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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언수 "절정의 문학도 훌륭한 번역 없다면 아무 소용 없다"

중앙일보

입력

한국문학번역상 기자간담회에서 김언수 작가가 한국 문학의 번역 문제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 있다. [사진 한국문학번역원]

한국문학번역상 기자간담회에서 김언수 작가가 한국 문학의 번역 문제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 있다. [사진 한국문학번역원]

"우리나라는 문학작품의 번역에 대한 지원이나 번역가에 대한 대우가 충분치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훌륭한 번역 결과물을 내놓으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추리소설 『설계자들』(문학동네)로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김언수 소설가가 한국 문학의 번역 현실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1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한 호텔에서 열린 제17회한국문학번역상 기자간담회에서 "문학 작품을 해외에서 낼 때 절정의 문학을 쓰니 마니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톱클래스 번역가가 훌륭하게 번역해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소설 안에 공자가 있어도 좋은 번역이 없으면 보여줄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제17회 한국문학번역상 수상작의 원작자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그는 "내 작품에 대해 해외로부터 문장이 좋다거나 표현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며 "그런데 그분들이 한글 문장을 보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국내에서 우리끼리 절정의 문학 작품을 쓴다 해도 훌륭한 번역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김 작가는 이어 "좋은 문학 작품도 좋은 작품과 더불어 좋은 번역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좋은 작가는 문제가 아니다"며 번역가들을 향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올해 한국문학번역상 수상작 김언수의 『설계자들』.

올해 한국문학번역상 수상작 김언수의 『설계자들』.

올해 한국문학번역상 수상자는 김언수의 『설계자들』을 영어 번역한 김소라씨를 비롯해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스페인어로 번역한 윤선미씨, 천명관 『고래』를 러시아어로 번역한 이상윤ㆍ김환씨로 선정됐다.

김언수의 『설계자들』을 영어 번역한 김소라 번역가는 2005년 코리아타임즈현대문학번역상, 2007년 한국문학번역신인상 수상한 바 있으며 공지영, 배수아, 신경숙, 전성태, 편혜영, 황석영 작가의 소설을 영미권 독자들에게 알려왔다. 2017년 그가 번역한 편혜영의 『홀』은 셜리잭슨상을 수상했고 2019년 황석영의 『해질 무렵』은 맨부커상 국제부문 후보작에 올랐다. 이외에도 펜(PEN) 번역상, 베스트번역서 상 후보에 오른 바 있다.

김소라 번역가는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 "작품마다 어려운 점은 다른 것 같다"며 "번역을 할 때는 문장을 그대로 번역하는 게 아니라 느낌을 살려야 하지 않나. 그런 부분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다. 하지만 번역가는 그런 부분 때문에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한 김소라(오른쪽) 작가는 "번역을 할 때 느낌을 살려야 하는 문제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사진 한국문학번역원]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한 김소라(오른쪽) 작가는 "번역을 할 때 느낌을 살려야 하는 문제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사진 한국문학번역원]

수상자 가운데 특히 윤선미 번역가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페인어권을 대표하는 한국문학 전문 번역가로 지난 10여년 간 김기택, 백가흠, 백무산, 이승우, 윤흥길, 한강 등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스페인어로 옮겨왔다. 그는 앞서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작 『채식주의자』도 번역한 바 있다. 『채식주의자』 스페인어판은 산클레멘테 문학상 수상작으로 꼽히기도 했다.

윤 번역가는 한국문학의 특징인 '여백의 미'를 번역의 어려움으로 꼽았다. 그는 "한국 문학은 문장이 간결하고 여백이 많다. 독자가 보면서 완성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그런 문장을 그대로 번역하면 문장이 딱딱하고 짧아서 서양 독자들에는 '이게 뭐야'라는 인상을 주기 쉽다. 그래서 번역할 땐 문장을 잇거나 추가 설명을 하거나 더 많은 해석과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말만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니라 마음도 들어가고 해석도 들어가고.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라 더 힘들다"고 했다.

한국문학번역상 공로상을 수상한 피오 세라노 작가는 "스페인에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사진 한국문학번역원]

한국문학번역상 공로상을 수상한 피오 세라노 작가는 "스페인에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사진 한국문학번역원]

공로상에는 스페인 베르붐 출판사 대표이기도 한 피오 세라노 작가와 김혜순 시인의 영미권 전담 번역가인 최돈미 번역가가 선정됐다. 피오 세라노 작가는 베르붐 출판사를 통해 한국 문학 번역서를 50권 이상 출간해왔다. 그는 "스페인에서는 오랫동안 한국 문학 작품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며 "중국과 일본 문학은 19세기 중반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한국 문학은 너무 늦게 알려져서 그 여파가 여태까지 오는 것이다. 1960년대 시집이 하나 출간된 게 전부"라며 한국 문학의 스페인어권 진출에 아쉬움을 표했다.

한국문학번역상은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의 쌍방향 소통에 기여해온 우수한 번역가를 격려하고 한국문학에 대한 대내외적 관심을 고취하고자 1993년에 제정됐다. 격년제로 시상해오다 해외에서의 한국문학 출간이 증가함에 따라 2013년부터는 매년 시상해 올해로 17회째를 맞는다.

올해는 작년 한 해 해외에서 출간된 24개 언어권 153종의 번역서를 대상으로 1차 외국인 심사, 2차 내국인 심사, 최종심사회의를 거쳐 수상작 3종을 선정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수상작 중 한 편에게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이 수여된다. 시상식은 16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정아람 기자 aa@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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