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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하경 칼럼

부동산 폭등은 문재인 정부의 서민 착취 아닌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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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2000년 1월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한 은행이 복권을 추첨했다. 사회자는 당첨자를 확인한 뒤 할 말을 잃었다. 거액의 당첨금의 주인이 현직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독재자 무가베는 자신과 장관들의 월급을 두 배로 올려놓고도 모자라 고객에게 돌아가야 할 복권당첨금을 집어삼켰던 것이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공저자인 대런 애스모글루 MIT대 경제학과 교수와 제임스 A 로빈슨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는 국가를 실패로 몰아가는 착취적 제도의 사례로 이 장면을 상기시키고 있다.

약자 위한 정부인 줄로 알았는데 #서울에 집 있는 중산층만 위하고 #청와대 참모들 배불린 최악 정책 #MB 친시장 부동산 안정책 배워야

문재인 정부의 장하성·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아파트 값 폭등으로 재산이 10억여원 늘었다. 1급 이상 전·현직 청와대 참모들의 재산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문 대통령이 “부동산 문제는 자신있다”고 한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국민들의 억장이 무너지고 있다. 무가베의 복권 사기와 무엇이 다른가.

갤럽 여론조사는 뜻밖에도 ‘서울에 집이 있는 화이트칼라 중산층’이 문 대통령 국정지지율의 버팀목임을 알려준다. 내 재산을 몇억원씩 불려주는 정권을 누가 미워하겠는가. 강남 좌파와 우파들이 “문재인, 정말 고맙다!”고 합창한다. 지방 거주자·블루칼라·저소득층은 절망하고 있다. 역대 최악의 부동산 광풍을 불러온 이 정권은 공동체 분열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도대체 이 정권의 정체는 무엇인가. 평등·공정·정의라는 달콤한 약속과 달리 서민을 지켜주지 못한 무능한 정권인가. 아니면 지지자를 늘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 준 교활한 정권인가. 그 어느 쪽도 치욕적인 평가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불로소득인 자산소득이 땀 흘려 번 근로소득의 가치를 부정하는 사회는 윤리적이지 않다. 그런 결과를 만든 정책은 불순하며, 정의를 조롱한다. 실물경제의 건강한 성장과 무관하게 돌아가는 더러운 투전판에서 너와 나는 넋을 잃고 부자가 된 기분에 취해 있다. 거품이 터지면 어쩔 것인가. 부자나라 미국에서도 대선을 앞두고 자산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부유세 도입 논쟁이 뜨거운데 한국에서는 진보정권이 불평등을 조장하고 있다. 부끄럽지 않은가.

최근 서울대생 전용 포털사이트인 스누라이프에서 진행한 ‘존경하는 대통령’ 투표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1위에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해 경제를 살렸고, 실업률을 낮췄으며,  G20회의를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최해 국가 위상을 높인 업적이 재평가된 결과다. 문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하위권에 머물렀다.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요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투기를 차단하기 위해 다섯 차례나 금리를 올려 돈줄을 죄고, 강남 주변에 보금자리 주택을 지어 공급을 확대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건설사들이 쓰러졌지만 부양책을 쓰지 않았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 유일한 정부가 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종부세 폭탄까지 동원했지만 강남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부동산을 이용했다. 규제를 풀고, 주택금융을 완화해 투기심리를 건드려 유동성이 흘러들어오게 만들었다. 아예 “빚 내서 집 사라”고 했다. 문 정부 부동산 정책의 결정적 패착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다. 시중에 자금이 잔뜩 풀려있는데 공급이 줄어들어 가격이 오를 거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반면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시장적인 부동산 정책은 성공했다.

이런데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국 주택시장이 지속적인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 것은 국민을 바보로 취급한 발언이다. 시장은 완전히 거꾸로 움직이고 있다. 현 정부 출범 당시 6억635만원이던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은 지난달 8억8014만원으로 45% 뛰었다(KB국민은행 집계). 내년에 3기 신도시 토지보상비 40조원이 풀려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면 또 다른 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동기의 일관성 때문에 지지층으로부터 신뢰를 받았다. 빠른 속도의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도입,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자리 창출은 비록 결과가 좋지 않아도 강한 인상을 주었다. 어떤 악재에도 핵심 지지층이 콘크리트처럼 뭉친 이유다. 그런데 부실한 부동산 정책은 "알고 보니 부자를 위한 정권”이라는 치명적 메시지를 발신하고 말았다. 오죽하면 경실련이 정색하고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을까. 정권의 위기다.

이 정부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한수 배워야 한다. 절대로 시장과 맞서 싸우면 안 된다. 공급을 확대하고 거래세를 낮춰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도록 유도해야 한다. 김현미 장관이 꺼내든 17차례의 실패한 대책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반기업 정책을 중단하고 규제를 풀어 1000조원의 부동자금이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가게 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초심대로 고통받는 서민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지금처럼 짐바브웨와 다를 게 없는 착취적인 부동산 광풍을 집권세력이 즐기는 건 죄악이다. 무능과 판단착오를 사과하고 서민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이하경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