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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정호의 새벽, 수묵화의 먹 번짐이 느껴지나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주기중의 오빠네 사진관(12)

흑백 사진은 빛의 흔적으로 만들어집니다. 필름 막에 묻어 있는 은염이 빛을 받아 화학반응으로 상이 맺힙니다. 네거티브 필름이라면 빛을 받은 부분은 검게, 그렇지 않은 부분은 상대적으로 밝게 됩니다.

디지털카메라는 이미지 센서가 필름을 대신합니다. 카메라에 내장된 컴퓨터가 빛의 강도를 0과1의 2진법으로 계산해서 픽셀(pixel)을 만들고, 픽셀이 합쳐져 이미지가 됩니다. 사진은 밝음과 어둠의 변주가 만들어내는 과학의 산물입니다.

우리의 전통 수묵화도 흑백입니다. 먹의 농담으로 형태를 만듭니다. 그런데 ‘흑백’이라는 용어가 수묵화와는 썩 어울리지 않습니다. 흑백은 밝음과 어둠이라는 빛의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빛은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며, 사실성과도 관계있습니다.

수묵화에는 빛의 개념이 거의 없습니다. 사실성보다는 그림 속에 담긴 정신을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수묵화가 들은 “먹(墨-묵)은 검은 것이 아니라 깊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수묵화의 미학은 ‘밝음과 어둠’이 아니라 ‘깊음과 옅음’에 있다는 뜻입니다. 과학과 철학의 차이라고 할까요. 비슷한 말이지만 그 뉘앙스는 확연히 다릅니다.

필자는 전통 산수화에 담긴 정신을 흑백 사진으로 구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산과 바다는 하나’라는 개념의 개인전 '산수'를 올해 열었고『산수화로 배우는 풍경사진』이란 책을 썼습니다.

작업이 힘들었던 것은 소재가 아니라 색, 특히 흑백의 문제입니다. 밝음과 어둠, 즉 빛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사진으로 수묵산수화에 나오는 먹의 깊은 맛을 내기 어려웠습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입니다. 0과 1의 과학으로 먹의 깊은 정신세계를 구현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사진1 미시령, 2015. [사진 주기중]

사진1 미시령, 2015. [사진 주기중]

사진2 미시령, 2017.

사진2 미시령, 2017.

사진1,2는 미시령에서 찍은 풍경입니다. 색을 빼고 흑백으로 바꿨습니다. 색보정 작업이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포토샵 그래프와 숫자는 일절 보지 않았습니다. 과학이 아니라 감성적인 느낌으로 색을 손봤습니다. 밝음과 어둠이 아닌, 깊고 옅음으로 흑백사진을 만들었습니다.

“그게 무슨 차이가 있느냐.” 고 되물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결과는 같을지 모르지만 과정도 중요합니다. 나침반을 보고 항해하면 바늘 끝만 보지만, 별을 보고 항해하면 천기를 읽습니다. 좀 느려도 좋습니다. 과정 또한 사진하는 재미입니다. 흑백으로 바꾸고 나니 원본보다 훨씬 더 깊고 그윽한 분위기가 납니다.

사진3 옥정호에서, 2013.

사진3 옥정호에서, 2013.

사진3은 운해가 드리워진 전북 임실 옥정호 일대의 새벽 풍경입니다. 산사진을 찍을 때 안개가 드리워지고 역광 빛을 받으면 산수화의 먹 번짐과 비슷한 효과가 납니다. 멀수록 점점 더 흐려지는 원근법으로 인해 깊은 공간감이 생깁니다. 사진은 우리의 전통 산수화가 얼마나 사실적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수묵산수화가 구현하는 세계는 구도(求道)의 미학이 담겨있습니다. 우주의 질서, 자연의 섭리에 대한 깨달음을 화폭에 구현합니다. 조선후기의 화가 신위(申緯, 1769~1845)는 그림을 불가의 깨달음에 비유합니다. “화가가 그림에 깊이 빠져드는 것은 선가에서의 그 오묘한 깨달음과 같고, 이러한 깨달음의 세계는 형태나 채색을 공교하게 잘 그려서 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사진4 새, 2017.

사진4 새, 2017.

사진4는 경안천에서 찍었습니다. 더운 여름날입니다. 한차례 소나기가 퍼붓고 난 뒤 경안천에 물안개가 피어올랐습니다. 먹이를 구하던 새 한 마리가 물을 차고 날아오릅니다. 잔잔한 물에 파문이 입니다. 먹먹한 선(禪)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거리를 나서면 광고판의 자극적인 색이 눈을 아프게 합니다. 시각의 내성이 극에 달하면 색도 공해가 됩니다. 수묵산수화가 보여주는 먹의 세계를 흑백 사진으로 표현해보는 일은 어떨까요. 청나라 때 화가이자 비평가인 심종건(沈宗騫)은 이와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무릇 ‘화(華)’라는 것은 아름다움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고, ‘질(質)’이라는 것은 아름다움이 안에 감추어진 것이다. 그러한즉슨 아름다움이 밖으로 드러난 화는 한때 널리 떠다니는 허황한 명성을 얻지만, 아름다움이 안에 감추어진 ‘질’은 천고에 알아주는 사람을 얻는다.”

아주특별한사진교실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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