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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액 내고 건강검진, 무제한 술·커피…631조원 시장, 진격의 ‘구독 경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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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5호 06면

전통산업이 ICT 만났을 때

현대차는 올해 초 차량 구독 상품인 ‘현대 셀렉션’을 선보였다. [사진 현대차]

현대차는 올해 초 차량 구독 상품인 ‘현대 셀렉션’을 선보였다. [사진 현대차]

구독(購讀)은 과거 책이나 신문을 사서 읽는다는 의미로 쓰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월정액을 내고 정기적으로 특정 상품 혹은 서비스를 사용하는 행위 전체를 뜻하는 단어로 외연이 확대됐다. 산업 현장에서는 이를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라고 부른다. 사실 구독 자체는 전통 산업이다. 여기에 새로운 산업인 정보통신기술(ICT)이 접목하면서 세계 경제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송용주 대신증권 연구위원은 “구독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산업에서도 구독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며 “머지않아 산업계 전반의 새로운 유통 트렌드로 자리를 잡을 것 같다”고 말했다.

넷플릭스가 불 댕긴 구독 서비스 #식음료·생필품·의료 등 전방위 확산 #제품→서비스, 보유→이용 변화 #업체선 소비자 묶어두고 안정 운영 #경쟁 심화 땐 ‘제 살 깎아 먹기’ 우려

구독 서비스가 최근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구독경제지수(Subscription Economy Index)는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이 지수는 미국의 결제·소프트웨어 기업이자 구독경제 창시 기업인 주오라가 개발한 것으로, 구독 서비스의 증감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지표다. 이 지수에 포함된 기업의 매출액은 2012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연평균 18.2% 상승했다. 이 기간 구독 서비스 매출 성장률도 18.2%로, 미국의 S&P500 지수의 매출 성장률(3.6%)과 미국 소매 매출 인덱스 성장률 3.2%보다 5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신규 구독 가입자 순증가율은 연평균 15.4%를 기록 중이다.

1인 가구 겨냥 생필품·녹차 정기 배송도

미국의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도 미국 소매 업체의 구독 서비스 기반 매출 규모가 2011년 5700만 달러에서 2018년 3월 기준 29억 달러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스위스의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는 내년 전 세계의 구독경제 시장이 5300억 달러(약 63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구독 서비스가 가장 잘 발달한 곳은 미국과 일본이다. 미국에는 구독 서비스의 대명사가 된 넷플릭스뿐 아니라 각양각색의 구독 서비스가 존재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병원 포워드는 올 하반기 월 149달러(약 17만7000원)에 24시간 건강검진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선보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에릭 슈미트 전 구글 회장과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닷컴 최고경영자 등 IT 업계의 거물이 이 병원에 1억1000만 달러(약 1310억 원)를 투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세계 2위 시장인 일본에서는 최근 먹는 것과 관련한 구독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도쿄의 술집체인인 유유는 월 3000엔(약 3만2700원)만 내면 술을 무제한 마실 수 있다. 도쿄의 커피체인 커피 마피아도 월 3000엔에 커피를 무제한 제공하고 있다.

관련 시장이 크지 않지만 국내에서도 구독 서비스가 점차 확대하고 있다. 국내에서 인기인 구독 서비스는 대개 1인 가구를 겨냥한 생필품(셔츠·양말·면도날 등)을 정기 배송하는 형태다. 매번 구입하거나 세탁하는 데 번거로움을 느끼는 1인 가구를 겨냥한 것이다. 그림과 차(茶) 구독 서비스도 등장했다. 아모레퍼시픽의 구독 서비스 ‘다다일상’은 매달 추천 차와 다구(茶具) 등을 보내준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접목한 구독 서비스도 등장했다. 미국의 속옷회사인 아도르 미는 AI를 통해 소비자의 취향을 분석한 후 각 소비자에 알맞은 속옷을 정기 배송하고 있다. KT는 AI가 소비자의 얼굴 표정을 분석해 감정 상태에 따른 최적의 콘텐트를 추천하는 기능을 갖춘 온라인동영상제공서비스(OTT) 서비스를 시작했다. 전호겸 고려대 회사법센터 연구원은 “빅데이터를 모으는 과정에서 적절한 고객 경험 솔루션을 찾는 일은 구독 서비스에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사용자 경험관리에 기반을 둔 새로운 구독 서비스 모델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구독 서비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정보통신기술 발전으로 디지털 시대가 활짝 열린 덕분이다. 넷플릭스는 수만 개가 넘는 동영상 콘텐트를 확보한 후 소비자에게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이 뒷받침하지 않았다면 서비스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다. 소비 패턴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소비 트렌드가 ‘제품’보다는 ‘서비스’로 옮겨가면서 구독경제 확산의 불을 지폈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과거에는 ‘자동차’라는 제품 자체였다면, 이제는 자동차가 주는 ‘운송 서비스’라는 얘기다.

“단선형 가치사슬서 고객 지속 교류형 이동”

주오라의 창업자 티엔 추오는 “구독 서비스는 사업 모델을 제품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전환한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경제성’도 한몫하고 있다. 넷플릭스만 해도 소비자가 각 영상을 따로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게 수만 개의 콘텐트를 볼 수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매달 구독료를 받아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고, 반복 구매 덕에 소비자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Lock in 효과). 여기에 1인 가구의 증가와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1981∼96년생)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구독경제 판이 커지고 있다. 구독 서비스가 확산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OTT 시장은 이미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쟁이 심화하면 ‘제 살 깎아 먹기’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산업계는 구독 서비스의 ‘확장성’이 커 앞으로 모든 산업으로 확대할 것으로 내다본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인 가트너는 2023년에 전 세계 기업의 75%가 구독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송 연구위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인 지금은 공급자가 일방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선형의 가치사슬에서 벗어나 소비자와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가치사슬로 이동하고 있다”며 “고객 취향 파악이 용이한 구독 서비스가 확산할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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