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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만 부활하는 균형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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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염태정 기자 중앙일보
염태정 정책부디렉터

염태정 정책부디렉터

얼마 전 일이 있어 세종시에 갔었다. 오랜 준비를 거쳐 2012년 7월 17번째 광역자치단체로 공식 출범했으니 7년이 넘었는데도 공사 중인 곳이 꽤 됐다. 세종충남대병원 공사가 한창이었고, 도로 공사도 곳곳에서 보였다. 길이 3.6㎞에 달하는 정부청사 주변 공터에는 새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강변에 우뚝 솟은 아파트는 신도시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그런데 시내 중심부를 벗어나면 영 딴판이다. 개발이 덜 된 전형적인 시골 모습이다. 그러니 ‘세종시에 정부청사·신도시만 있는 거냐’는 불만이 지역민들 사이에서 나온다. 세종시 안의 읍면 지역은 소외되고 있으니 같이 개발해 달라는 거다. 이렇게 주민들로부터 지역 내 균형발전 요구를 받는 세종시는 중앙정부를 향해선 국회 분원 설치 등 국가 단위 균형발전을 위한 지원과 투자를 말하고 있다. ‘특별자치시’란 이름에 맞는 자치권 강화도 요구하고 있다.

균형발전·분권강화 요구는 세종시만의 얘기는 아니다. 시도지사협의회를 비롯한 지방 4대 협의체 대표들은 지난 2일 균형발전·분권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며 지방자치법 개정안 국회통과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하지만 개정안의 연내 통과는 물 건너갔고, 내년 1~2월 임시국회 통과도 쉽지 않아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지방분권·균형발전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 전국 시도지사 앞에서 연방제 수준의 강력한 분권을 약속했다. 그 약속은 진전이 없다. 제자리걸음이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성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다. 광주형일자리, 구미형일자리 등이 성과로 꼽히나 그마저도 실제 사업 진행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지역별 혁신도시의 생활여건도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지난 2년 그렇게 지지부진했던 균형발전과 분권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다시 커지고 있다. 국회는 균형발전을 앞세워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을 크게 늘렸다. 국회를 통과한 내년 예산안 512조 2505억원은 정부 원안(513조 4580억원)보다 1조 2075억원 줄었으나 SOC 예산은 23조 2000억원으로 국회 심사를 거치며 오히려 9000억원(17.6%) 늘었다. 이해찬(민주당·세종), 김재원(한국당·상주군위의성청송) 의원 등 각 당 실세의 지역구 예산은 정부안보다 수억~수십억원 늘었다. 총선용 선심 예산이 아닐 수 없다. 김용진 전 기획재정부 차관 등 총선 출마를 선언하는 사람들도 경쟁적으로 균형발전을 말한다. 분권 목소리도 높다. 지난 12일 인천 송도에서 ‘새로운 시대 주민중심 지방자치 구현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고 앞서 9일 부산에선 자치분권 포럼이 열렸다.

문 대통령은 2017년 10월 전국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자치와 분권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그걸 믿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균형발전과 분권강화는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을 살릴 수 있는 두 축으로 불리는데, 북한·경제·선거에 밀려 대통령·국회의 관심 밖이란 인식이 지배적이다.

SOC 예산을 늘리며 균형발전을 말하지만, 교육환경 개선 등 소프트웨어 측면의 지역발전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조선업이 망하면서 골리앗 크레인을 현대중공업에 1달러에 팔아 ‘말뫼의 눈물’로 잘 알려진 스웨덴 말뫼시는 말뫼대학을 성장동력으로 삼아 부활했다고 하지 않는가. 균형발전위원회는 지역발전에 거점 국립대의 역할을 강조해 왔는데 지방대 몰락이 현실화되는 지금 정부·국회가 지방대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나오는 균형발전·분권강화가 말뿐인 부활이어선 안 된다. 그런 말이 다시 나올 필요가 없는 실천이 중요하다.

염태정 정책부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