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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감정 뭐지? 마음을 감추던 습관이 만든 부작용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50) 

서울 남쪽에 우뚝 솟은 관악산은 곳곳의 봉우리가 험한 바위로 이루어져 기묘한 형상을 이룬다. [중앙포토]

서울 남쪽에 우뚝 솟은 관악산은 곳곳의 봉우리가 험한 바위로 이루어져 기묘한 형상을 이룬다. [중앙포토]


바위 꿰는 솔향기

흙 붙이 하나 없는 관악산 꼭지바위
몸 읽는 푸른 노송 휘었어도 뿌리 깊어
힘 달려 부여잡은 손
솔향으로 답하네

無用功 쇠는 세월 송진으로 시를 토해
가슴속 임의 모습 琥珀으로 삼키네
난 나야 너도 너라야
한 숨결이 통하리

솔 그늘 누워보니 일렁이는 點描畵
눈썹 끝 산새 울음 산봉우리 이어지고
덜어낸 마음 가까이
오랜 허물 나눴네

해설

서울 남쪽에 우뚝 솟은 관악산은 경기 오악 중 하나다. 곳곳의 봉우리가 험한 바위로 이루어져 기묘한 형상을 따라 이름 붙은 바위가 많다. 관악구, 금천구, 안양시, 과천시가 빙 둘러 수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계곡과 암벽, 작은 폭포, 바위 능선이 골고루 갖추어져 자주 올라도 지루하지 않다.

한양천도를 결정한 태조와 무학대사는 경복궁에서 남면(南面)하면 관악산이 바라보이는 형세를 남방(火)의 오행원리로 관악산은 화기(火氣)가 세다고 읽었다. 관악산 화기를 누르려 산중에 못을 팠고, 산 정상 연주바위 절벽에는 연주대(戀主臺)라는 암자를 세웠다. 마음으로 임금을 사모하며 기도하라는 뜻이다.북면(北面)하면 한양 궁성이 훤히 바라보이는 곳이니 신하의 도리가 고스란히 담겼다. 남면, 북면은 임금과 신하의 자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용어다.

우리 조상은 으레 풍수를 읽었고, 그 흐름에 따라 건축물을 배치하였다. 특히 땅을 인위적으로 깎거나 물길을 돌리는 행위를 삼갔다. 심지어 앞마당에 정원도 만들지 않고 뒷산이나 언덕 공간을 이용해 후원을 꾸몄다. 우리 개념에는 사실 정원이 아니라 후원이 맞는 용어다. 정원은 앞마당에 인공적으로 꾸민 일본식 표현이다.

우리 조상은 풍수를 읽어 그 흐름에 따라 건축물을 지었다. 땅을 인위적으로 깎거나 물길을 돌리는 행위를 삼갔다. 사진은 정상에서 본 관악산. [중앙포토]

우리 조상은 풍수를 읽어 그 흐름에 따라 건축물을 지었다. 땅을 인위적으로 깎거나 물길을 돌리는 행위를 삼갔다. 사진은 정상에서 본 관악산. [중앙포토]

중국은 중원에 황하라는 큰 강이 흘러 홍수가 나면 온 국토가 피해를 입었다. 치수 사업에 나라의 명운을 걸었다. 처음에 댐을 쌓아 물길을 막아보려는 시도를 했으나 도리어 더 큰 홍수피해를 입었다. 이에 순임금은 우(禹)를 시켜 물길을 터 운하를 만드는 사업을 일으켰고 성공했다. 순은 인품과 능력 있는 신하인 우에게 왕권을 물려주어 역사상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뒤에 수나라는 운하사업과 고구려 원정에 몰두하다가 38년이라는 짧은 왕조를 마감했다. 하지만 그때 뚫은 운하를 아직도 사용한다. 이런 사정을 이해한 우리 조상은 미리 풍수를 읽어 국력에 맞게 홍수와 가뭄피해를 예방하는 고차원의 방법을 택한 셈이다.

풍수는 하늘과 땅, 물길을 읽는 일이다. 사람 몸을 읽는 건 경락이다. 경락은 인체 내부의 오장육부의 기운이 소통하는 통로다. 12개의 정경과 임맥, 독맥 등 8개의 기경이 있다. 내부 장기의 작용이 겉 표면으로 드러나는 길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1번 국도가 서울에서 시작해 어디 어디를 거쳐 부산에 도착하는 거와 같다. 검룡소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한반도 중앙을 관류하는 한강이 되는 이치와 같다. 강물 어느 한 곳이 막히면 흐름이 더뎌지거나 흙탕물이 내려오는 현상이 일어나듯 경락도 그렇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퇴계와 율곡은 기수련에 아주 고수였다고 한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기운이 어떻게 흐르는지 살피는 방법은 우리나라에선 이미 널리 실천하고 있었다. [중앙포토]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퇴계와 율곡은 기수련에 아주 고수였다고 한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기운이 어떻게 흐르는지 살피는 방법은 우리나라에선 이미 널리 실천하고 있었다. [중앙포토]

옛 선비들은 으레 경락도를 머리에 새겨두고 기를 돌리는 기수련을 했다. 특히 몸의 정중앙을 흐르는 임맥과 독맥, 허리띠처럼 몸통을 다잡아주는 대맥의 흐름을 살피고 증강하는 기수련에 몰두하였다. 이때 호흡을 가다듬으며 기운이 어떻게 흐르는지 몰입해 살핀다. 요즘엔 이런 방법을 ‘마음챙김’(mindfullness)이라고 부른다. 마치 서양에서 유래한 것처럼 오해하나 사실은 우리나라에선 이미 널리 실천하고 있었다. 퇴계나 율곡 같은 분이 아주 고수였다고 한다. 이런 법을 ‘운기조식’이라 부른다. 이름이 뭐가 되었던 중요한 것은 이치이다.

경락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아는 대로 간단한 해부학지식을 응용하면 충분하다. 사지를 순환시키는 방법은 편하게 누워서 호흡하며 먼저 오른발에 집중한다. 무언가가 접촉하는 느낌을 떠올린다. 점차 위로 올라가 종아리, 허벅지, 엉덩이에 이른다. 등과 견갑골을 거쳐 오른 어깨, 팔꿈치, 손목, 손바닥을 의식한다. 다시 올라가 오른쪽 목과 뒷목, 머리에 도착한다. 방향을 틀어 아래로 몸 왼편을 관류한다. 역순으로 왼발까지 내려오면 된다.

다음에 몸 중앙 배꼽부위를 의식한다. 이때 ‘따뜻해진다. 편안하다’는 의념과 말을 주문처럼 읊조리는 게 좋다. 배꼽에서는 할머니나 어머니가 따뜻한 손으로 배를 쓰다듬어주었던 기억을 떠올려본다. 방향은 시계방향이다. 실제로 자기 손으로 배꼽 주위를 시계방향으로 마사지하는 것도 좋다. 호흡은 자연스럽게 하면 된다. 억지로 숨을 멈추거나 시간을 늘리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느려지고 느긋해진다. 의자에 앉아서 해도 된다.

정수리에서 시작해 미간, 코, 목울대, 가슴 전중혈, 명치, 배꼽, 단전, 항문, 꼬리뼈, 척추줄기 경락들, 뒷목 대추혈을 거쳐 백회까지 돌리는 게 임독맥 순환이다. 또 허리부위 돌리는 대맥 순환이 기수련으로는 으뜸이다.

마음챙김은 사실은 몸챙김이다. 자기 몸과 대화하며 몸의 요구를 들어주는 거다.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편안한지, 누구와 있을 때 행복한지 몸은 항상 말하고 있다. 체표에서 느끼는 감각뿐만 아니라 내부 감각도 훈련해야 한다. 그런 느낌을 외면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순응할지 연구해야 한다.

감각은 감정을 일으킨다. 현대인은 감각을 외면하기에 감정도 다양하지 못하다. 실제 인간의 감정은 정말로 다양하다. 칠정(七情)처럼 편의상 7가지나 몇 개로 나눈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감정을 40여개로 상세히 설명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그 중 7개도 확실히 구별하지 못한다. 감정을 감추고 외면하는 게 습관이 되어서 그렇다. 그러다 어느 날 감정이 폭발하고 나서 자신도 깜짝 놀란다.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도 결국은 자기감정이 무엇인지 몰라서 생긴 부작용이다.

남에게 드러내는 외모만 자기 몸이 아니다. 외모가 못마땅해 여기저기 뜯어고치는 것도 몸챙김을 몰라 생기는 거다. 몸챙김을 잘 하면 화색이 돌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져 당당하게 된다. 이런 걸 기개, 호연지기라고 부른다. 호연지기 같은 당당하고 떳떳함이 어쩌면 최고의 성형이겠다.

몸 중앙 배꼽부위를 의식하면서 ‘따뜻해진다. 편안하다’는 말을 주문처럼 읊조려본다. 호흡은 자연스럽게 하면 된다. 억지로 숨을 멈추거나 시간을 늘리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느려지고 느긋해진다. [사진 pxhere]

몸 중앙 배꼽부위를 의식하면서 ‘따뜻해진다. 편안하다’는 말을 주문처럼 읊조려본다. 호흡은 자연스럽게 하면 된다. 억지로 숨을 멈추거나 시간을 늘리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느려지고 느긋해진다. [사진 pxhere]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도 호연지기를 기른다. 맹수에게 쫒기는 초식동물도 위기를 벗어나면 곧 몸과 마음이 평소대로 돌아와 초연해진다. 오래 두려움에 휩싸이지 않는다. 그들이 마음챙김을 하는 방법은 몸을 부르르 터는 행동이다. 투레질로 아픈 기억을 털어내고 곧바로 평상심을 회복한다. 이런 건 사람도 배워야 하겠다.

소나무는 어려울 때 송진을 품어낸다. 솔가지를 흔들거나 부러뜨리면 제 몸을 읽고 상처부위에 송진을 내어 치유한다. 고맙게도 소나무는 자신을 만진 사람에게는 도리어 솔향기를 묻혀 보답한다. 송진이 100만 년 이상 땅속에서 압력으로 보석이 된 것이 호박이다. 벌이나 곤충이 호박 내부에 담긴 걸 더 비싸게 쳐준다.

무용공(無用功)은 쓸데없는 것 같아도 길게 보면 더 큰 효용가치가 있는 걸 말한다. 장자에 너무 커 쓸데없는 가죽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별 소용이 없어 누구도 베지 않아 오랫동안 그늘을 제공해 여러 사람이 쉴 수 있었다는 고사다.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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