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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 정원 줄줄이 미달했던 직업계고… 올해 100% 채운 비결은

중앙일보

입력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우식(79) 전 연세대 총장, 함영주(63) 전 KEB하나은행장, 김신호(67) 전 교육부 차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이들은 모두 충남 논산의 강경상고 출신이다. 웅진그룹 윤석금(74) 회장도 강경상고를 졸업했다.

강경상고가 개최한 신입생 입학설명회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해 학생 모집에서 정원이 미달했던 강경상고는 학과개편을 통해 신입생을 모두 모집했다. [사진 강경상고]

강경상고가 개최한 신입생 입학설명회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해 학생 모집에서 정원이 미달했던 강경상고는 학과개편을 통해 신입생을 모두 모집했다. [사진 강경상고]

한때 ‘상고시대’를 이끌며 2만3000여 명에 달하는 졸업생을 배출한 강경상고는 내년이면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이런 강경상고가 지난해 신입생 모집에서 정원 105명 가운데 93명만 모집해 ‘미달사태’를 겪었다. 인구감소로 학생 수가 줄어든 데다 직업계고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지면서 영향을 고스란히 받았기 때문이다. 학교는 물론 동창회에서도 충격이 컸다고 한다.

100년 역사 강경상고, 지난해 신입생 12명 미달 #올해는 '경찰사무행정과' 신설하면서 정원 채워 #정원 30% 모집 그쳤던 광천제일고도 활로 찾아 #전통적 학과 대신 드론·유통·K-POP 등으로 개편

결국 강경상고는 학과 개편을 통해 활로를 찾았다. 100년 역사와 전통이 무너질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상업계고를 상징하는 금융·전산계열의 모집 정원을 과감하게 줄이고 최근 인기가 높은 경찰 관련 학과를 신설했다. 2017년 신설한 부사관경영과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것도 고려했다.

반(班)도 재편했다. 지난해 2개 반이던 전산회계정보과를 1개 반으로 줄인데 이어 올해는 금융정보과도 2개 반에서 1개 반으로 줄였다. 신입생 5개 반 중 군·경찰 관련 학과가 3개로 늘어난 것이다. 올해는 충남 외에 서울·경기 등 수도권과 전북·제주에서도 학생들이 지원했다. 신입생 100명 가운데는 논산지역(계룡 포함) 합격자는 40명에 불과하다. 여학생도 44명이나 된다.

강경상고 이남숙 교무부장은 “취업과 대학진학을 위한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며 “군·경찰 관련 학과와 함께 금융·행정기관 취업이 가능한 전통적 상업계열도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내년 개교 100주년을 맞는 강경상고는 과감한 학과개편으로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은 강경상고 경찰사무행정학과와 부사관경영과 학생 모델. [사진 강경상고]

내년 개교 100주년을 맞는 강경상고는 과감한 학과개편으로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은 강경상고 경찰사무행정학과와 부사관경영과 학생 모델. [사진 강경상고]

개교한 지 67년 된 충남 홍성의 광천제일고(옛 광천상고)는 아예 체질을 바꿨다. 2017년과 2018년 2년 연속 신입생이 미달하자 기존 학과 대신 새로운 학과를 신설, 신입생을 모집했다. 현재 광천제일고 1학년과 2학년은 각각 2개 반 뿐이다. 원래대로라면 학년마다 4개 반씩 운영해야 하지만 정원 미달로 2개 반만 운영하고 있다.

학년 별 학생 수도 3학년은 74명이지만 2학년은 20명, 1학년은 21명에 불과하다. 2년 연속 정원이 미달하면서 학년 별로 50명이 넘는 결원이 생긴 것이다. 결국 광천제일고는 기존에 운영하던 경영서무, 금융회계과 대신 드론테크과(1개 반), 드론비즈과(2개 반)를 신설했다. 4차산업 시대에 주목받는 직업 중 하나인 드론 관련 학과로 승부수를 띄웠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63명 모집에 80명이 넘는 학생이 지원했다.

광천제일고 이정복 교무부장은 “신입생 모집 미달로 학교가 폐교 위기에 몰리면서 살길을 찾은 것”이라며 “동창회와 지역주민들이 동의를 얻어 교명도 ‘충남드론항공고’로 바꾸기로 했다”고 말했다.

드론분야 특성화 학교로 전환한 충남 홍성 광천제일고에서 지난 10월 제1회 충남중학생 상상이룸 드록축제가 열렸다. [사진 충남교육청]

드론분야 특성화 학교로 전환한 충남 홍성 광천제일고에서 지난 10월 제1회 충남중학생 상상이룸 드록축제가 열렸다. [사진 충남교육청]

강경상고와 광천제일고처럼 지난해 신입생 모집과정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했던 충남지역 직업계고(특성화고·마이스터고·종합고 등)가 올해는 정원의 100%를 채우는 성과를 거뒀다. 학령인구 감소와 직업계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전국 대부분의 직업계고가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거둔 성과라 의미가 크다.

충남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5일 충남 도내 직업계고 38개 학교의 신입생 모집을 마감한 결과 지난해 22곳에 달했던 미달 학교가 올해는 15곳으로 줄었다. 지난 8월 충남교육청은 ‘직업계고 재구조화 3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신입생 유치가 어려운 6개 학교는 미래산업 수요가 많은 학과 개편을 추진했다. 강경상고 경찰사무행정과, 광천제일고 드론과, 온양한올고 국제통상외국어과, 당진정보고 유통물류과, 서산공고 정밀기계과, 광천고 케이팝(K-POP) 공연예술과 등이다.

이 가운데 광천제일고와 광천고는 지난해 신입생의 30%만 채우는 등 존폐 위기에 놓였던 학교다. 광천제일고는 드론 분야로 학교를 특성화했고 일반고였던 광천고는 특성화 학교로 과감히 전환했다.

충남교육청은 앞으로 3년간 22개 학교를 대상으로 178억원을 투입, 학과 개편을 추진할 방침이다. 올해 정원을 채운 학교들이 성공 사례를 확산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각 학교가 대학·공공기관·자치단체 등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할 수 있도록 지원에도 나설 방침이다. 산업현장의 전문가를 산학 겸임교사로 활용하고 학생들의 해외 추업과 조기 창업도 지원키로 했다.

지난 8월 20일 김지철 충남교육감이 충남지역 직업계고 재구조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충남교육청]

지난 8월 20일 김지철 충남교육감이 충남지역 직업계고 재구조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충남교육청]

김지철 충남교육감은 “한계와 관행을 뛰어넘는 직업계고 재구조화로 신입생 충원과 취업률 제고 등의 효과를 거둘 것”이라며 “학생들도 자신의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말했다.

논산·홍성=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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