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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밥그릇 싸움의 도구로 전락한 국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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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친여 성향의 군소 정당들로 ‘4+1(민주+바른미래+정의+민평+대안신당) 협의체’란 해괴한 모임을 만들어 예산안을 일방 처리한 민주당이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마저 강행 처리하겠다고 나섰다. 오늘 열리는 본회의에서 선거법·공수처법 등을 일괄 처리하겠다고 예고했다.

자유한국당의 저지 속 범여권이 수적 우세를 이용해 이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또 한번 난장판 국회가 재연될 수밖에 없다.

선거법과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게임의 룰과 사법 행정의 근간을 좌우하는 중대한 법안이다. 한국당이 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중요한 사안을 제1 야당과의 협의없이 일방 처리한다는 자체가 난센스다. 강행한다면 엄청난 후유증을 몰고 올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냉소·혐오가 커지면서 국민 갈등과 분열을 더욱 부채질할 막장극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힘겹게 살아가는 국민이 국회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민주당과 친여 정당들은 패스트트랙 법안이 정치개혁과 검찰 개혁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제 밥그릇 지키기를 위한 뒷거래라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민생법안 등을 처리하기로 했던 본회의(13일)가 우선 각 정파들의 잇속 챙기기 탓에 무산됐다. 민주당이 지역구 250+비례대표 50석, 비례 25석에 대해 연동률 50%를 적용하는 선거법 수정안을 내놓자 정의당·바른미래·평화당이 돌연 본회의 불참을 선언한 것이다. 이인영 원내대표 스스로 “한국당 반발보다 4+1 공조 균열이 금요일 본회의를 불발시킨 주원인이었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국회가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가고 있는 책임의 상당부분은 민주당에 있다. 민주당은 애당초 야당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기 보다 군소 정당을 들러리 세워 예산안 등 쟁점 법안을 처리하는 꼼수를 부렸다. 그 결과 선거법은 누더기가 됐고, 결국 민생법안 처리도 무산되는 결과를 빚었다는 비난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의당의 처신도 납득할 수 없다. 정의당은 대통령의 공수처장 임명,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 공직자의 수사 배제 등 공수처 법안에 문제가 수두룩한데도 여당과 함께 밀어붙여 오다 최근 “의석 몇 개에 연연해 합의안을 뒤흔들었다”며 민주당을 맹비난했다. 국민 여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당 의석수 확대에만 급급하는 모습은 매우 실망스럽다. 조국 법무장관 지명 ‘지지’로 선회해 “정의 없는 정의당”이란 비난을 샀던 때가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예산안 처리 과정의 국회법 위반 논란 등에 휩싸이면서 중립성을 의심받는 등 파행적 국회 운영에 큰 책임이 있다. 마지막까지 대화와 협상을 이끌어 파행을 막을 보루가 의장의 몫임을 잊어선 안 된다. 한국당 역시 극한 투쟁 일변도에서 벗어나 지금이라도 대화의 장으로 나서기 바란다. 협상을 거부하고 투쟁만 하는 것은 제1 야당의 역할을 방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