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기자가 방문한 태국 파타야 해변의 코란 섬. 비수기인 관광객이 많지 않은 편이라고 해도, 세계 각국의 관광객을 가득 태운 300인승 선박이 30분마다 해변과 코란 섬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플라스틱 아일랜드> 3. 해양쓰레기 청정지역은 없다플라스틱>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버스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파타야 해변에는 관광객이 즐겨 찾는 코삭·코란·코크록 등의 섬이 있다. 해변에서 배로 10분이면 갈 수 있고, 물이 맑아 스노클링‧씨워킹 등을 즐기려는 사람이 몰린다.
코란 섬 동쪽에 위치한 길이 약 1㎞의 사마에 모래 해변을 찾아갔다. 언뜻 보기에 깨끗했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거의 1m 간격으로 플라스틱 쓰레기가 모래에 섞여 있었다.
5분 정도 걸으며 눈에 띄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주웠다. 손으로 집기 어려운 작은 플라스틱은 빼고도 양손에 다 들 수도 없을 만큼 쓰레기가 모였다. 병뚜껑·라이터·빨대·비닐봉지·장난감 등 종류도 다양했다.
바위틈에 빼곡한 신발, 비닐, 스티로폼
모래 해변이 끝나고 바위가 나타나자 쓰레기가 더 많아졌다. 약봉지, 음료수병, 플라스틱 빨대와 일회용 수저, 화장실 청소용 세제, 샴푸, 로션, 페인트 스프레이, 장난감 등이 쌓이거나 끼어 있었다. 합성섬유 밧줄도 이리저리 엉켜있었다.
거대한 쓰레기더미 옆 지나다니는 관광객
작은 섬 한가운데에는 높이 5m가 넘는 쓰레기 더미가 있었다. 크기와 형태가 마치 고래처럼 보였다. 섬 안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도 제대로 처리 못 했기 때문이었다. 섬 전체에서 하루 50t씩 나오는 쓰레기 중 유리병 등 재활용이 가능한 것만 매일 저녁 25t씩 육지로 나간다. 폐비닐 등 섬을 빠져나가지 못한 쓰레기가 수년간 쌓이다 보니 이제 5만t에 이르고 있다.
주워도 주워도… 매주 쓰레기 나오는 섬
코란 섬 인근의 코삭 섬도 쓰레기가 심각하다. 코삭은 걸어서 10분이면 섬을 가로지를 수 있을 정도로 작다. 여름이면 섬 주변에 스노클링을 하러 온 관광객을 태운 소형 선박 수십척이 고정용 추나 콘크리트 덩어리를 내리고 정박한다. 이 배들은 성수기가 끝나면 추나 콘크리트를 수거하지 않고 그냥 줄을 끊고 떠난다. 버려진 추 등이 섬 주변 산호초를 해치는 주범이 된다.
산호 전문가인 태국 마히돌 국제대 생태학과의 웨인 필립스 교수는 16년 전부터 한 달에 한두 번씩 코삭을 찾아 산호 생태계와 해변 플라스틱을 조사해왔다.
그가 이끄는 ‘프로젝트 코삭(Project Ko Sak)'팀은 해변 플라스틱 쓰레기도 줍는다. 필립스 교수는 “90m 길이의 해변을 30명이 2~3시간 정도 치우면 대형 봉투 20개가 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모인다”며 “그러고도 다음번에 가면 쓰레기가 그만큼은 다시 나온다”고 전했다.
코삭 섬 앞바다엔 11~12월이면 해류가 시계 방향으로 밀려오고 태국 만(灣)을 도는데, 태국 본토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이 해류에 섞여 코삭에 닿는다. 필립스 교수는 “섬 쓰레기 문제는 결국 본토의 쓰레기 문제와 같다”고 주장했다.
필립스 교수는 "섬의 쓰레기 문제는 결국 태국 본토의 쓰레기 문제"라고 설명했다. 매년 11월과 12월 태국 본토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이 해류에 섞여 코삭 섬 앞바다로 온다.
필립스 교수는 “큰 플라스틱, 미세플라스틱 등 크기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든 플라스틱이 나온다”며 “생수병·일회용 수저 등은 관광객이 버린 것이나, 기름·샴푸 용기 등의 생활 쓰레기도 떠밀려온다”고 설명했다.
태국, 내년부터 대형마트 비닐봉투 제공 금지
태국 정부는 지난해 3월 '천사의 해변'이라고 불리던 푸껫 피피 섬의 마야 해변을 폐쇄했다. 하루 평균 5000명이 방문하면서 쓰레기가 많아졌고, 결국 산호 생태계까지 훼손됐기 때문이다.
당초 1년만 폐쇄할 계획이었으나 산호 생태계 회복에 시간이 더 필요해 2021년 6월까지 재개방이 미뤄졌다. 이후에도 관광객을 하루 1200명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마야 해변 폐쇄 이후 태국에서 '오버투어리즘(과도한 관광산업으로 인한 환경·생태계 파괴)', '플라스틱 쓰레기' 이슈가 급부상했다. 태국 정부는 내년 1월부터 백화점과 편의점에서 비닐봉지 무상 제공을 금지하고, 국립공원 내에서 모든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한다.
태국 정부는 3년 안에 플라스틱 빨대와 컵, 식품 스티로폼 용기, 경량 비닐봉지 사용도 단계적으로 금지하고, 식료품 수입에 사용되는 스티로폼 박스나 비닐 포장도 금지할 예정이다.
시민사회도 플라스틱 문제 해결에 나섰다. 매주 방콕 등 전국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이 함께 쓰레기를 줍는 행사인 ‘클린업’을 진행하고 있다. 12세 환경 운동가(레일린 릴리 사티타나산)이 ‘플라스틱 전쟁’의 상징처럼 떠오르기도 했다.
시민들의 경각심은 태국의 전통 축제일 '로이끄라통(지난달 11일)'의 풍경도 바꿨다. 축제에 맞춰 바나나 잎사귀와 장대, 꽃장식 등을 못으로 고정한 연꽃 모양의 바구니를 만들어 초·등불을 담은 뒤 소원을 빌며 물에 띄워 보내는 게 전통이다.
그러나 꽃장식, 못 등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쓰레기가 된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해마다 양이 줄었다. 올해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으로 등불을 띄우는 '디지털 로이끄라통'까지 생겨났다.
폐 낚싯줄을 재활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시민단체 'EJF(환경정의재단)'의 활동가 잉팟 팍체라차쿨은 "전통이냐, 환경이냐 논란이 점점 커지면서 올해 로이 끄라통에는 전통적인 방식을 대체하는 '디지털 로이끄라통'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고 전했다. 그는 "아직 플라스틱 문제에 있어 찬반이 갈리긴 하지만, 변화가 시작된 건만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푸껫·방콕(태국)=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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