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사랑의 불시착' 속 현빈 사는 北동네, 전기밥솥·韓 화장품이?

중앙일보

입력 2019.12.19 16:27

업데이트 2020.01.09 18:01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한 장면. 북한에 불시착한 윤세리(손예진)의 요청에 리정혁(현빈)이 고기를 굽고 있다. [사진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한 장면. 북한에 불시착한 윤세리(손예진)의 요청에 리정혁(현빈)이 고기를 굽고 있다. [사진 tvN]

tvN 새 주말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연착륙할 수 있을까. 첫 주 시청률은 6.8%(닐슨 코리아 유료 플랫폼 기준)로 전작 ‘날 녹여주오’의 최고 시청률(3.2%)보다 2배 넘게 뛰었지만, 북한의 사택 마을을 주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예상치 못한 논란에 처했다. 재벌 상속녀 윤세리(손예진)가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해 리정혁(현빈) 장교와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물인 만큼 북한의 모습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첫 회부터 전면에 등장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이다. 방영 전까지만 해도 영화 ‘협상’(2018) 이후 1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의 호흡에 가장 큰 관심이 쏠렸다.

현빈·손예진 ‘협상’ 이후 두 번째 만남
‘별그대’ 박지은 작가 신작 기대 모아
“북한은 실존, 상상 속 판타지와 달라”
영화 ‘백두산’ 등 색다른 접근 늘어나
거부감 낮추기 위해 브로맨스 차용도

극 중 북한의 모습은 그동안 뉴스 화면에서 보던 피폐함과는 거리가 멀다. 강원 횡성ㆍ충북 충주 등을 오가며 촬영한 전방부대 사택 마을은 동화 속 마을처럼 아기자기하게 그려진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정전이 되지만 집안에서는 자전거를 발전기 삼아 돌리며 TV를 보고, 쌀밥에 고기는 물론 국수까지 손수 만들어 먹으며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아로마 향초는 없어도 맘만 먹으면 한국 화장품에 속옷, 전기밥솥까지 구하지 못하는 게 없는 여유 있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방과 후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모습이나 숙제를 하라고 다그치는 장면은 여느 드라마에 들어가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극 중 북한 아주머니들이 모여 자전거 발전기를 돌리며 TV를 보는 모습. [사진 tvN]

극 중 북한 아주머니들이 모여 자전거 발전기를 돌리며 TV를 보는 모습. [사진 tvN]

시내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한국산 화장품을 구할 수 있다. [사진 tvN]

시내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한국산 화장품을 구할 수 있다. [사진 tvN]

제작진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외계인을 앞세운 ‘별에서 온 그대’(2013~2014), 인어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푸른 바다의 전설’(2016~2017) 등 그동안 박지은 작가가 구현해온 세계는 낯설지만 매력적인 공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상상할 수 없는 세상에서 펼쳐지는 판타지와 실존하는 공간을 배경으로 만든 이야기는 엄연히 다르다”며 “그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과도한 설정이 되려 몰입의 방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제작진은 “철저한 자료조사를 통해 현실과 최대한 가깝게 구현하고자 노력했다”는 입장이다. 2008년 여배우 정양이 인천에서 레저 보트를 즐기다 기상악화로 북방한계선 인근까지 떠내려갔던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장교, 밀수꾼, 유학생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취재했다고 밝혔다. 탈북민 출신인 곽문안 작가와 백경윤 북한말 전문가 등도 참여해 현실감을 더했다. 이정효 PD는 “단절된 공간, 긴장감 넘치는 사건들이 어우러지는 배경으로서 북한을 다루고 있다”며 정치 문제로 확대 해석되는 것을 경계했다.

하지만 대중의 불편한 시선은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남남북녀 로맨스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북한 여장교와 남한 왕자가 만난 ‘더킹 투하츠’(2012)나 천재 탈북 의사가 한국 병원에서 근무하는 ‘닥터 이방인’(2014) 등과도 결이 다르다. 충남대 국문과 윤석진 교수는 “이전 작품들이 남북 분단 상황을 하나의 장치로 사용했다면, ‘사랑의 불시착’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재벌과 군인의 만남이기 때문에 체제 문제와 완전히 별개로 보기 힘들다”며 “남북관계 경색 국면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공감대를 얻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화 ‘백두산’에서 남한 EOD 대위와 북한 인민무력부 요원으로 호흡을 맞춘 하정우와 이병헌. [사진 CJ엔터테인먼트ㆍ덱스터스튜디오]

영화 ‘백두산’에서 남한 EOD 대위와 북한 인민무력부 요원으로 호흡을 맞춘 하정우와 이병헌. [사진 CJ엔터테인먼트ㆍ덱스터스튜디오]

지난 몇 년간 남북한 소재 영화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심리적 거부감을 낮추는 것도 중요한 숙제 중 하나가 됐다. 한번 “불편하다”고 낙인이 찍히고 나면 반등의 기회를 얻기 어려운 탓이다. 19일 개봉한 영화 ‘백두산’의 김병서 감독은 언론시사회에서 “백두산 화산이 폭발해 도시 전체가 화산재로 뒤덮여있지만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삶의 터전으로서 생활감을 더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북한 인민무력부 소속 요원 리준평(이병헌)과 남한 EOD(폭발물처리반) 대위 조인창(하정우)이 서로 마음을 여는 데 사탕·콜라 등 식료품이 중요한 매개체가 되는 것처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김형석 영화평론가는 “‘공조’(2017)를 시작으로 ‘강철비’(2017) ‘공작’(2018) 등 남북 요원 간의 브로맨스는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며 “‘공조’의 현빈이나 ‘강철비’의 정우성처럼 잘생긴 배우들이 북한 캐릭터를 맡는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60~70년대 반공 영화에서 북한군을 흉악하거나 비열한 이미지로 정형화했다면, 최근에는 이를 반대로 활용해 고정된 이미지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시도가 꾸준하게 이뤄지고 있단 얘기다. 이어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 이후 다양한 상상력이 덧붙여지고 있다”며 “지금은 액션이나 장르물이 많긴 하지만 멜로 시나리오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영화 ‘강철비’에서 북한 요원과 남한 외교안보수석으로 호흡을 맞춘 정우성과 곽도원. [사진 NEW]

영화 ‘강철비’에서 북한 요원과 남한 외교안보수석으로 호흡을 맞춘 정우성과 곽도원. [사진 NEW]

내년에도 여러 편이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강철비’의 양우석 감독은 곽도원·정우성과 다시 한번 손잡고 ‘정상회담’을 선보인다. 남북미 정상회담 중 북한의 쿠데타로 세 정상이 북의 핵잠수함에 납치된 후 벌어지는 이야기로 이번에는 두 배우가 남북한 소속을 바꿔서 연기한다. 양 감독은 지난 9월부터 다음웹툰에서 ‘정상회담: 스틸레인3’를 연재 중이다. ‘베를린’(2013)에서 남북한 요원 이야기를 다뤘던 류승완 감독은 1990년대 소말리아 내전 때 고립된 남북 대사관 공관원들의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모가디슈’를 준비 중이다. 김윤석·조인성·허준호 등이 캐스팅돼 지난달 모로코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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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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