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의혹을 둘러싼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다. 중앙일보는 지난 6·7일 청와대의 하명수사, 선거개입 수사를 주장하는 김기현(60) 전 울산시장과 이를 야당과 검찰의 터무니없는 공격이라고 맞받아치는 황운하(57) 대전지방경찰청장(전 울산지방경찰청장)을 직접 만났다. 먼저 의혹을 제기한 김 전 시장의 인터뷰를 싣는다. 인터뷰는 7일 울산의 한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김 전 시장은 제17·18·19대 국회의원과 울산시장(2014년 7월~2018년 6월)을 지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송철호 울산시장과 경쟁해 득표율 약 13%포인트 차로 낙선했다. 울산경찰청은 선거를 앞두고 김 전 시장 측근 비리 의혹을 수사했다. 김 전 시장은 당시 황운하 청장이 지휘한 ‘김기현 측근 비리 수사’가 청와대에서 하명 받은 것으로 선거 개입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시장 측은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울산지검에 황 청장을 고소·고발했고 최근 이 사건이 서울중앙지검에 이첩됐다.
- ‘김기현 비리 사건’ 수사가 청와대 하명수사라고 보는 근거는.
- 황운하라는 사람이 오자마자 김기현 뒷조사를 한다고 들었다. 간부 회의에선 ‘문재인 대통령에게 은혜를 입었다’는 얘길 했다더라. 5가지 리스트를 들고 와 청와대 하명을 받고 수사한다는 말도 2017년 하반기에 들었다. 황 청장은 청와대와 교감이 없었다지만 믿을 수 없다. 여권 핵심 인사가 엄지손가락을 펴며 ‘여기’서 챙긴다고 했다지 않나. 또 홍익표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첩보 문건을 공개하며 김 전 시장 측근들의 토착 업체와의 유착 의혹 등 3개 파트로 내 주변 비리 의혹이 정리돼 있다고 했다. 한 사람에게 제보받아 만든 문건이 아니라는 얘기다. 여러 사람에게 수집해 3가지로 정리까지 했다. 자신들이 죄를 자백한 셈이다.
- 황 청장은 김기현이 아니라 토착 비리를 수사한 거라고 한다.
- 토착 비리 조사 대상이 김기현밖에 없나. 황 청장 재직 중 울산에서 토착 비리 이 건 외에 단 한 건이라도 수사한 적 있나. 지능수사대를 대폭 늘려 한 게 뭐 있나. 내가 무슨 토착 비리를 했나. 죄 없는 사람 잡아놓고 본인이 혐의 있다면 있는 건가. 무혐의 받은 것도 받은 거지만 정치후원금? 난 그것도 무죄 나올 것으로 본다. 경찰이 울산시청을 압수수색한 날이 2018년 3월 16일로 내가 시장 후보로 공천 확정된 날이다. 이 날짜를 문제 삼자 경찰이 영장은 법원에서 발부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는데 기밀을 요구하는 압수수색 영장은 아침에 신청하면 보통 당일 나온다. 미리 계획을 세운 거로 보고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울산청이 수사한 김 전 시장 측근 비리는 크게 3가지였다. 이 가운데 박 전 실장이 특정 레미콘 업체 선정을 강요한 혐의, 김 전 시장 동생이 30억원 용역계약서를 작성한 뒤 사업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는 검찰이 불기소 처분했다. 김 전 시장 인척을 포함한 6명이 김 전 시장 측에 편법으로 후원금을 제공한 사건은 재판 중이다. 경찰은 두 건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잘못됐다며 내부적으로 수십장에 이르는 반박 의견서를 작성했다.
- 황 청장이 ‘김기현을 피의자로 조사할 수 있었지만, 소환 안 했다며 고마워해야 한다”고 했는데.
- 고발당했다고 피의자가 되나. 혐의가 인정할만한 상당한 증거가 나와야지. 법도 모른다. 그러면 선거 끝난 뒤에는 왜 소환 안 했나. 입건조차 못 했지. 황 청장 말대로 피의자로 조사할 수 있었는데 봐준 거면 직무유기 아닌가. 고마워하라고? 그게 경찰이 할 얘긴가.
- 이번 사건이 검찰의 수사권 남용, 야당의 현 정권 죽이기라는 주장도 있다.
- 황당하기 짝이 없다. 본인들이 임명한 검찰총장 아닌가.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부터 해서 죄가 드러나고 있지 않나. 조국(전 법무부 장관)·백원우(전 청와대 민정비서관)를 넘는 그 이상의 배후가 있을 거다. 우리가 생각하는, 누굴 말하는지는 알아서 판단해라. 청와대가 다급하니 건당 해명을 하는데 송 부시장과 계속 어긋나지 않나. 또 청와대는 특감반원 2명이 고래고기 사건을 조사하러 울산에 갔다고 했는데 그러면 형사과장(고래고기 사건 수사책임자)은 왜 안 만났나. 김기현 사건 수사책임자인 수사과장을 만나 고래고기 얘기를 했다? 경찰대 동기라서 만났다? 동기회 하러 갔나.
지난해 1월 특감반원이 울산에 갔을 당시 울산청 수사과장이던 심모 총경은 중앙일보에 “경찰대 동기 정모 행정관이 울산에 온다고 연락 와 사무실에서 10분가량 만났다”며 “고래고기에 대해서만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 청와대에서 특감반원이 왔다는 얘기를 당시 들었나.
- 소문이 나니까 며칠 뒤 들었다. 뭘 조사하고 갔다는데 김기현 사건 담당자와 얘기하고 갔다고 하더라.
- 왜 시청 압수수색으로 논란이 됐을 때 밝히지 않았나.
- 그때 내 주변 70~80명이 조사를 받았다. 공무원들도 조사받으러 다녔다. 날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시장 업무도 봐야 했다. 언론·수사 대응도 안되는 상황인데 그런 걸 세세하게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주변에서 자살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했다. 언론·권력이 한쪽 편이고 나 혼자였다. 당시를 떠올리면, 선거는 떨어질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육십 평생의 명예가 다 짓 밝힌 게 너무 아팠다. 국가 권력이 횡포를 부릴 때 한 개인이 얼마나 무방비 상태로 당하는지 안 겪어보면 모른다. 내가 눈 뜨고 있는 한 끝까지 책임을 물을 거다.
김 전 시장 측은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고 “2018년 3월 16일 경찰이 시장 비서실 등을 압수수색했는데 그날 영장에 등장한 ‘악의적 진술’을 한 인물이 송 부시장임이 드러났다”며 “송 부시장은 권력형 선거부정 사건과 관련해 사실이 아닌 진술을 한 적이 있는지 밝히라”고 했다. 이틀 뒤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 김 전 시장 관련 비위 첩보를 제보한 인물이 송 부시장임이 확인됐다.
- 송병기 경제부시장과는 어떤 관계인가.
- 그냥 계약직 공무원이었다. 업무 외에 개인적으로 만날 일이 없다. 송 부시장이 울산발전연구원 공공투자센터장일 때 성과가 없어 답답했다.
- 송철호 울산시장은 송 부시장이 제보자인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 조국과 비슷하다. 조국 역시 부인이 했으니까 몰랐다고 하지 않나. 그럼 송 시장이 왜 송 부시장을 1등 공신으로 책봉해 경제부시장에 발탁했나. 송 시장이 주도하고 꼬리를 끊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 지난 2일 ‘선거무효 소송’ 기자회견을 했다. 황 청장 사건의 서울중앙지검 이첩 사실은 언제 알았나.
- 하루 전엔가 소문으로 들었다. 11월 26일 이첩했는데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내용이 드러나 기자회견을 했다. 미리 계획한 건 아니다. 시장 선거 진상규명을 준비했지만 쉽지 않았다. 내 손으로 책임을 묻기 위해 내년에 국회에 들어가려는 거다. 당(자유한국당)에서도 핵심 이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철저히 밝히라”고 쓰지 않았나. 황 대표와 자주 만나 이 건과 다른 것들을 의논한다. 한국당은 나한테 감사봉투를줘야 하는 것 아닌가.
- 정치활동 계획은.
- 울산에서 총선 출마할 계획이다. 선거구는 모르겠다. 대선도 바라보고 있다. 지난 시장 선거 때부터 밝혀왔다. 이번 사건으로 인생이 반전된 기분이다. 상상도 못 했는데 태극기 부대 쪽에서 김기현 지지 움직임이 있다더라. 그쪽은 우호세력이고 주력은 중도좌파와 중도우파다. 벌써 접촉하면서 여러 얘기를 하고 있다.
울산=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