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와 쿠바 혁명 이끈 한인, 그의 부친은 독립운동가

중앙일보

입력 2019.12.19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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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다큐멘터리 ‘헤로니모’에서 쿠바의 한인 4, 5세 후손들은 여전히 ’내 안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말한다. [사진 커넥트픽쳐스]

다큐멘터리 ‘헤로니모’에서 쿠바의 한인 4, 5세 후손들은 여전히 ’내 안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말한다. [사진 커넥트픽쳐스]

아버지는 쿠바의 에네켄(용설란, 선인장의 일종) 농장 일꾼으로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 자금을 보탠 독립운동가였다. 이웃 한인들과 매 끼니 쌀 한 숟가락씩을 모아 1938년부터 8년간 임시정부에 1489원 70전을 보냈다. 이런 사실은  『백범일지』에도 기록됐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아들은 쿠바 한인 최초로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 동문인 동갑내기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의 주역이 됐다. 쿠바 산업부 차관을 역임하며 9차례 훈장도 받았다. 아버지 임천택과 아들 임은조(헤로니모 임) 부자 얘기다.

쿠바 여행 갔던 재미교포 변호사
헤로니모 임 부자에 감동 다큐 제작

지난달 21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헤로니모’는 이 부자를 중심으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조국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쿠바 한인들에게 다가간 영화다. 재미교포 변호사 전후석(35) 감독이 2015년 쿠바에 여행 갔다 우연히 이들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을 계기로 본업(코트라(KOTRA) 뉴욕 무역관 변호사)까지 그만두고 장편 다큐에 도전했다.

서울 서소문동 카페에서 만난 전 감독은 “헤로니모와 그 아버지 임천택 선생의 이야기를 처음 접한 뒤 영화로 만들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2016년 전 감독은 조촐한 촬영팀을 꾸려 다시 쿠바를 찾았다. 전 감독의 카메라는 기교 없이 친근한 안내자처럼 관객을 이끈다. ‘국뽕’을 자극하는 요소는 최대한 피했다는데도 있는 그대로의 삶이, 뒤늦게 알아 미안한 세월이 가슴을 파고든다.

젊은 시절의 헤로니모 임이다. [사진 커넥트픽쳐스]

젊은 시절의 헤로니모 임이다. [사진 커넥트픽쳐스]

제작 자금도 이런 사연을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 올려 모았다. 후반작업을 끝내고 개봉하기까지 국내외 199명이 십시일반 4만4982달러(약 5300만원)을 후원했다.

영화엔 임천택이 두 살 때 홀어머니 품에 안겨 멕시코행 배에 오른 순간부터 소개된다. 1905년 일본의 인력송출회사의 사기 이민 광고에 속아 조선사람 1033명이 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바다 건너 멕시코로 갔다. 지상 낙원을 꿈꿨지만, 이들을 기다린 건 에네켄 농장의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 당시 ‘황성신문’에 실린 중국인 허훼이의 편지는 “이곳 한인은 7등 노예가 되어 우마 같다”고 전했다.

계약 기간 4년이 끝났을 땐 한일합병으로 돌아갈 조국이 사라졌다. 멕시코 농장이 문을 닫자, 일부는 다시 쿠바의 에네켄 농장으로 이주했다. 뙤약볕에 두꺼운 옷을 입어도 날카로운 에네켄 가시가 생살을 파고들었다. 낯선 나라에 와 배고픔을 이겨내면서도 그들은 자식들에 조국을 잊지 말라 가르쳤다.

“우리는 가난했지만, 자식들만큼은 우리처럼 살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생전 남긴 유일한 영상에서 임천택은 이렇게 말했다. 쿠바 공산정권이 수립되고 한국과의 교류가 단절되며 임천택을 비롯한 쿠바 이민 1세대는 끝내 조국 땅을 밟지 못했다. 아들 헤로니모는 달랐다. 1967년 북한에 외교관 신분으로 방문했던 그는 은퇴 후 1995년 서울에서 열린 광복 50돌 세계한민족축전에 쿠바 한인 대표로 초청돼 한국을 찾았다.

이때 방한으로 아버지 임천택의 독립운동 활동이 알려지며 임천택은 2년 뒤 적성국가 출신 최초로 대한민국 정부가 추서한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임천택의 유해는 대전 현충원으로 옮겨졌다. 이후 헤로니모는 쿠바 내 900여 명의 한인을 직접 찾아다니며 명부를 만들고 한글학교를 세워 한인 공동체를 재정비했다.

영화를 통해 감독이 가장 말하고 싶었던 부분은 한인 디아스포라, 즉 고향을 떠나 살아가는 재외동포의 이야기다. 전 감독은 "세계 역사를 보면 다문화와 여러 정체성이 충돌하는 곳에서 평생 씨름하며 자란 사람들이 현재를 초월할 수 있는 혁신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어 “헤로니모는 쿠바인으로 자라 젊어선 혁명에 이바지했고 나중엔 한인의 역할을 했지 않냐”며 “헤로니모의 상징성은 애국주의나 민족주의, 국수주의가 아니고 인본주의”라고 강조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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