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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 "아프간 2383조 퍼부은 美···질 전쟁 알면서 국민 속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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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에 아픈 상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아프간 군 기지를 깜짝 방문해 군 병력 감축 계획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에 아픈 상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아프간 군 기지를 깜짝 방문해 군 병력 감축 계획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이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킨 뒤 쓴 돈은 최소 2조 달러(약 2383조 원)로 추정된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전쟁임을 알면서도, 국민 혈세를 대규모로 쏟아부었고, 이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계속해왔다는 폭로가 9일(현지시간) 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가 3년 넘게 법정 공방을 거치며 탐사 보도를 해온 결과다.

워싱턴포스트 3년 탐사 보도로 드러난 전말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막대한 재정적 부담 뿐 아니라 인명도 다수 희생시켰다. 아프간 병력 약 6만4000여명에 미군 2300여명을 포함해 올해 10월 기준 15만7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수는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WP 보도에 의하면 이들은 미국 정부의 거짓말에 의해 헛된 희생을 한 셈이 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WP 보도에 따르면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밑에서 일했던 네이비실(해군 특수부대) 출신 제프리 에거스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돈을 들여 우리가 얻은 게 뭔가?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었나. 아프간에서 미국이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 생각하면 오사마 빈 라덴이 무덤에서 웃을 거다.”  

이같은 증언은 미 정부의 아프간 재건 특별감사관실(SIGAR)의 기밀 보고서에서 나왔다. 약 2000 페이지에 달하는 이 기밀 보고서엔 아프간 전쟁에 관여했던 핵심 인사들을 포함한 400여명을 인터뷰한 내용이 담겼다. 대부분이 아프간 전쟁은 실패라고 인정하는 내용이다.

WP는 2016년 이 보고서의 존재를 안 뒤 공개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후 3년에 걸쳐 정보의 자유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에 근거해 정보 공개 소송을 했다. WP가 승소했으나 정부 측은 꼼수를 썼다. 보고서에 기재된 인터뷰 대상자들의 이름을 대부분 지우고 문제가 덜 되는 62명의 이름만 공개했다. WP는 그러나 정황상 증거 등을 기반으로 추가 취재를 했고, 나머지 인물들을 직접 찾아 인터뷰했다.

그 중 한 명이 더글러스 루트 전 3성 장군이다. 부시 뿐 아니라 오바마 정부에서 아프간 전쟁을 담당하는 백악관 참모로 일했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아프간에 대한 근본적 지식도 없었다.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우리도 몰랐다. 우리가 아프간에 있는 목적이 뭔지에 대해 다들 오리무중이었다.”  

WP는 더 큰 문제는 미국 정부가 통계 조작 등의 방법으로 자국민들을 호도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미군 지휘부에서 고문역을 맡았던 육군 대령 밥 크롤리는 “아프간 전쟁에 대해 국민들에게 가능한 최고의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모든 데이터는 조작(altered)됐다”며 “설문조사마저도 전혀 믿을 수 없었는데도(totally unreliable) 미국이 하는 일은 옳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조작됐다”고 SIGAR 보고서에서 털어놨다. SIGAR 보고서 기획 및 작성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존 소프코 감사관은 “미국인들이 계속 속고 있었다는 결과”라고 말했다.

2011년 아프간 전투 현장에서 미군 병력이 견인포(howitzer artillery)를 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11년 아프간 전투 현장에서 미군 병력이 견인포(howitzer artillery)를 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WP의 보도에 따르면 아프간 전쟁 관련 당국자들은 미국 국민을 속인 건 정부와 의회의 관료주의라고 비판했다. 더글러스 루트 장군은 “의회와 국방부ㆍ국무부의 관료주의로 인한 시스템 붕괴로 미군이 목숨을 잃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2001년 9ㆍ11 테러를 당한 뒤 테러의 주범인 과격 이슬람 무장단체 알카에다를 소탕하겠다며 그해 아프간전을 일으켰다. 미군 사망자는 2300여명으로 아프간 군(6만4124명)이나 알카에다ㆍ탈레반(4만2100여명)보다 훨씬 적지만 부상자는 20만589명에 달한다. 지금도 1만3000명 넘는 미군이 주둔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추석 격인 추수감사절이었던 지난달 28일 아프간을 깜짝 방문해 주둔 병력을 8600명선으로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아프간 전쟁이 발발한지 18년이 지났지만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아프간 곳곳에선 폭탄 테러도 계속된다. 위 사진은 지난해 아프간 수도 카불의 폭탄 테러 현장. [로이터=연합뉴스]

아프간 전쟁이 발발한지 18년이 지났지만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아프간 곳곳에선 폭탄 테러도 계속된다. 위 사진은 지난해 아프간 수도 카불의 폭탄 테러 현장. [로이터=연합뉴스]

WP는 “18년간 미국 관료들은 아프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자명한 증거들을 숨겨가면서 장미빛 전망들을 늘어놓았다”고 비판하며 기사의 제목을 ‘진실과의 전쟁(At War With the Truth)’으로 달았다.

이 보도는 미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와 같은 주요 경쟁지도 WP를 인용해 보도에 나섰다. NYT는 아프간 전에 든 비용이 최소 2조 달러에 달하는데도 현재 아프간 병력은 자립이 요원한 상태라고 비판했다. 미국이 아프간 경제발전지원금으로 240억 달러 이상을 투입했으나 무용지물이라고 NYT는 전했다. 현지 관료 시스템 붕괴와 만연한 부패 등으로 인해 아프간 국민 넷 중 한 명은 무직 상태로 빈곤이 여전한 문제라고 NYT는 덧붙였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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