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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테르테 “똥내 난다”던 보라카이…악취도 플라스틱도 사라졌다

중앙일보

입력

필리핀 보라카이섬의 한 해변에서 현지인 아이가 물놀이를 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필리핀 보라카이섬의 한 해변에서 현지인 아이가 물놀이를 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4시간, (칼리보 공항에서) 버스로 갈아탄 뒤 또 2시간. 오랜 여정에 지칠 때쯤 바다 건너 작은 섬이 보였다.

<플라스틱 아일랜드> 3. 해양쓰레기 청정지역은 없다 #재개방 이후 달라진 보라카이에 가다

필리핀 중부의 보라카이 섬이다. 섬으로 들어가려면 다시 배를 타야 했다. 선착장은 공항 입국장처럼 절차가 까다로웠다.

담당 직원은 “허가받은 숙박 시설을 예약한 관광객만 섬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보라카이 섬에 들어갈 수 있는 관광객도 하루 6500명까지만 허용된다.

보라카이섬으로 가는 선착장에 붙은 현수막. 보카라이에서 하지 말아야 할 주의사항을 안내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보라카이섬으로 가는 선착장에 붙은 현수막. 보카라이에서 하지 말아야 할 주의사항을 안내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대기실 벽에는 ‘새로운 보라카이(New Boracay)에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적은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첫 번째는 "플라스틱은 안돼(No)", 두 번째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였다.

여의도 4배 섬에 200만 몰려…쓰레기 넘치자 폐쇄 

재개장한 지 1년이 된 필리핀 보라카이섬. 천권필 기자

재개장한 지 1년이 된 필리핀 보라카이섬. 천권필 기자

보라카이는 여의도 4배쯤 되는 면적을 가진 길이 7㎞, 너비 1㎞의 작은 산호섬이다. 해마다 전 세계 2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필리핀의 대표적인 휴양지다. 한국에서도 35만 명이 매년 이곳을 찾고 있다.

보라카이 섬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건 지난해 4월이다. 필리핀 정부는 급증하는 관광객 탓에 심각해진 환경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면서 6개월 동안 섬을 폐쇄하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그리고 반년이 지난 10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

재개장한 지 1년이 된 보라카이 섬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우선 '불라복 비치'로 향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섬 폐쇄를 지시하면서 “보라카이는 시궁창이다. 가봤더니 해변에서 20m 떨어진 곳에 쓰레기가 있고 물 속에서 똥 냄새가 난다”고 했던 바로 그곳이다.

악취 나던 해변, 냄새 사라지고 수질 회복 

보라카이섬 불라복 비치에서 관광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보라카이섬 불라복 비치에서 관광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해변은 한산했고 파도는 잔잔했다. 바다에서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해변에 누워 여유를 즐기는 관광객도 있었다. 군데군데 쓰레기가 보이긴 했지만, '시궁창'의 모습은 아니었다. 섬 폐쇄 전까지 해변을 두껍게 덮었던 녹조도 거의 사라졌다.

“폐쇄 전까지만 해도 바람이 섬 쪽으로 불면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해변에서 악취가 났어요. 바다에서 놀다 다치면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는 말까지 있었죠.”

다이빙 강사인 박부건(39)씨의 설명이다. 그는 2007년부터 보라카이에 머물면서 여행 가이드와 다이빙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박 씨는 “지금은 악취가 거의 나지 않고 수영해도 거리낌 없을 정도로 수질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바닷물을 떠서 코에 가까이 대보니 그의 말대로 냄새가 나지 않았다.

보라카이섬 불라복 비치 인근 바다에서는 다양한 산호와 물고기들을 볼 수 있다. [사진 박부건]

보라카이섬 불라복 비치 인근 바다에서는 다양한 산호와 물고기들을 볼 수 있다. [사진 박부건]

박씨를 따라 배를 타고 불라복 비치에서 500m쯤 떨어진 바다로 나갔다. 다이빙 장비를 착용하고 바닷속으로 들어가자 화려한 산호 군락과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보라카이섬 불라복 비치 인근 바다에서 폐쇄 이후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하수관이 끝도 안 보일 정도로 길게 뻗어 있다. [사진 박부건]

보라카이섬 불라복 비치 인근 바다에서 폐쇄 이후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하수관이 끝도 안 보일 정도로 길게 뻗어 있다. [사진 박부건]

옆에는 최근 공사를 마친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하수관이 끝이 안 보이는 곳까지 뻗어 있었다. 박 씨는 “예전에는 하수관이 해변 바로 앞에 다 개방돼 오수가 그대로 나왔는데, 폐쇄 이후에 하수를 1㎞ 이상 먼 바다로 걸러서 내보내라고 지침을 바꾸면서 하수관을 새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해변 30m 시설물 금지…파티도 사라져

필리핀 보라카이섬 화이트비치. 천권필 기자

필리핀 보라카이섬 화이트비치. 천권필 기자

보라카이에서 가장 유명한 화이트 비치 역시 폐쇄 이전과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해변을 뒤덮었던 파라솔은 사라지고, 쓰레기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해변 30m 안에는 어떤 시설도 설치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밤마다 이곳을 화려하게 빛냈던 해변 파티도 없어졌다.

보라카이 섬의 폐쇄 전과 폐쇄 중, 재개방 이후 현재의 모습. 폐쇄 이전까지 해변을 점령했던 파라솔이 재개방 이후에는 사라졌다. [DENR, 천권필 기자]

보라카이 섬의 폐쇄 전과 폐쇄 중, 재개방 이후 현재의 모습. 폐쇄 이전까지 해변을 점령했던 파라솔이 재개방 이후에는 사라졌다. [DENR, 천권필 기자]

전기 트라이시클(옆·뒤에 보조 좌석 붙인 오토바이) 기사인 로덴(37)은 “보라카이가 폐쇄 이전보다 지루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덕분에 섬은 확실히 깨끗해졌다”고 전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퇴출…빨대도 못 써

필리핀 보라카이섬 화이트비치에서 관광객들이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필리핀 보라카이섬 화이트비치에서 관광객들이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필리핀 정부가 보라카이가 섬을 폐쇄하면서까지 해결하려고 한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쓰레기와 하수다. 특히 1인당 쓰레기 배출량이 수도인 마닐라의 3배가 넘을 정도로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불어났다.

하수 역시 문제가 심각했다. 제대로 된 정화 시스템 없이 바다로 오·폐수를 그대로 흘려보내다 보니 해변에서도 썩은 냄새가 풍겼다.

보라카이는 섬 폐쇄 이후 플라스틱과의 전쟁을 벌였다. 섬 안에서는 일회용 플라스틱의 사용을 금지했고, 빨대도 종이나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만 쓰도록 했다.

필리핀 보라카이섬 화이트비치 인근 카페에서 제공한 카바나 빨대. 천권필 기자

필리핀 보라카이섬 화이트비치 인근 카페에서 제공한 카바나 빨대. 천권필 기자

실제로 해변 카페에 들어가니 'I AM PLASTIC FREE’라고 쓰인 빨대를 줬다. 직원은 “카사바(아열대작물)로 만든 빨대여서 버려도 금방 분해된다”며 “이젠 플라스틱 빨대를 쓰는 곳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관광객의 플라스틱 사용도 규제했다. 현지 다이빙 강사인 에드윈(31)은 “바다에 플라스틱 쓰레기를 함부로 버릴 수 있기 때문에 보트에서도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 못하게 했다”며 “관광객이 이를 어기면 배 주인이 영업 금지 등의 제재를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환경 기준 어긴 리조트 강제로 철거 

보라카이섬 불라복 비치 앞 건물의 일부가 철거된 채로 방치돼 있다. 천권필 기자

보라카이섬 불라복 비치 앞 건물의 일부가 철거된 채로 방치돼 있다. 천권필 기자

쓰레기와 하수 등의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리조트에 대한 규제도 대폭 강화했다. 섬 안에 있는 숙박시설에 대한 허가를 전부 취소하고 새 기준에 맞는 허가를 다시 받도록 했다.

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일부 리조트는 강제 철거하기도 했다. 실제로 해변 곳곳에는 철거 명령을 받고 폐허가 된 호텔과 리조트가 보였다.

또 이들 숙박시설에서 바다로 직접 오수를 배출하는 하수관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규정을 어기고 바다로 하수를 배출한 호텔엔 수천만 원에 이르는 벌금을 부과했다.

“목표 80% 도달…플라스틱 규제 더 강화”

필리피 보라카이섬 불라복 비치 앞 도로에서 하수관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천권필 기자

필리피 보라카이섬 불라복 비치 앞 도로에서 하수관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천권필 기자

보라카이 섬의 환경 개선이 마무리된 건 아니다. 섬 전체의 하수 처리 시설을 개선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실제로 불라복 비치 앞 도로에서는 지하에 하수관을 매설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보라카이 재건관리 관계기관 협의회의(BIARMG)의 나티비다드 베르나르디노 회장은 “폐쇄 이전 보라카이는 환경적으로 악몽과 같았지만 꾸준한 노력 끝에 현재는 목표의 80% 수준까지 도달했다”면서 “내년 4월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재평가해 섬의 완전 개방 여부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보라카이 근로자의 주거지를 섬 바깥으로 이주시키는 등 상주인구를 줄여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게 향후 목표”라며“플라스틱 규제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필리핀 보라카이=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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