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女야구 에이스' 김라경 "서울대 야구부 최초 여자선수 되고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여자야구 알리고 싶어서 서울대에 가고 싶었어요."

2020년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합격한 여자야구 국가대표 김라경. 박소영 기자

2020년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합격한 여자야구 국가대표 김라경. 박소영 기자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에이스 김라경(19)이 2020년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 신입생이 된다. 12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만난 김라경은 "수시모집 일반전형에 지원했고, 지난 9일 밤 경기 남양주 집에서 인터넷으로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다. 너무 떨려서 가족들이 대신 봐줬다. 정말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김라경은 지난해에도 서울대 체육교육과 수시모집에 지원했다. 1단계 서류평가에서 합격했지만, 2단계 실기평가에 늦는 바람에 탈락했다. 다른 대학에 입학했지만, 미련이 남아 1학기가 끝나고 휴학을 하고 다시 수능을 봤다. 김라경은 "서울대에 정말 간절하게 들어가고 싶었다. 계속 미련이 남아 휴학하고 독서실을 다니면서 공부했다. 올해는 실기평가에 늦지 않기 위해 전날 서울대 근처 숙소에서 묵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21일 KIA-LG 경기에 앞서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김라경이 시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21일 KIA-LG 경기에 앞서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김라경이 시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라경은 여자야구 선수다. 한국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투수 출신인 오빠 김병근(26)을 따라 초등학교 6학년때 계룡시 리틀 야구단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김라경 어머니는 "1년 정도 하면 그만둘 줄 알았다. 그런데 계속 열심히 하기에 응원해줬다"고 전했다.

그는 잘 던지고 잘 친다. 시속 117~118㎞ 직구를 던진다. 공식 기록은 최고 시속 112~113㎞다. 세계 정상급 여자 투수들은 보통 120㎞대의 공을 던진다. 커브, 슬라이더 등 변화구도 잘 던진다. 하체를 활용한 투구폼도 부드럽다. 선동열 전 남자대표팀 감독이 김라경을 보고 "투구 폼이 예쁘다"고 칭찬했다. 김라경은 홈런도 펑펑 날린다. 2015년에는 장충리틀야구장에서 여자 선수 최초로 홈런을 쳤다. 그해 여자야구 국가대표에 뽑힌 김라경은 현재까지 한국 여자야구 에이스로 활약 중이다.

투구와 타격 훈련으로 물집이 생기고 굳은 살이 박힌 김라경 손바닥. [사진 김라경 SNS]

투구와 타격 훈련으로 물집이 생기고 굳은 살이 박힌 김라경 손바닥. [사진 김라경 SNS]

그러나 야구는 남자 선수들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 일본과 달리 여자 야구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중·고등학교 여자야구는 1개 팀도 없다. 동호인 팀에서 뛰는 선수 대부분은 다른 일을 하면서 주로 주말에 훈련을 한다. 당연히 프로 리그도 없다. 그래서 김라경은 '여자야구를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투철하다. 그는 "야구도 공부도 잘하면 여자야구를 많이 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울대에 합격한 여자야구 선수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라경에게 '서울대 도전' 꿈을 심어준 건, 서울대 야구부 선수들이었다. 그는 "중3이었던 2015년 9월 서울대 야구부와 여자야구 대표팀이 서울 고척스카이돔 개장 경기를 치렀다. 그때 공부도 잘하는 학생들이 야구까지 잘하는 것을 보고 서울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고 전했다. 당시 서울대 야구부가 여자야구 대표팀을 8-4로 이겼다.

한창 야구에 전념했던 김라경의 학교 성적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전체 250명 중 120등 정도였다. 그러나 서울대 진학을 위해 공부와 야구를 병행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여성야구팀 서울 후라와 대표팀 훈련을 하면서 틈틈이 공부했다. 김라경은 "마음 먹고 공부하려고 보니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무조건 외우고 또 외웠다. 선생님들에게 묻고 또 물었다. 선생님들이 '라경이 또 왔어?'라고 말할 정도였다"며 웃었다.

훈련으로 학원을 다닐 수가 없었던 그는 시합기간 차로 이동할 때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하루에 3시간 기술훈련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고, 나머지 시간을 전부 공부에 할애했다. 하루에 3~4시간만 잤다. 시합에 나갈 때는 휴대용 책상까지 가지고 다녔다. 그 결과 고3때 1등급을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에서 열린 여자야구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김라경은 "어렸을 때부터 야구해서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았다. 공부하다 힘들면 밖에서 뛰고 왔다. 땀을 흠뻑 흘리면 정신이 확 들어 공부가 더 잘됐다"면서 "보통 사람들은 '운동하니까 당연히 공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운동해서 공부를 잘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의 서울대 합격 도우미는 오빠 김병근이었다. 김라경은 "오빠가 독서실에 데려다줬다. 야구 지도자를 꿈꾸는 오빠 덕분에 야구도 많이 늘었다. 그래서 1년 사이 구속도 더 늘었다"고 전했다.

여자야구 대표팀 김라경(가운데)과 한화 선수 출신 오빠 김병근(왼쪽). 오른쪽은 정민철 한화 단장. [사진 김라경 SNS]

여자야구 대표팀 김라경(가운데)과 한화 선수 출신 오빠 김병근(왼쪽). 오른쪽은 정민철 한화 단장. [사진 김라경 SNS]

이제 김라경의 꿈은 서울대 야구부에 들어가는 것이다. 만약 김라경이 서울대 야구부에 들어간다면 1977년 서울대 야구부 창단 이후 최초의 여자 선수가 된다. 김라경은 "다른 대학 야구부는 프로 지망 선수들이 많다 보니, 시합에 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서울대 야구부에선 공식 경기에 자주 나가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김라경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저는 계속 개척하는 위치에 서 있어요. 선례가 없으니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저 좋아하는 야구를 계속 하는 것만 생각합니다." 김라경의 한국 여자야구 개척사는 계속 새로 쓰여지고 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