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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인공지능학과 개설 “대학 서열 우리가 바꾼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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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대학의 길, 총장이 답하다

국내대학 최초로 학부에 인공지능학과를 개설한 가천대의 이길여 총장은 5일 ’AI 교육을 전교생에게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김상선 기자

국내대학 최초로 학부에 인공지능학과를 개설한 가천대의 이길여 총장은 5일 ’AI 교육을 전교생에게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김상선 기자

가천대는 지난달 발표된 ‘2019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29위에 올랐다. 2년 만에 10계단 상승했다(2017년 39위). 2012년 가천의대·가천길대·경원대·경원전문대를 통합해 새로 출범했을 때, 국내 최초인 ‘4개 대학 통합’의 성공을 예견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길여 가천대 총장 #2012년 4개대 통합, 새 출발 #SW교육이 전교생 필수교양 #팀 활동 기반 ‘P학기제’ 첫 도입

하지만 통합을 계기로 가천대는 교수 500여 명을 신규 채용하는 등 교육여건을 대폭 개선했다. 그 결과 논문의 질 등 연구 경쟁력이 높아졌고, 취업률 개선 등 교육 성과도 이어졌다.

5일 경기도 성남의 글로벌캠퍼스에서 만난 이길여 총장은 가천대를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대학인 동시에 가장 크게 성장할 대학”이라고 소개했다. 벤처의 산실 강남 테헤란밸리, 혁신산업의 상징인 판교 테크노밸리와 가깝다는 이점을 활용해 산학협력을 활성화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그는 “대학 서열은 변하지 않는다고들 말하지만, 가천대가 이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학부에 인공지능(AI)학과를 신설했다.
“첫 신입생 50명을 뽑고 있다. 수시에서 18.2대 1이란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교수진도 커리큘럼도 모두 준비됐다. 1·2학년엔 코딩·수학 등 AI의 기초를 다진 뒤 3·4학년엔 자연어 처리, 로봇공학, 데이터과학, 딥러닝 등의 심화과정을 배운다. 산업체 인턴, 기업과의 프로젝트와 같은 현장감 있는 교육으로 전문가를 양성할 것이다.”
인공지능에 관심 있어도 학과 개설, 교수 초빙에 어려움을 겪는 대학이 많다.
“우린 교수 초빙, 정원 확보 모두 순조로웠다. 미리 준비했기 때문이다. 가천대는 2002년 국내 최초로 소프트웨어 단대를 설립했고 2010년 소프트웨어학과를 개설했다. AI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란 전망에 맞춰 AI 전공 교수를 꾸준히 모셔왔다. 현재 5명인데, 빅데이터·사물인터넷 교수 5명을 추가로 초빙하고 있다. 학과를 신설하려면 신입생 정원만큼 다른 학과 정원을 줄여야 한다. 다른 대학이라면 반발이 생길 것 같지만 가천대는 그런 게 없다. 미래를 위한 대학 혁신에 구성원 모두 공감하기 때문이다.”
가천대 길병원은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의사’ 왓슨(Watson)을 도입했다.
“2016년 도입했는데, 올 10월까지 진료 환자가 1191명이다. 왓슨은 의대 교육에도 활용한다. 최근엔 정형외과 인공지능 ‘나비오(Navio)’ 로봇도 국내 최초로 도입했고, 무릎 인공관절 치환술에 성공했다. 가천대와 길병원은 의료분야 AI를 선도하는 곳이 될 것이다.”
전공 학생만 AI를 배우나.
“올 2학기부터 교양과목에 ‘지능형정보기술(AI-Big Data)’란 강의를 신설했다. 경영·금융수학·의예·간호학 등 7개 학과 627명이 수강 중이다. 물론 더 확대할 것이다. 4년 전부터 가천대는 소프트웨어교육을 전교생의 필수교양으로 만들었다. 기초과목만 총 8과목, 80강좌다. 올해부터는 IT인증제를 도입해 계열별로 4~8학점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이 총장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1958년부터 산부인과 병원을 운영했다. ‘여자는 배울 필요 없다’는 생각이 퍼져있던 시절 ‘남과는 달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부에 전념하고 의사가 됐다고 했다. 첨단 기술에 대한 관심은 병원을 운영하면서부터 생겼다.

“오로지 손과 귀로만 진찰하던 1970년대 초반 집 몇 채 값을 주고 초음파 기기를 샀다. 초음파로 산모에게 아이 심장 소리를 들려줬더니 어찌나 기뻐하던지. 다음날은 시부모와 함께, 이틀 뒤엔 동네 주민들과 함께 다시 오더라.” 의사가 환자를 위해 첨단 기술을 활용한 것처럼, 대학이 학생을 위해 시대 흐름에 맞는 교육을 제공하는 건 당연하다는 얘기다.

AI만 배운다고 미래 인재가 되는 건 아니다.
“물론이다. 4차 산업혁명 교육은 기계와 AI가 할 수 없는 사람의 고유 역량을 키우는 데 있다. 창의력, 비판적 사고, 협업 능력이 중요한데, 이런 역량을 키우려면 ‘배우는 방법’부터 가르쳐야 한다. 올해부터 강화도의 ‘가천창의팩토리’에서 전체 신입생을 대상으로 무박 2일 ‘창의캠프(NTree)’를 운영하고 있다.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을 듣고 8명씩 팀을 구성해 도전적인 주제를 놓고 해결책을 찾도록 했다. 나도 지켜봤는데, 밤을 새우면서 고민하고 토론하는 학생들을 보니 흐뭇했다.”
구태의연한 대학 교육을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공감한다. 가천대는 올 2학기부터 팀 활동 프로젝트 기반의 ‘P학기제’를 도입했다. 58개 학과 중 21개 학과에서 운영하는데, 전체 16주 수업 중 12주는 기존 방식대로 하고 4주는 배운 지식을 활용해 프로젝트나 현장실습을 한다. 학과 단위를 넘어서 학교 차원의 프로젝트 학기제 도입은 국내 최초다.”
교육 혁신엔 교수 역할이 중요하다.
“교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학생에 대한 사랑이다.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들 하는데, 왜 제자는 그렇다는 말을 하지 않는지 아쉽다. 교수에겐 제자는 자식과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르치는 데도 본인의 연구에도 열정을 다할 것이다.”
국내 대학이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
“학령인구가 줄고 등록금 동결 상황이 10년을 넘겨 재정난이 심하다. 대학 졸업자와 사회 수요의 ‘미스매치’로 취업도 악화됐다. 대학의 위기이자 국가의 위기다. 4차 산업혁명을 대학이 수동적으로 따라갈 게 아니라 낡은 교육의 틀을 부수고 혁신해야 한다. 정부도 규제 완화, 재정 지원으로 대학을 도와야 한다.”

천인성 교육팀장, 박지영 인턴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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