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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는 로컬”…미국서 통한 봉준호 입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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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난달 할리우드 필름 어워즈(HFA)에서 할리우드 영화제작자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 ‘기생충’은 16일(현지시간) 발표된 아카데미 시상식 예비후보 명단에서 2개 부문에 올랐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할리우드 필름 어워즈(HFA)에서 할리우드 영화제작자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 ‘기생충’은 16일(현지시간) 발표된 아카데미 시상식 예비후보 명단에서 2개 부문에 올랐다. [로이터=연합뉴스]

“오스카(아카데미)는 국제영화제가 아니지 않나. 매우 ‘로컬’(지역적)이니까("The Oscars are not 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They’re very local”).”

‘기생충’ 주제가상 등 예비후보 올라 #미 잡지 “감독 본인이 록스타 반열” #영어 섞은 소통, 유머·달변에 호감

지난 10월 봉준호 감독이 미국 매체 ‘벌처’와 인터뷰 때 했던 발언이다. 그 자신이 ‘로컬’로 규정한 시상식에서 ‘기생충’으로 오스카 트로피를 안을 가능성이 커졌다. 16일(현지시간)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발표한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 9개 부문 예비후보 명단에서 ‘기생충’이 최우수 국제영화상과 주제가상 등 2개 부문에 오르면서다.

최우수 국제영화상은 외국어영화상이 올해부터 바뀐 이름이다. ‘기생충’이 이들 부문 최종 후보에 들 경우 내달 13일 작품상·감독상 등 본상 후보작과 함께 공개된다. 시상식은 2월 9일 열린다.

‘벌처’ 인터뷰 때 봉 감독의 발언은 “한국 영화가 지난 20년간 (세계) 영화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되지 않은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느냐”에 대한 답이었다. 관련 트윗이 수천회 이상 리트윗 되면서 미국에서도 ‘사이다 발언’으로 떠올랐다.

‘기생충’은 제72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필두로 지금까지 총 58개 영화제·시상식에 초청돼 36곳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흥행 성적도 좋아 지난 주말까지 북미 개봉 66일간 총 2035만 달러(약 238억원)를 벌어들였다. 역대 한국영화 최고 기록은 물론 현지 외국어영화 역대 흥행작 중 11위에 해당한다.

미국 현지에선 봉준호 감독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미국 잡지 ‘배니티 페어’가 “봉 감독 본인이 록스타급 반열에 있다”고 했을 정도다.

특히 현지 매체들과 인터뷰에서 특유의 달변과 유머를 구사하는 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엔 지난 10일 미국 NBC TV ‘지미 팰런의 투나잇쇼’ 출연분이 유튜브 등을 통해 화제가 되고 있다. 베테랑 진행자 팰런이 “토크쇼에 나왔으니 줄거리에 대해 살짝 공개해야 하는 건 일종의 의무”라고 하자 봉 감독은 “(관객들이) 스토리를 모르고 가야 더 재미있을 것 아니냐”며 능청스레 받아넘겼다. 그러면서 “이건 가족 얘기다. 가난한 가족의 아이가 부잣집에 과외수업하러 가면서 벌어지는 얘기”라고 소개한 뒤 영어로 “휴먼 스토리이면서 웃기고(funny), 무서운(scary) 영화”라고 덧붙였다. 연예매체 ‘데드라인’ 인터뷰에선 이번 영화 모티브를 자신의 대학생 때 과외 경험에서 얻었다고 하면서 “두 달 만에 잘리지 않았으면 그 가족에 관한 더 깊숙한 얘기를 알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봉 감독의 발언이 미 현지에서 호감을 얻는 배경엔 비교적 원활한 영어 구사력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질문을 바로 알아듣는 수준이며, 짧은 대답은 영어로 직접 하되 길고 까다로운 답변만 배석한 통역이 영어로 옮기는 식이다.

유머를 더한 겸손한 화법도 돋보인다. ‘데드라인’의 질문자가 “이 영화를 ‘광대 없는 희극, 악당 없는 비극’이라고 묘사했다”고 운을 떼자 봉 감독은 “한국에서 마케팅 팀이 써달라고 해서 쓴 것이긴 한데, 좀 느끼하죠(cheesy)?”라고 말해 웃음을 유도했다. 그러면서도 “누가 히어로인지, 누가 빌런(악당)인지 애매한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짧은 인터뷰 때도 ‘꼭 해야 할 말’을 놓치지 않는다. 미 공영라디오(NPR) 인터뷰 땐 “(올해로) 한국 영화 역사가 100년이고 숱한 거장들이 있다. 추천작이 200개, 300개에 이르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작품 2개만 추천하겠다”면서 김기영 감독의 1960년작 ‘하녀’와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언급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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