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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야? 도시 호적 없는 中농민공 ‘하류인생’

중앙일보

입력

중국에서 도시와 농촌 주민의 신분 격차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게 있다. 후커우(戶口·호적)다.   

[사진 셔터스톡 ]

[사진 셔터스톡 ]

후커우는 사회보장과 연동돼 있다. 농촌 후커우 보유자는 도시 후커우 보유자가 누리는 사회보장 혜택을 누릴 수 없다. 같은 중국 국민인데도 후커우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사회주의체제가 제공하는 혜택을 누구는 받고 누구는 받을 수 없는 게 중국의 현실이다.

도시에 살긴 하지만 취업, 사회보장, 의료, 공공주택분양 등 공공서비스에서 차별을 받는다. 중국의 고질적인 사회문제다.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체제에서 후커우는 목의 가시 같은 존재다. 중국은 왜 후커우 제도를 개혁하지 않았을까.

돈 문제다.  

사회보장을 실시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 지방정부 재정에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베이징에 살고 있는 농민공(農民工, 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에게 베이징 후커우를 갖고 있는 베이징 주민은 딴 나라 사람이다. 이들이 누리는 사회보장 혜택만 해도 농민공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피플데이터 자료를 함께 보자.

교육

베이징 후커우가 있다면 유치원 교육비용으로 몇 만 위안을 절약할 수 있다. 국가가 유치원에 보조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본인 부담은 적다.  명문 고교를 선택할 때 내는 비용도 면제된다.

부동산 구매

회사나 조직(單位)에서 건축하거나 구입한 아파트를 직원들에게 원가(成本價)로 분양하는 아파트를 ‘푸리팡(福利房)’이라 한다. 베이징 후커우가 있는 경우 푸리팡을 살 수 있는 자격이 있다. 후커우가 없는 외지인은 부동산개발업자가 분양하는 상핀팡(商品房)을 살 수 밖에 없다.

이마저도 5년 연속 성실하게 납세했다는 증명을 제출해야 하거나 사회보험료를 빼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취업

당연히 베이징 후커우가 있으면 베이징 기업에 취업하기가 용이하다. 특히 임금이 높은 직군은 베이징 후커우 보유자 밖에 뽑지 않는다. 실업을 해도 안전망의 보호를 받는다. 매월 수 천 위안의 실업급여가 제공된다.

농민공 자녀들이 베이징 후커우가 없어 가장 많은 좌절을 맛보는 영역이 취업 아닐까. 하지만 제대로 교육 받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저학력 농민공 자녀들이 베이징 기업에 들어가 후커우를 거머쥐기란 거의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다.

교통, 의료

돈이 있다고 다들 차를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번호판을 받아야 차를 살 수 있는데 번호판 대기가 하세월이다. 특히 베이징 후커우가 없으면 5년 연속 납세 증명 또는 사회보험료 납부 증명을 내야 한다. 베이징 후커우 보유자보다 대기줄이 5년 뒤로 밀리는 것이다.

60세 이상 후커우 보유자에겐 지하철이나 버스 등 공공 교통 서비스가 공짜다. 또 베이징 후커우가 있으면 외지인보다 더 많은 범위의 무료 의료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베이징 후커우 없이 베이징에 체류하는 것 자체가 고비용 구조인 것이다.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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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2014년부터 도시 후커우 취득 제한을 풀고 있다. 올 봄에는 500만명 이하 도시급까지 완화폭을 넓히고 있다. 이유가 있다. 인구 구조가 변했다. 고도성장의 엔진 가운데 하나였던 인구보너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취업가능인구(16~59세)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74.5%로 정점에 달했다.  

국제수준(65%)보다 9.5% 포인트 높았다. 지난 40년간 중국은 이렇게 두터운 노동인구층을 발판으로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를 걸 수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 인구가 고령층으로 변했다. 사회보장 대상이 됐다.

한자녀 정책 30년 동안 노동력 감소가 물살을 탔다. 가파른 임금 상승으로 이제 더이상 저임 노동력에 의존한 공장은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성장의 방정식도 바뀌게 됐다. 더이상 수출과 투자에 의존한 고도성장은 불가능해졌다. 중국이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내수에 눈을 돌린 이유다.

내수를 키우기 위해선 도시화율을 높이고 이 도시에 사람을 채워넣어야 한다. 중국의 도시 인구는 7억5000만명. 이중 2억5000만~9000만명은 농민공으로 알려졌다. 이 거대한 잠재적 도시 주민풀을 활용하면 된다.

500만명 이상 도시는 농촌 후커우 보유자들의 유입을 철저히 막고 나머지 중소 도시로 이들의 이동을 유도한다면 내수 주도 성장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리커창 총리의 말을 들어보자.

“중국의 도시화에 내수 진작의 최대 잠재력과 경제 성장의 최대 원동력이 내재돼 있다.”  

문제는 도시 건설이 속속 이뤄지고 있는데 전체 인구에서 도시 주민의 비율인 도시화율은 벌써부터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농민공에게 도시 후커우만 주면 도시를 채울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실상은 그렇게 녹록치 않은 것이다. 이유가 있다.

[사진 fccs닷컴]

[사진 fccs닷컴]

20년 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기 전만 해도 도시 후커가 매력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부동산 가격이 어떻게 변했나. 아래 그래프를 보자.

[사진 fccs닷컴]

[사진 fccs닷컴]

[사진 fccs닷컴]

[사진 fccs닷컴]

1999년 베이징·상하이의 아파트 1㎡당 가격은 3176~4787위안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4만1975~44797위안으로 폭등했다. 농민공 월급이 해마다 10% 넘게 올랐다고 해도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다. 게다가 지방 중소도시 부동산은 거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농민공이 아무리 많다해도 도시를 채우기는 구조적으로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도시 후커우가 있으면 뭐하나. 특급 대도시 아파트는 구름 위에 있고 지방 중소도시 아파트는 괜히 대출 끌어 샀다가 거품이 꺼지면 평생 족쇄가 된다. 어정쩡한 도시 후커우는 ‘개밥의 도토리’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게다가 이런 도시 후커우 따느라 농촌 후커우를 버리면 집단 소유이긴 하지만 토지에 대한 소유권도 사라진다. 한마디로 계산이 안 서는 것이다.

[사진 인민망]

[사진 인민망]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이동해 노동력을 팔고 있는 중국의 대표적 임금 노동자, 농민공은 외국인 노동자나 다름 없다. 사회보장 없는 도시 체류는 날이 갈수록 채산이 안맞는 일이 되고 있다. 50대 이상 농민공이든 20~30대 농민공이든 다시 귀향길에 오르는 근본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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