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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에 쓰레기 8만t 모인 거대 섬 '둥둥'···하와이가 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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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빅아일랜드 카울라나만 인근 해변에 찢어진 용기, 어망 등 플라스틱 쓰레기가 널부러져 있다. 둥그스름한 돌틈 사이에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숨겨져 있다. 하와이 빅아일랜드=김민욱 기자

하와이 빅아일랜드 카울라나만 인근 해변에 찢어진 용기, 어망 등 플라스틱 쓰레기가 널부러져 있다. 둥그스름한 돌틈 사이에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숨겨져 있다. 하와이 빅아일랜드=김민욱 기자

지난달 26일 기자가 방문한 미국 하와이 빅아일랜드의 최남단 카울라나만. 제주도 면적의 5.7배에 이르는 광활한 화산섬 빅아일랜드의 '땅끝 마을' 격인 카울라나만은 파파콜레아 그린샌드 비치 탐방길의 출발지로 유명하다. 구불구불 펼쳐진 해안 길을 따라 2.8㎞쯤 걸으니 바다에 연녹색 물감을 푼 것 같은 그린샌드 비치에 도착했다.

<플라스틱 아일랜드> 4. 태평양 한가운데도 한국쓰레기가

멀리서 보면 빼어난 자연경관을 뽐냈지만 다가가니 플라스틱 쓰레기가 마치 점박이 무늬처럼 눈에 박혔다. 하늘색의 찢어진 어망부터 노끈 조각, 볼펜 뚜껑, 주방용 세제 용기, 본래 상품을 짐작할 수 없는 찢어진 통까지 다양했다.

하와이에서 발견된 깔때기 모양의 붕장어 통발마개. 통발 안쪽의 깔때기 마개 끝이 오무려져 한번 통발 안으로 들어오면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다. 한국 어촌에서 주로 사용하는 어구라고 한다. 하와이 빅아일랜드=김민욱 기자

하와이에서 발견된 깔때기 모양의 붕장어 통발마개. 통발 안쪽의 깔때기 마개 끝이 오무려져 한번 통발 안으로 들어오면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다. 한국 어촌에서 주로 사용하는 어구라고 한다. 하와이 빅아일랜드=김민욱 기자

한국 통발 마개도 떠내려와 

쓰레기 중엔 한국 어촌에서 붕장어를 잡을 때 흔히 쓰는 깔때기 모양의 통발 마개도 볼 수 있었다.
그린샌드 비치 탐방길로 이어지는 해변의 중간중간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휴가차 방문한 재미교포여모(42·미국 샌디에이고)씨는 “작은 돌 틈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플라스틱 조각이 미관을 해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악명 높은' 카밀로 해변도 가까웠다. 2014년 미국 지질학회 저널(GSA Today)엔 플라스틱이 섞인 돌덩어리와 관련한 연구 보고서가 실렸는데 돌덩이의 출처가 바로 카밀로 해변이다. 한때 국내 기업명이 담긴 플라스틱 통이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현지인들에게 악명높은 하와이 카밀로 해변에 과거 플라스틱 쓰레기가 쌓였던 모습. 현재는 몰라보게 깨끗해진 상태다. [사진 Hawaii Wildlife Fund]

현지인들에게 악명높은 하와이 카밀로 해변에 과거 플라스틱 쓰레기가 쌓였던 모습. 현재는 몰라보게 깨끗해진 상태다. [사진 Hawaii Wildlife Fund]

다행히 카밀로 해변은 환경단체, 자원봉사자의 캠페인으로 달라진 상태였다. 하와이 야생동물기금(HWF)이 미국 정부와 시민의 지원·후원을 받아 정기적인 정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지난 16년간 수거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282t에 이른다.

메건 램슨 HWF 대표는 “카밀로에 쌓인 대부분의 플라스틱 쓰레기 조각들은 바다 건너 먼 곳에서 온 것들”이라며 “지구에 거주하는 우리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고 치우는 데 노력해야 한다. 한 지역에 한정된 게 아닌 세계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와이 야생동물 기금(Hawaii Wildlife Fund) 회원 등이 카밀로 해변에서 정화활동을 벌이고 있다. 폐어망 등을 잔뜩 수거한 모습. [사진 HWF]

하와이 야생동물 기금(Hawaii Wildlife Fund) 회원 등이 카밀로 해변에서 정화활동을 벌이고 있다. 폐어망 등을 잔뜩 수거한 모습. [사진 HWF]

쓰레기 8만t이 거대한 섬 이뤄  

하지만 언제든지 플라스틱 쓰레기가 다시 하와이 해변으로 엄습해올 수 있는 상황이다. 빅아일랜드에서 북동쪽으로 1600㎞ 떨어진 지점에 거대한 쓰레기 섬(Great Pacific garbage patch, GPGP)이 떠다니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 조각이 순환하는 해류를 따라 모인 결과다. GPGP를 이루는 쓰레기양은 8만여t으로 추산된다.

GPGP는 주변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드웨이 환초에 서식하는 앨버트로스와 같은 바닷새가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먹이로 착각해 먹었다가 죽는 일이 빈번하다. 파파하노모쿠아키아 해양 국립기념물 관리자는 “바닷새가 플라스틱으로 질식사하거나 장에 구멍이 난 채 죽는 일이 흔하다”고 전했다.

미드웨이 환초에 서식하는 바닷새의 부패한 몸속에서 각종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왔다. [AP=연합뉴스]

미드웨이 환초에 서식하는 바닷새의 부패한 몸속에서 각종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왔다. [AP=연합뉴스]

바닷속도 안전하지 않다. 지난달 하와이 연안에서 1000㎞쯤 떨어진 서쪽 바닷속 치어 양육장이 미세플라스틱으로 오염됐다는 연구결과가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에 실렸다. 띠처럼 펼쳐진 잔잔한 수역은 플랭크톤이 풍부해 황새치·날치 등 바닷물고기의 산란 장소다.

하지만 미세 플라스틱에 심각하게 오염됐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미 해양대기국(NOAA) 제미슨 고브 어류학자는 논문에서 “치어의 발달과 생존에 먹이가 필요할 때 치어가 플라스틱에 둘러싸여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태평양 바다 한 가운데 형성된 거대 쓰레기 섬(GPGP)의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는 비영리 환경단체 오션 클린업의 장치. [사진 오션 클린업]

태평양 바다 한 가운데 형성된 거대 쓰레기 섬(GPGP)의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는 비영리 환경단체 오션 클린업의 장치. [사진 오션 클린업]

수거한 플라스틱 신발 재료로 활용

하와이에선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비영리 단체인 오션 클린업은 지난해 9월부터 GPGP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거하는 ‘U자’ 모양의 길이 600m짜리 청소장치를 운용 중이다.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방식과 비슷한 원리다.

수거한 쓰레기는 육지로 옮겨 재활용한다. 오션 클린업은 현재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5년 동안 GPGP의 50%를 청소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수십 대의 장치를 추가로 투입해야 달성 가능한 수치로 알려졌다.

하와이 해변으로 떠내려온 미세 플라스틱 조각들. [사진 HWF]

하와이 해변으로 떠내려온 미세 플라스틱 조각들. [사진 HWF]

섬에서 수거된 플라스틱 쓰레기는 재활용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비영리재단 팔레이(Parley)와 아디다스의 협업이다. 팔레이가 수거한 플라스틱은 주로 아디다스 신발제품의 생산 원료로 쓰인다.

디다스는 팔레이가 정화 캠페인 비용으로 사용할 기금을 사회공헌 방식으로 건넨다. 지난 한 해 동안 아디다스가 생산한 신발 중 5%가량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활용됐다고 한다.

하와이 주도인 호놀룰루에서는 2021년 1월부터 일회용 플라스틱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조례가 통과됐다. 하와이 주민들은 일회용품 사용에 둔감한 편이다. 기자가 방문한 호놀룰루 국제공항 안 음식점에서는 스티로폼 음식포장용기가 널려 있고, 관광지인 빅아일랜드 코나 호텔에서는 양치 컵도 일회용 플라스틱을 쓰고 있다.

램슨 대표는 “일회용품을 퇴출하기 위해 법안을 통과시키려 노력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일부 사업주들이 추가비용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친환경 제품사용을 주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와이 빅아일랜드=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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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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