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워킹맘 견뎠다, 이젠 슈퍼우먼 사양한다

중앙일보

입력 2019.12.19 07:00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36)

 

아이에게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때는 마치 슈퍼우먼처럼 두 아이를 안아 올리고, 눈곱 낀 얼굴로 유치원으로 달려갈 수도 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자립할 때가 되면 엄마는 힘이 빠진다. [사진 pixabay]

아이에게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때는 마치 슈퍼우먼처럼 두 아이를 안아 올리고, 눈곱 낀 얼굴로 유치원으로 달려갈 수도 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자립할 때가 되면 엄마는 힘이 빠진다. [사진 pixabay]

"역시 나는 '엄마'라는 것이 전면에 나서면 일이 안 돼."
아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쳐다본다.
"엄마의 마음으로 집안일에 손을 대다 보면 번역 작업은 뒤로 밀려나게 돼. 그래서 마감을 마칠 때까지는 '주부 반 은퇴 상태'로 돌아갈게. 내일부터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 먹어."
"어쩐지 연말 마감으로 바쁘다면서 주방에 있어서 어쩐 일인가 했어요. 하하하. 그럼 언제쯤 '엄마'로 복귀하시나요?"
"올해 마지막 마감이 끝나면 좀 쉬고 나서 복귀할게. 부탁한다."

여성호르몬의 장난인지 '엄마의 마음'이 전면으로 나왔던 날의 풍경이다. 주방에서 이것저것 정리하고 보니 11시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 아닌가. 늦어도 9시부터는 일을 해야 했는데 낭패였다.

'주부 반 은퇴'라는 것은 시아버님 이외의 식구들 식사 준비는 기본적으로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2년 전 시아버님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이 선택한 협조 규칙이다. 나는 나와 시아버님 문제만 해결하고, 남편과 두 아들은 각자 스스로 해결한다. 아들들이 요리할 때는 내 몫까지 만들기도 한다. 남편은? 요리하지 않는 사람이다.

요리하고, 쓸고 닦고... 손을 대기 시작하면 그동안 방치되었던 것들이 '여기도요'라고 호소해 온다. [사진 pixabay]

요리하고, 쓸고 닦고... 손을 대기 시작하면 그동안 방치되었던 것들이 '여기도요'라고 호소해 온다. [사진 pixabay]

종종 일에 묻혀 살다가 산책조차도 할 여유가 없을 때는 집안일로 기분전환을 하기도 한다. 요리하고, 쓸고 닦고…. 손을 대기 시작하면 그동안 방치되었던 것들이 '여기도요'라고 호소해 온다. 하나둘 처리하다 보면 어느새 서너 시간이 훌쩍 날아간다. 프리랜서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시간이 있다는 착각. 감시자가 없는 여유. 엄연히 지켜야 하는 마감일이 있는데 말이다.

최소한 마감일을 잘 지켜야 일과 수입을 얻을 수 있는 프리랜서. 엄격히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 특히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무리 집 안이 어질러져 있어도 일을 우선할 수 있어야 한다. 방구석에 쌓인 먼지에 둔감해져야 한다.

워킹맘은 아이와 일이라는 쌍두마차의 마부다.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 두 말이 잘 달릴 수 있게 조율해야 한다. '나'는 뒷전으로 물러난다. 내 얼굴 씻는 일보다 아이를 씻기고 챙기는 일이 우선이다. 머리는 항상 뒤로 묶는다. 어느 날 깨닫는다. 머리를 풀어서 멋 부릴 시간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선머슴 같은 쇼트로 변해간다. 젊은 엄마였던 시절의 나의 이야기이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는 일화가 있다. 친정 나들이 때 아이에게 보약이라도 먹일 요량으로 한약방을 찾았다. 한의사가 아들과 나를 번갈아 보다가 한마디 한다. "엄마는 안 그런데 아이가 왜 이렇게 예뻐요? 하하하" 나는 기뻐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곤란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내 사진을 보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상하 옷 색상을 맞추는 것은 둘째치고 선머슴 같은 복장과 신발. 나는 어린아이를 안아야 하는 엄마는 힐 같은 것을 신으면 안 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왜냐, 아이를 안았다가 넘어지면 큰일이니까. 나의 모든 신경은 '아이'와 '일'을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애를 키우는 시기에 내가 가장 고민이었던 것은, 일과 아이 중 어느 쪽을 제1순위에 놓아야 하는가였다. 어느 쪽도 소홀히 할 수 없으니 둘 다 1순위였다. 당연히 내 몸을 혹사하게 된다. 젊었을 때는 밤샘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아이를 재우려다 같이 잠들어버렸다 해도 어찌어찌 만회할 수 있었다. 물론 마감일을 못 맞추어서 아슬아슬했던 적도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해고'를 각오해야만 했으나 거래처의 이해와 아량으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50대 중반으로 접어든 지금, 아이들은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할 줄 알게 되었다. 대신에 내가 돌봐야 하는 것이 생겼다. 바로 '나'다. 조금 무리하면 이의를 제기해 온다. 허리가, 잇몸이, 피부가 내 몸의 부품들이 짜증을 낸다. '젊음'이라는 무기가 없으니 밤샘 작업도 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는 다음 날 빌빌댈 각오를 해야 한다.

50대 중반으로 접어든 지금. 아이 키울 때의 전투적인 여자는 사라지고 나약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사진 pixabay]

50대 중반으로 접어든 지금. 아이 키울 때의 전투적인 여자는 사라지고 나약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사진 pixabay]

인생은 절묘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이에게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때 엄마는 젊고 혈기왕성하다. 마치 슈퍼우먼처럼 두 아이를 안아 올리고, 눈곱 낀 얼굴로 유치원으로 달려갈 수도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자립할 때가 되면 엄마는 힘이 빠진다. 아이들은 엄마와의 포옹을 거부하기 시작하는데 엄마는 다 큰 내 아이들이 날 꼭 안아주었으면 한다. 아이를 키울 때의 전투적인 여자는 사라지고 나약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큰 아이가 고등학생, 둘째가 중학생이 되면서 나의 우선순위는 확연해졌다. 일이 1순위이고 집안일은 2순위로. 가족은 서로 도와준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긴 시간을 들여 '슈퍼우먼'이었던 엄마, 아내는 '나약한 인간'임을 보여주고 호소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성인이 된 두 아들이 일하는 엄마를 배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정착했다. "협력이라는 거 참 좋다." 나는 마치 마법이라도 걸듯 종종 이 말을 하며 웃는다. 중년 프리랜서의 일과 가정의 양립은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한일출판번역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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