 미사일 엔진으로 만든 로켓에 인공위성을 실어 발사하거나 개량된 ICBM을 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김 위원장도 어쩌면 마지막 수단인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발 시기는 크리스마스 또는 내년 초가 될 수도 있다.

인공위성과 ICBM 가운데 북한이 선택하기 쉬운 카드는 인공위성이다. ‘우주 개발 권리가 있다’는 논리 때문이다. 과거 광명성 발사 때도 북한은 그랬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유엔 결의로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금지하고 있다. 인공위성을 핵탄두로 교체하면 ICBM으로 변신해서다. 북한은 나아가 인공위성에 정찰위성을 탑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이 핵무기의 표적을 확보하려면 정찰위성이 필수다. 미국은 정찰위성과 고고도 정찰기로 북한 내부를 정밀하게 들여다보고 있지만, 북한엔 그런 게 없다.

인공위성보다 수위가 높은 도발은 ICBM 발사다. 북한의 ICBM 발사에는 4가지 강도의 방안이 있다. 첫째는 최소 수준의 ICBM 발사다. 화성-15(사거리 1만3000㎞)를 일본 열도와 하와이 사이에 쏘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기권 재진입 능력을 검증하는 것이다. 북한이 2017년 11월 발사한 화성-15는 동해에 떨어졌는데 탄두가 대기권 재진입 중 고열과 압력에 타버렸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둘째, 그 위 강도는 다탄두 ICBM 발사다. 최근 시험한 엔진으로 제작한 로켓에 다탄두를 탑재해 태평양에 쏘는 것이다.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에 따르면 2017년 발사한 화성-15는 엔진 추력이 낮아 3∼4발의 소형 핵탄두를 실을 수 없다고 한다. 셋째는 더 강한 도발인데 북한이 2017년 8월 슬쩍 설계도를 공개한 3단 로켓형 ICBM인 화성-13 발사다. 군사문제연구원 김열수 안보전략실장은 “3단형 ICBM이 개발되면 다탄두 핵무기로 미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방안은 북한에도 매우 위험한 도발이다. 북한이 핵탄두를 장착한 ICBM을 태평양으로 쏘아 폭발시키는 것이다. 북한엔 핵무력을 실증하는 실험이지만 미국은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레드 라인을 넘을 때 미국 카운트 펀치를 날릴 수 있을까다. 하지만 핵무장한 북한을 상대로 미국이 군사옵션을 사용하기엔 부담이 크다. 북한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이나 워싱턴 등에서 대규모 희생을 감수하고 북한에 군사옵션을 쓸지는 의문이다. 따라서 김정은이 레드 라인을 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적으로 군사옵션을 발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미국은 2017년처럼 군사옵션 준비에 서두르지 않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일주일도 남지 않았는데 미군의 움직임은 거의 없다. 여기에다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 중이고, 문재인 정부도 미국의 군사옵션 사용 때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미군 대비태세를 비교해보자. 2017년 위기 때엔 미 국방부가 한반도 주변에 군사력을 미리 증강해놨었다. 당시 일본 이와쿠니·요코다·가데나 기지에 스텔스기인 F-22 및 F-35와 해병대용 F/A-18E/F 수십 대를 배치했다.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도 B-2 스텔스 폭격기와 B-1B 랜서 및 B-52H 전략폭격기를, 오산·포항엔 아파치헬기와 F-16, F/A-18E/F 수십 대가 왔었다. 항공모함도 평시 1척에서 ‘2+2’ 체제로 강화됐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USNI에 따르면 이달 16일 현재 일본 요코스카에는 미 항모가 로널드 레이건함 뿐이다. 항모 니미츠함과 루즈벨트함은 미 서부해안에 있다. 대비태세가 한가해 보인다.

반대로 북한은 바쁘다. 김 위원장은 이달 하순 노동당 전원회의를 소집했다. 북한이 전원회의를 일 년에 2번 개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는 이 회의에서 ‘새로운 길’을 정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김 실장에 따르면 ‘새로운 길’은 ▶미국과의 대화를 대결로 ▶비핵화에서 핵무장으로 ▶제재 해제를 통한 경제 건설에서 자력 부흥으로 ▶미국을 활용한 이익 도모에서 중·러와 협력으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한다. 북한이 미국과 긴장국면에서 장기간 버티는 생존체제를 마련하려는 차원이다.

결국 올 연말엔 북·미 간 결정적 충돌은 낮아 보인다. 북한의 새로운 길 선언과 도발로 긴장이 고조될 내년 초순이 문제다. 미국이 군사옵션을 꺼낼지, 아니면 북핵을 묵인한 채 압박만 할지도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한국 안보엔 불리하다. 따라서 정부는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더는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체제를 강화하고 능동적인 안보정책이 필요하다. 미국의 전술핵을 인계철선으로 삼는 핵우산 보장도 중요하다. 한국 독자적인 핵능력 확보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김민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