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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정호의 문화난장

김홍도의 외침 “그림에는 신분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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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전기작가 이충렬의 신간 『천년의 화가-김홍도』를 읽는데 문뜩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2002)이 떠올랐다. 조선 후기 화단을 누빈 오원(吾園)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선배 화가인 단원(檀園) 김홍도, 혜원(蕙園) 신윤복을 따라 ‘나도 원’이라는 뜻의 ‘오원’을 호로 사용한 장승업의 일화 때문이 아니다. 단원의 60년 일생을 훑는 전기도 영화를 찍듯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책에 나타난 장면 장면에 카메라 앵글을 맞추면 예술영화 한 편이 완성될 것 같다.

풍속화가 단원의 참모습 #그는 왜 민초들을 그렸나 #60년 화업 정리한 책 나와 #한국 전기문학 공백 메워

책 첫머리부터 그렇다. 현장감이 넘친다. ‘(안산) 성포리 앞바다 물때는 이른 아침과 오후였다. 밀물을 따라 포구 가까이 왔던 물고기는 썰물을 타고 나가다 촘촘히 박힌 싸리나무 어살에 걸려 돌아가지 못했다. (중략) 성포리 남정네들은 어살에 걸려 펄떡이는 민어·농어·병어·전어·준치·밴댕이를 광주리에 담으며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바로 어부들 노래가 이어진다. ‘고기들이 걸렸구나 어~야~디야~/어~야~디야~ 어~기~야~디야~에~헤~.’ 안산과 가까운 시흥 향토민요 가사집에 나오는 곡이다.

단원 김홍도가 고향 바닷가 풍경을 그린 ‘어살’(부분). 이충렬 작가는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을 뒤지며 단원의 감춰진 삶을 복원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단원 김홍도가 고향 바닷가 풍경을 그린 ‘어살’(부분). 이충렬 작가는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을 뒤지며 단원의 감춰진 삶을 복원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책 마지막도 이 노래로 끝난다. 죽음을 앞둔 단원의 귀에 성포리 풍어 가락이 들려온다. 이 작가는 이렇게 마감했다. ‘김홍도는 가쁜 숨을 내쉬며 아들에게 물었다. 노을이 아직 바다 위에 있느냐고. 아들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성포리는 이씨가 단원의 출생지로 새로 찾아낸 장소다. 김홍도가 태어난 곳을 놓고 학계에선 서울설·안산설이 맞섰는데, 이번에 이씨는 옛 문헌과 지도, 전문가 의견 등을 취합해 단원의 아호 ‘서호(西湖)’가 성포리 앞바다의 별칭이며, ‘단원’ 또한 성포리 뒷산 노적봉 기슭의 박달나무 숲에서 비롯했다고 밝혀냈다.

단원은 실제로 어살(강·바다 등에 설치한 나무 그물) 그림을 남겼다. 보물 제527호 『단원풍속도첩』에 나온다. 이 작가는 단원이 어린 시절 성포리 기억을 화폭에 옮긴 것으로 보고 있다. 성포리는 단원이 스승 강세황 지인의 부탁을 받고 그린 8폭 병풍에도 등장한다. 아낙네들이 물고기·소금 등을 팔러 나가는 그림이다. 여기에 강세황은 이런 글을 붙였다. ‘방게·새우·소금을 광주리와 항아리에 가득 넣어서 갯가에서 새벽에 출발한다. 그림을 펼치니 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듯하다.’

이번 전기에는 ‘인간 김홍도’가 넘실댄다. 우리가 몰랐던 단원의 숨은 얘기가 되살아난다. 일례도 단원은 1776년 2월 울산 감목관(監牧官)에 임명됐다. 각 시도에 있는 말을 기르고 지키는 종6품 벼슬이다. 한양에서 천 리나 떨어진, 유배지 비슷한 곳이었지만 단원의 기개는 꺾이지 않았다. 그는 목장 주변을 돌며 산 공부를 했다. 말에 편자를 박는 그림, 대장장이가 쇠를 두들기는 그림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단원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소나무 아래 호랑이 그림도 마찬가지다. 민초와 부대끼며 체험한 하나하나가 이른바 풍속화로 승화됐다. 단원을 공부한 기존 미술사가들이 거의 주목하지 않은 대목이다.

선비의 자취를 담은 ‘포의풍류도’.

선비의 자취를 담은 ‘포의풍류도’.

단원의 부끄러운 이면도 드러난다. 영조 어진(御眞·왕의 초상화)을 그린 공로로 1773년 궁중의 고기·소금 등을 관장하는 자리에 처음 오른 단원은 넉 달 만에 파직되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 사서삼경 중 두 책을 읽고 백성을 다스리는 방책을 논하는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즉 삼책불통(三冊不通)이란 최악의 성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 중년 이후 단원을 괴롭힌 천식은 1781년 한겨울 한강 얼음을 채취·보존하는 동빙고 관직에 올랐을 때 걸렸다는 사실도 새롭다. 그림 해설 차원이 아닌 그림과 화가, 화가와 시대가 가로세로로 엮이는 장편 드라마쯤 된다.

현재 내려오는 단원의 그림은 약 350점에 이른다. 이씨는 “10여 년 전기를 구상해 3년 전부터 자료를 본격적으로 모았다. 350점 모두 머릿속에 남아 있고, 이번에 100여 점을 도판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초등학생도 아는, 반면 전문가도 잘 모르는 단원의 참모습을 복원한 작가의 노고가 눈에 띈다. 한국 출판계의 취약지대인 전기문학의 또 다른 성취임이 틀림없다.

이씨는 전형필·최순우·김환기 등 한국미 개척자를 추적해 왔다. 그의 근기(根氣)에 박수를 보낸다. 다음엔 신윤복에 도전한다 하니 이 또한 반갑다. 무엇보다 중인 출신 단원이 희구한 세상, 즉 “그림에는 신분이 없다” “사람의 마음과 통하는 그림”에서 예술의 존재 이유를 숙고해본다. 역시 붓은 칼보다 강하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