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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테르테 “똥내 난다”던 보라카이 … 플라스틱이 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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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플라스틱 아일랜드 ③ 

지난달 17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4시간, 버스로 갈아탄 뒤 다시 2시간. 바다 건너 섬이 보였다. 필리핀 중부의 보라카이 섬이다. 섬으로 들어가는 선착장은 공항 입국장처럼 절차가 까다로웠다. 담당 직원은 “허가받은 숙박 시설을 예약한 관광객만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하루 6500명까지만이다.

6개월 폐쇄, 새로 태어난 섬 르포 #선착장 이용객 하루 6500명 제한 #환경기준 미달 리조트 강제철거 #빨대 등 일회용 플라스틱 금지 #해변 덮던 파라솔·쓰레기 사라져

대기실에는 ‘새로운 보라카이(New Boracay)의 금지사항’을 적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플라스틱은 안 돼(No)”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였다.

섬 폐쇄 이전에는 보라카이 화이트 비치 앞까지 파라솔이 있었다. [사진 DENR]

섬 폐쇄 이전에는 보라카이 화이트 비치 앞까지 파라솔이 있었다. [사진 DEN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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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카이는 여의도 4배쯤 되는 면적을 가진 길이 7㎞, 너비 1㎞의 작은 산호섬이다. 해마다 전 세계 2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 보라카이 섬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건 지난해 4월이다. 필리핀 정부는 급증하는 관광객 탓에 심각해진 환경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면서 6개월 동안 섬을 폐쇄하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그리고 반 년이 지난 10월 다시 문을 열었다.

재개장한 지 1년이 된 보라카이 섬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먼저 ‘불라복 비치’로 향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섬 폐쇄를 지시하면서 “보라카이는 시궁창이다. 해변에서 20m 떨어진 곳에 쓰레기가 있고 물 속에서 똥 냄새가 난다”고 했던 바로 그곳이다.

바다에서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해변에 누워 여유를 즐기는 관광객도 있었다. 섬 폐쇄 전까지 해변을 덮었던 녹조도 거의 사라졌다. “폐쇄 전까지만 해도 바람이 섬 쪽으로 불면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해변에서 악취가 났었죠.” 여행 가이드와 다이빙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부건(39)씨의 설명이다.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시궁창이라고 비난한 불라복 비치의 현재 모습. 천권필 기자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시궁창이라고 비난한 불라복 비치의 현재 모습. 천권필 기자

박씨를 따라 배를 타고 불라복 비치에서 500m쯤 떨어진 바다로 나갔다. 다이빙 장비를 착용하고 바닷속으로 들어가자 화려한 산호 군락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옆에는 최근 공사를 마친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하수관이 끝없이 뻗어 있었다. 박씨는 “예전에는 하수관이 해변 바로 앞에서 개방돼 오수가 나왔는데, 섬 폐쇄 이후 하수를 1㎞ 이상 먼 바다로 걸러서 내보내라는 지침에 따라 새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보라카이에서 가장 유명한 화이트 비치 역시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해변을 뒤덮었던 파라솔은 사라지고, 쓰레기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해변 30m 안에는 어떤 시설도 설치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필리핀 정부가 보라카이가 섬을 폐쇄하면서까지 해결하려고 한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쓰레기와 하수다. 특히 1인당 쓰레기 배출량이 수도인 마닐라의 3배가 넘을 정도였다. 바다로 오·폐수를 그대로 흘려보내다 보니 해변에선 썩은 냄새가 풍겼다.

보라카이는 섬 폐쇄 이후 플라스틱과의 전쟁을 벌였다. 섬 안에서는 일회용 플라스틱의 사용을 금지했고, 빨대도 종이나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만 쓰도록 했다. 또 섬 안에 있는 숙박시설에 대한 허가를 전부 취소하고 새 기준에 맞는 허가를 다시 받도록 했다. 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일부 리조트는 강제 철거하기도 했다.

보라카이 재건관리 관계기관 협의회의(BIARMG)의 나티비다드 베르나르디노 회장은 “폐쇄 이전 보라카이는 환경적으로 악몽과 같았지만 꾸준한 노력 끝에 현재는 목표의 80% 수준까지 도달했다”면서 “내년 4월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재평가해 섬의 완전 개방 여부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보라카이(필리핀)=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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