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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명복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나토식 핵공유는 사실상의 전술핵 재배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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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배명복
배명복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미국과 핵공유 가능한가

이달초 런던에서 열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핵공유 전략에 따라 나토는 회원국 국방장관들로 구성된 핵계획그룹(NPG)을 통해 핵전략을 논의하고, 유럽에 배치된 미국 전술핵무기 운용에 관한 의사결정을 한다. [EPA=연합뉴스]

이달초 런던에서 열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핵공유 전략에 따라 나토는 회원국 국방장관들로 구성된 핵계획그룹(NPG)을 통해 핵전략을 논의하고, 유럽에 배치된 미국 전술핵무기 운용에 관한 의사결정을 한다. [EPA=연합뉴스]

독일은 핵보유국이 아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라 핵 개발과 보유가 금지돼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침공으로 핵전쟁이 벌어진다면 독일은 핵무기로 러시아를 공격할 수 있다. 독일 공군 파일럿이 조종하는 파나비아 토네이도 전투기가 핵폭탄을 탑재하고 독일 서부 라인란트팔츠주(州)의 뷰헬 공군기지에서 발진해 러시아 내 목표물에 핵폭탄을 투하하게 된다. 전시에 대비해 뷰헬 공군기지에는 미국의 B61-4 전술핵폭탄 20개가 배치돼 있다. 핵무기가 없는 독일이 자국 공군기를 이용해 핵 공격을 할 수 있는 것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핵공유 전략 때문이다.

핵 사용 부담과 책임 공유하지만 #실질적 공유와는 거리가 멀어 #한반도 비핵화 원칙 유지 위해선 #괌의 미 전술핵 공동사용이 방법

나토가 창설된 1949년 당시 유일한 핵보유국이었던 미국은 처음부터 회원국들에 핵 억지력 제공을 약속했다. 출범과 동시에 채택된 나토의 전략 개념은 “나토는 회원국이 공격을 받는 즉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전략적 폭격’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할 것이며 동원되는 무기의 종류에는 ‘예외’를 두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전략적 폭격이 가능한 예외 없는 무기는 핵무기를 의미한다. 나토 회원국을 소련이 공격하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위력을 입증한 ‘절대무기’인 핵무기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미국의 결의는 지난 70년간 나토를 집단 안보공동체로 유지하는 핵심적 토대가 됐다.

하지만 소련이 핵무기를 개발한 데 이어 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 발사까지 성공하자 유럽 회원국들은 미 핵우산의 신뢰성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소련이 로켓을 우주 공간으로 쏘아 올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는 것은 미 본토를 향해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고, 이는 워싱턴에 소련의 핵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각오하고 과연 미국이 유럽을 핵우산으로 지켜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미국, 소련에 이어 영국까지 핵보유국 대열에 합류하면서 사실상 유럽의 ‘이류 국가’로 전락한 프랑스는 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알제리 사태를 계기로 다시 대통령이 된 샤를 드골은 ‘닥치고 핵무장’을 선언했다. 자국의 방위를 외국에 의존하는 한 프랑스는 주권국도, 강대국도 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독자적인 핵 타격력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고, 결국 프랑스는 핵무장에 성공했다. 미국의 핵우산에서 탈피해 홀로서기를 택한 프랑스는 미군 장성이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나토의 지휘 체계에서도 이탈했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전통적 경쟁국인 프랑스마저 핵무장에 성공하자 독일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라는 낙인 때문에 독자적 핵무장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처지였다. “핵무장 없는 서독은 다른 동맹국의 군대를 위한 취사병이나 보내게 될 것이고, 서독의 운명은 그것으로 결판날 것”이라는 당시 서독 국방장관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탄식은 당시 독일인들의 불안감을 대변한다. 독일은 생존을 위해 자국에 배치된 미국의 전술핵에 대한 사용권을 공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달라고 미국에 강력하게 요구했다. 나토의 핵공유 전략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핵공유 전략에 따라 미국은 66년 나토 핵계획그룹(NPG)이란 기구를 만들었다. 회원국 국방장관들로 구성되는 NPG는 핵무기 운용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고, 핵무기 정보를 공유하고, 핵전략을 논의·조율한다. 유사시 핵 타격 대상과 순서, 규모를 결정하는 것도 NPG의 역할이다.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이 자국 전투기나 폭격기를 동원해 정례적으로 전술핵무기 인수, 장착, 발진, 모의탄두 투하 훈련을 하는 것도 핵공유 전략의 일환이다.

미국은 54년부터 유럽에 전술핵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양적으로 정점에 달했던 71년에는 다양한 폭발력을 가진 7300개의 전술핵이 공중 투하용 핵폭탄, 포격용 핵폭탄, 미사일 발사용 핵탄두, 핵지뢰 등 13가지 형태로 유럽 각지에 배치돼 있었다. 하지만 냉전 종식과 함께 대부분 철수하고 지금은 공중 투하용 전술핵인 B61 계열 핵폭탄 190개 정도만 남아 있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터키 등 5개국에 20~80개씩 분산 배치돼있다. <국가별 배치 현황은 그림 참조>

미국은 100억 달러(약 11조7000억원)를 들여 미국과 유럽에 배치된 480개의 B61 계열 핵폭탄을 최신형인 B61-12형 스마트 핵폭탄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부터 실전 배치를 시작해 2024년까지 교체를 완료할 계획이다. B61-12 핵폭탄은 레이더와 GPS 등 정밀유도 장치를 장착해 정확도를 대폭 향상했다. 원형 오차범위를 기존 B61 핵폭탄의 100m에서 30m로 줄였다. 벙커버스터 능력을 갖춘 B61-12 핵폭탄은 지하 60m까지 뚫고 들어가 폭발할 수 있어 산악지대나 터널 등에 은신한 적의 지휘부를 정밀타격할 수 있다. 스텔스 기능을 갖춘 F-35A 전투기가 B61-12 핵폭탄을 싣고 날아오는 상황은 북한 지도부로선 상상만 해도 끔찍할 수밖에 없다.

B61-12 핵폭탄은 폭발력을 0.3kt에서 50kt까지 4단계로 조절할 수 있어 불필요한 살상을 막고, 지상 작전 중인 아군에 대한 방사능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실제 사용 가능성이 높다. 전술핵 교체 작업을 계기로 핵무기가 배치된 유럽국들을 중심으로 전술핵 철수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배경이다. 지난해 6월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독일 국민의 70%, 이탈리아 국민의 65%가 미국의 전술핵 철수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협상을 통한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면서 우리도 나토식 핵공유를 대책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프랑스처럼 독자 핵무장을 하기 어렵다면 독일처럼 나토식 핵공유라도 미국에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나토식 핵공유는 유럽의 회원국들이 핵전략 협의 과정에 참여하고, 유사시 회원국 공군이 핵공격에 가담한다는 정도의 의미이지 엄밀한 의미에서 공유라고 하긴 어렵다. 핵무기 사용권 공유가 핵공유의 정확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 있는 핵무기의 평시 관리는 전술핵이 배치된 나토 회원국 공군기지에 상주하는 미 공군이 담당한다. 엄격한 규정에 따라 100% 미군이 보관하고 관리한다. 핵무기 사용에 관한 최종 결정권은 미국 대통령에 있다.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할 경우에도 워싱턴에서 송신되는 발사 코드를 미군이 B61 핵폭탄에 입력해야 회원국 공군기에 장착할 수 있다. 나토식 핵공유는 핵무기 이전과 양도를 금지한 NPT 위반이 아니라고 미국이 주장하는 근거다. 나토식 핵공유는 핵무기 사용에 수반되는 정치적, 군사적, 윤리적 부담과 책임을 미국과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이 공유함으로써 핵 운명공동체를 이룬다는 심리적 안심 효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 7월 미 국방부 산하 국방대학(NDU)은 한·일 양국과의 핵공유를 제안하는 보고서를 미 정부에 제출했다. 전술핵 공유를 통해 지역 동맹국들에 더 큰 안보 확신을 제공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억제하고, 북한의 무모한 도발을 사전에 억제토록 중국을 압박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회를 중심으로 미 정치권에서도 한·일과의 핵공유를 지지하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 실패를 상정한 ‘플랜 B’ 성격의 핵공유는 전략폭격기, 핵 항모 전개 등 확장 억제력 유지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을뿐더러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론을 잠재우고, 핵무기 운영·관리에 드는 비용 일부를 두 나라에 떠넘길 수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 입장에서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토식 핵공유는 전술핵 재배치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의 훼손 또는 포기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명분이 사라지고, 북한의 핵무장을 사실상 인정하는 셈이라는 지적도 가능하다.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폐기에 따라 미국이 중·단거리 미사일을 동아시아에 배치할 가능성과 맞물리면서 중국과 러시아의 엄청난 반발을 초래할 수도 있다. 나토식 핵공유를 하게 되면 실제 사용 가능성이 큰 B61-12형 핵폭탄이 배치될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의 핵전쟁 위험은 훨씬 커진다고 볼 수 있다. 핵폭탄 보관 시설과 핵무기 공중 투하에 사용될 F-35A 등 첨단 전투기들이 북한의 우선적 타격 대상이 될 가능성도 크다.

나토의 핵공유 개념이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과 지정학적 조건은 한국이나 일본의 지금 상황과는 다르다. 미 국방대학 보고서도 언급했듯이 한·일과의 핵공유는 나토식 핵공유와 다른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미국과 핵공유를 한다면 한반도에서 제일 가까운 미 영토인 괌에 배치된 미국의 전술핵을 유사시 한국과 공동으로 사용한다는 전제하에 우리 공군 전투기나 폭격기를 괌으로 보내 미 공군과 함께 훈련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배명복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