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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날 '무리수' 인정될라···檢의 정경심 공소장 오묘한 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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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지난 10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지난 10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다른 사건이다."(판사)
"같은 사건이다."(검사)

판사와 검사의 의견이 완전히 엇갈리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5부(송인권 부장판사)에서 진행 중인 동양대 정경심 교수 재판에서다.

정 교수의 동양대 표창장 위조 혐의를 두고 판사는 두 개의 사건이, 검찰은 하나의 사건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정경심 재판부에선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왜 갈렸나  

도화선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청문회 당일(9월 6일) 검찰이 조 전 장관의 부인인 정 교수를 사문서위조죄로 기소하며 제출한 두 페이지짜리 공소장이다.

검찰은 당시 정 교수를 소환하지 않고 기소했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부인이 청문회 당일 기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9월 6일 인사청문회에 참석했던 모습. [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9월 6일 인사청문회에 참석했던 모습. [연합뉴스]

검찰은 정 교수가 위조한 것으로 의심한 표창장 발급 날짜가 2012년 9월 7일인 점에 주목했다. 사문서위조죄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청문회 당일인 2019년 9월 6일까지였다.

시간이 부족했던 검찰은 "정 교수를 소환하지 않고도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하다"며 정 교수를 기소했다.

범죄가 달라졌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검찰이 정 교수를 기소한 뒤 추가 수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검찰이 제출한 공소장과 이후 드러난 정 교수의 범죄 혐의의 시점과 장소 방법 등이 달라졌다.

앞선 공소장에서 검찰은 정 교수가 성명불상자와 공모하여 동양대에서 2012년 9월 7일 표창장을 출력한 종이에 직인을 임의로 날인했다고 적시했다.

최성해 동양대 총장이 지난 9월 5일 오전 참고인 조사를 마치고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나오고 있다. 김민상 기자

최성해 동양대 총장이 지난 9월 5일 오전 참고인 조사를 마치고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나오고 있다. 김민상 기자

하지만 검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2012년 9월이 아닌 2013년 6월 정 교수가 딸 조모씨와 공모하여 서초동 자택에서 스캔한 디지털 파일에 다른 상장에서 캡쳐한 직인을 워드 프로그램으로 붙여 표창장을 위조했다고 공소 내용을 변경했다.

정 교수가 표창장을 위조한 것은 맞지만 그 시기와 방법, 장소 등이 모두 달라진 것이다.

엇갈리는 지점 

이 지점에서 정경심 재판부(송인권 부장판사)와 검찰(송경호 서울중앙지검 3차장)의 의견이 엇갈린다.

검찰은 일부 범죄 사실이 달라졌어도 정 교수가 위조한 표창장은 단 하나이기에 본질적 범죄 행위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봤다. 같은 사건이란 것이다. 그래서 검찰은 지난 10일 재판부에 공소장 변경을 요청했다.

정경심 교수의 혐의

정경심 교수의 혐의

추가 수사로 밝혀진 내용이 반영된 공소장으로 재판에서 정 교수의 죄를 묻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 교수의 변호인은 두 사건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도 "사건의 공범, 범행일시, 장소, 행사 방법 등이 중대하게 변경됐다"며 기존 판례에 따라 공소장 변경을 불허한다고 했다. 두 사건이 다르다고 본 것이다.

형사소송법 제298조에 따르면 법원은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공소장 변경을 허가할 수 있다.

법적 의미x 정치적 의미o

법원의 공소장 변경 불허는 법적으로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정치적인 파장은 상당하다.

법적으론 검찰이 정 교수에 대한 기존 공소를 취소하고 변경된 공소장으로 다시 기소해 죄를 물으면 된다. 재경지법의 현직 판사는 "정 교수 입장에서 법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럴 경우 검찰은 정치 개입 논란을 부른 청문회 당일 기소 결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래서 여기서부턴 정치의 영역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1일 점심 식사를 위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1일 점심 식사를 위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현직 검사는 "공소시효 문제가 있었다해도 정 교수의 경우 위조사문서 작성이 아니라 (공소시효가 남은) 위조사문서행사죄를 적용할 수 있었다"며 "검찰이 사회적 논란이 되는 사건에 무리를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조국은 안된다'는 시그널을 보내려다 깐깐한 재판부를 만나 스텝이 엉켰다"고 말했다. 당장 여당 의원들 사이에선 "공소장 변경 불허는 검찰 졸속 수사의 방증"이란 비판이 나온다.

검찰의 오묘한 수

논란이 된 이후 검찰은 17일 오묘한 수를 뒀다. 정 교수를 변경된 공소장으로 추가 기소하며 기존 공소를 취소하지 않은 것이다. 검찰의 이런 결정은 극히 이례적이다.

검찰 관계자는 "공소장 변경 불허가 부당하기에 항소심에서 한번 더 판단을 받으려 한다"고 말했다. 기존 공소가 취소되지 않고 유지될 경우 정 교수는 9월 6일 기소된 사문서위조죄로는 1심에서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2012년 9월 7일이 아닌 2013년 6월에 표창장이 위조된 것이라 봤기 때문이다. 즉 검찰은 2012년 표창장을 위조했다는, 변경이 불허된 과거 공소사실은 증명할 수 없는 셈이다. 검찰은 사문서위조죄의 경우 새로 변경된 공소장으로 추가 기소한 사건에서 유죄를 받아내야 한다.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 이종배 대표(왼쪽)가 13일 서울중앙지검 현관 앞에서 정경심 교수 사건과 관련, 검찰의 공소장 변경을 불허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송인권 판사를 직권남용죄로 고발하기에 앞서 고발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 이종배 대표(왼쪽)가 13일 서울중앙지검 현관 앞에서 정경심 교수 사건과 관련, 검찰의 공소장 변경을 불허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송인권 판사를 직권남용죄로 고발하기에 앞서 고발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은 기존 공소장 사건으로 무죄를 받더라도 항소심에서 한번 더 공소장 변경을 신청할 방침이다. 법리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은 검찰이 아니라 법원이라는 것이 검찰 입장이다.

누가 정치적인가

검찰 내부에선 송 부장판사만 아니었다면 공소장 변경이 가능했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송 부장판사의 편향적인 재판 진행이 이런 결과를 불렀다"는 불만이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4월 2일 오전 '환경부 블랙리스트 문건 의혹'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검찰청에 출석,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4월 2일 오전 '환경부 블랙리스트 문건 의혹'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검찰청에 출석,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송 부장판사는 정 교수와 조 전 장관의 조카 조범동 재판, 환경부 블랙리스트 재판 등 현 정부의 민감한 사건 대부분을 맡고있다.

특수부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정경심 사건은 위조된 표창장이 본질인데 그 표창장은 단 하나"라며 "사건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공소장 변경도 당연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송 부장판사와 사법연수원 동기인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 내부에선 송 부장판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재판부의 정 교수 공소장 변경 불허 결정은 철저히 법리에 따른 것"이라 반박했다.

정경심 교수의 모습. [뉴시스]

정경심 교수의 모습. [뉴시스]

정 교수 측 "검찰의 무리한 기소"

정 교수의 변호인단은 "검찰이 애초에 정 교수를 무리하게 기소한 것이 문제였다"며 "검찰이 9월 6일 기소한 사건과 최근 공소장 변경을 요청한 사건은 법리적으로 엄연히 다른 사건"이라 지적했다.

부장판사 출신인 도진기 변호사는 "정 교수 재판에선 앞으로 재판장과 검사의 치열한 신경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어찌됐건 재판에서 칼자루를 쥐고있는 것은 검사가 아닌 판사다. 검찰 입장에선 다소 어려운 상황일 것"이라 말했다.

박태인·김수민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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