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불 옆에서 활짝 웃는 아빠를 만나는 곳, 운주사를 가다

중앙일보

입력 2019.12.17 13:00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35)  

길을 잃었다. 광주 인터체인지를 나와 엉뚱한 길로 들어선 것이 벌써 세 번째다. 내비게이션은 연신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다. 초행길인 데다 서울부터는 먼 거리니 더 여유를 두고 출발했어야 했나. 딴에는 서둘러 출발했건만, 생각보다 오래 걸린 데다 무엇에 홀렸는지 목적지에 다 와서 연신 헤매고 있었다. 길을 벗어나고 또 같은 길을 다시 돌며 시간이 꽤 지났다. 나들이 삼아 모임에서 가깝게 지내는 분의 퇴임식에 가는 길이었는데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란 틀린 일이고 도착하더라도 식에 맞출 수 있을까도 불확실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늦더라도 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평소 같았으면 그냥 갔을 텐데 그날은 웬일인지 망설여졌다. 차를 세우고 휴대폰을 만지작만지작… 결국 다른 친구에게 대신 축의금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딱히 정해둔 일정은 없었다. 4시간 넘게 운전해 온 길을 돌아서기도 허무했고, 아직 이른 봄이지만 산자락을 넘어 휙 꽃 바람이 불었던 탓에 그저 보이는 길을 따라 마냥 갔다. 지명은 낯설고 내비게이션에 보이는 지도만으로는 내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 확실하지도 않았다. 이왕 나선 길, 바퀴가 구르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가다 보니 화순이다. 얼마쯤 들길을 지났는데 갑자기 널따란 공간이 나타났다. 야트막한 언덕이 이어지고 마치 골짜기를 뒷짐 지고 있는 형세다. ‘천불천탑 운주사’ 표지판을 보자마자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장길산이 새 세상을 열고자 했던 골짜기가 아닌가. 언젠가 ‘한 번쯤 가봐야지’ 했던 곳이었다. 마치 작정이라도 했던 것처럼 길을 잃고 헤매다가 그곳에 닿아 있었다. 첫닭이 울었다는 거짓말 때문에 이루지 못한 꿈이 잠자는 골짜기에 온 것이다.

물이 흐르지 않는 냇가를 향해 태연하게 석불이 늘어서 있다. [사진 박재희]

물이 흐르지 않는 냇가를 향해 태연하게 석불이 늘어서 있다. [사진 박재희]

아무도 없다. 인기척은커녕 소리를 빨아들이는 진공기라도 있는 것처럼 아무 소리 없이 내 숨소리만 들린다. 물이 흐르지 않는 냇가를 향해 태연하게 석불이 늘어서 있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불쑥 탑이 나타났다. 천 년 동안 망연하게 시간을 내려다보았을 탑과 석불은 어눌하고 낯설다. 솜씨가 어설픈 석공들이었는지 불상은 엄숙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초등학생 조카가 열심히 그린 얼굴과 닮은 부처님들이다. 탑은 또 어떤지. 배고픈 백성들이 바램을 쌓아 올렸는지 송편을 빚은 모양의 탑이 시선을 잡는다. 호떡을 겹쳐 놓기도 했고, 김이 오르는 시루떡을 포갠듯한 떡 탑에 처음 보는 삿갓 모양새의 탑이 골짜기 깊은 곳에 있다.

천 년 전 불상을 만져보고 탑을 더듬으며 언덕을 올랐다. 해가 서쪽을 비추고 있었다. 빛을 따라 가파른 언덕을 올랐다. 불쑥불쑥 서 있는 불상들, 정을 쪼던 석공에게 버려진 채 누워있는 돌무더기를 지나 봉우리로 오르자 누워있는 불상이 나타났다. 와불. ‘새로운 세상이 오는 날 일어나 앉을 거라는 그 와불이로군.’ 가까이 다가서는데 어딘가 낯이 익다. ‘어디서 봤지?’ 감은 눈매의 와불 한 쌍이라니… 이런, 아주 오래전 아빠 사진에서 봤던 그 바위였다.

새로운 세상이 오면 일어나 앉을거라는 전설의 천불산 와불.

새로운 세상이 오면 일어나 앉을거라는 전설의 천불산 와불.

생전에 쓰셨던 물건을 정리하다 오래된 사진을 발견했었다. 사진 오른쪽 아래 날짜를 적어 넣은 흑백사진이었다. 젊고 건강한 남자는 한 손으로 허리를 괴고 먼 곳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귀가 긴 삼장법사처럼 생긴 와불 옆에,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을 한 아빠가 서 있었다. 수줍음과 설렘을 가득 담고, 가늘어진 눈으로 웃고 있는 청년. 삼우제를 지낸 다음 날 나는 내 또래 청년이던 그를 사진으로 만났다. 내 기억 속에 많은 부분의 아빠는 아프고, 그래서 짜증이 많았다. 그런데 이런 표정이라니? 아빠 얼굴의 빛나는 환한 기색이 너무 낯설었다. 기쁘다기보다 당황스러웠고 묘하게 서운했다. 몇 번이나 다시 들여다보았다. 아빠 얼굴에는 생전에 내가 보지 못한 미소가 가득했다. ‘뭐야…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어?…’ 엄마가 볼까 봐 숨어서 한참 동안 눈물을 찍어냈던 것 같다.

그의 짐은 무거웠다. 몰락한 집안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나 평생 ‘성공해야 할’ 당신의 형님과 자식뻘이 되는 어린 동생을 대신해 식구를 부양하셨고 평생 일만 하셨다. 성실하고 답답한 아빠. 우리 시대 아버지가 흔히 그러하셨듯 나는 지금도 아빠가 일하는 것 외에 즐겼던 것을 알지 못한다. 어린 시절 함께 한 추억도 손에 꼽힌다. 남산 식물원, 온양 온천 그리고 여름 물놀이 몇 번과 놀이공원에 갔던 것 정도.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생겼다고는 하지만 나는 점점 바빴고 당신은 몹시 아팠다. 건강이 나빠져 비행기를 탈 수 없었으니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셨다. 돌아가시던 해 제주도에 다녀오신 게 전부다. 제주 여행 사진 속에서 아빠는 온통 찡그린 표정이었다. 유채꽃 앞에서, 돌하르방 옆에서도 내내 짜증스런 표정이셨다.

“아빠가 사진을 다 망쳤네. 좀 웃지 이게 뭐야?!” 모처럼 여행에서 찡그리고 있는 아빠에게 나는 그리 타박을 퍼부었다.

‘바로 이곳이로구나. 사진 속 아빠가 햇살이 가득한 미소를 짓고 서 있던 곳.’
허둥지둥 와불의 어깨 쪽, 오래전에 본 사진 속 그 자리로 갔다. 자근자근 밟아둔 옛 기억이 차례로 밀려와 겹쳐진다. 사진 속 아빠의 미소, 설렘이 가득한 청년으로 서서 꿈꾸듯 환하게 웃었던 그 모습.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는 쪽은 나였다. 더이상 환하고 보드랍게 웃을 수 없게 된 사람, 호흡이 가빠 숨쉬기도 힘들어하는 사람을 등 떠밀어간 여행에서 나는 그런 아빠를 세워놓고 “사진 찍는데 왜 웃지도 않느냐?”면서 눈을 흘기고 짜증을 부렸었다.

목젖이 뻑뻑해지고 명치부터 한 뼘 위까지 쪼개지는 것처럼 아팠다.
“아빠, 미안해… 아빠, 미안해.”
길을 잃고 헤매다가 찾게 된 운주사, 아무도 없는 언덕에서 그날 나는 다리를 쭉 뻗고 아이처럼 울었다.

전라남도 화순 천불산 골짜기, 운주사에 가면 잊었던 얼굴, 잃어버린 꿈이 떠오른다. 이름 모를 조각가와 장길산의 꿈, 건강하던 내 아빠의 얼굴과 미소.

전라남도 화순 천불산 골짜기, 운주사에 가면 잊었던 얼굴, 잃어버린 꿈이 떠오른다. 이름 모를 조각가와 장길산의 꿈, 건강하던 내 아빠의 얼굴과 미소.

오늘 운주사를 다시 찾았다. 전라남도 화순 천불산 골짜기, 운주사에 가면 잊었던 얼굴, 잃어버린 꿈이 떠오른다. 이름 모를 조각가와 장길산의 꿈, 건강하던 내 아빠의 얼굴과 미소가 떠오른다. 와불이 있는 언덕 꼭대기까지 이제는 계단이 놓여 있다. 해가 질 무렵, 서쪽 계단을 오르며 내가 보지 못한 얼굴을 그려본다. 이름 모를 석공, 천 개의 불상과 천 개의 탑을 세운, 새 세상이 오는 날을 기다렸을 사람들 그리고 밝고 건강했던, 환한 웃음으로 가득했던 청년 내 아버지. 그의 사진을 보며 서운해 눈물을 찍어냈던 서른 살 어린애와 아빠를 부르며 엉엉 울던 운주사에 처음 왔던 날이 떠오른다. 많은 얼굴이 모두 겹쳐졌지만 그저 다시 보고 싶었다.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그때처럼 웃는 아빠를 만나고 싶었다. 와불 옆에 앉으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운주사에 다녀왔다.

기업인·여행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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