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시장의 복수

중앙일보

입력 2019.12.17 00:34

업데이트 2019.12.17 01:34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상렬 콘텐트제작 Chief 에디터

이상렬 콘텐트제작 Chief 에디터

‘시장경제’가 한국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개인들이 자신의 선택을 자유롭게 추구하는 곳이 시장이다. 그 시장은 희소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준다고 우리는 배웠다. 시장의 실패는 정부가 보완한다. 그러나 정부가 과잉의욕에 사로잡혀 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해 소비자 선택을 제약할 때 탈이 난다. 시장은 위축되고 일그러져 경제는 후퇴한다. 반(反)시장적 정책의 결말이다.

정부 과도한 시장개입 남발로
소비자 선택과 경제자유 억압
집값 폭등과 불황 등 위기 자초

최저임금 급등과 주52시간제, 분양가 상한제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느닷없는 특목고·자사고 폐지 정책도 반시장적인 정책 범주에 들어간다. ‘조국 사태’가 발단이었는데, 정부는 엉뚱하게 교육 소비자의 선택권 제한에 나섰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공교육과 차별화된 교육을 시킬 기회를 잃게 됐다. 우리 사회 최상류층은 이미 자녀를 외국 유명 기숙학교에 보내고 있다. 그나마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모들은 자녀들을 조기 유학길에 오르게 할 것이다. 머지않아 유학원들은 더 기승을 부리고 유학비 송금은 급증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산층과 서민들은 자녀들에게 양질의 교육기회를 열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가슴을 칠 것이다.

시장은 반시장적 정책에 반드시 복수한다. 그 복수의 칼날이 이번에 겨눈 곳은 부동산 시장이다. 특목고·자사고 폐지 방침만으로도 대학 진학 실적 좋은 일반고와 유명 학원이 밀집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과 양천구 목동의 몸값이 올랐다. 초중등 자녀를 둔 부모들이 서둘러 움직였다. 분양가 상한제라는 괴물이 들이닥치면서 한껏 달아오른 부동산 시장은 불판에 기름을 들이부은 양상이 됐다. 강남 집값이 치솟았고, 이 상승세는 ‘갭 메우기’라는 이름 아래 서울 전역으로 번졌다.

서소문포럼 12/17

서소문포럼 12/17

언필칭 서민을 위한다는 정부가 결국 서민의 내 집 장만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었다. 시장을 거슬러 화를 자초한 것이다. 그래놓고선 16일 부동산대책에서 금융 봉쇄라는 새로운 괴물을 끄집어냈다.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 주택담보대출 금지’가 대표적이다. 비싼 아파트는 실수요자마저 대출을 받아 사는 길이 차단된 것이다. 고가 아파트 구입이 무슨 죄라도 되나. 은행 대출받아서 학군 좋고 교통 좋은 곳에 집을 사면 안 되나. 15억원이라는 기준은 어디서 나왔나. 2019년 12월 16일은 문재인 정부가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금융의 자유, 경제의 자유 억압에 나선 날로 기록될 것이다.

시장을 망가뜨리는 것은 가격을 때려잡아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인식이다. 가격은 대개 때릴수록 튀어 오른다.

지난해 9·13대책도 그랬다. 노무현 정부 시대를 뛰어넘는 종합부동산세 중과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금 폭탄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때 정부 스스로 “집값을 무조건 잡아야 한다는 게 당·정·청의 공통 의견”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종부세는 실제로 폭탄이 돼 투하됐다. 지난해보다 1조원 이상이 늘 것으로 국회 예산정책처는 추산한다. 시중엔 “집값 올려놓고 세금 뜯어가냐”는 비난까지 등장했다. 아파트 소유 비용을 가파르게 높여서라도 아파트를 팔게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였다. 그러나 시장은 다르게 움직였다. 수백만원의 종부세를 내야 하는 집주인들은 “집값이 수억원씩 뛰는 데다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올려받으면 된다”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정부가 원하는 매물은 나오지 않았다. 애꿎은 세입자들이 종부세 폭탄의 파편을 맞을 판이다. 소비자들은 교육·직장·교통 등의 이유로 서울 노른자위 도심에 살고 싶어한다. 그 욕구가 서울 집값을 밀어 올린다. 그런데도 정부는 시장의 소리엔 귀 막고 부동산 가격 찍어누르기에 골몰하고 있다.

사실 부동산값 폭등과 자영업자 몰락 등 경제 위기의 뿌리는 하나다. 정부가 고집해온 반시장적 정책 때문이다. 최저임금 급등은 노동시장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노동 가격을 정부가 밀어붙인 것이고, 주52시간제는 시장에서 결정돼야 할 노동의 투입량을 정부가 규제한 것이고, 분양가 상한제는 신규 주택 가격을 정부가 정한 것이다. 수요와 공급에 의한 가격 결정이라는 경제의 기본 원리는 작동되지 않았다.

많은 민간 전문가들은 “시장에서 결정돼야 할 일에 정부가 자꾸 개입하는 것, 그래서 시장을 왜곡시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문제”라고 말한다.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시장은 반드시 복수한다. 그 복수가 또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두렵다.

이상렬 콘텐트제작 Chief 에디터

모비온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