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조심 감춘 내 부끄러움, 이제 조금씩 드러내 볼까

중앙일보

입력 2019.12.09 15:00

업데이트 2019.12.09 15:50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13)

오늘도 평범한 하루가 지나간다. 이렇게 평범한 나를 왜 남들은 특별하게 바라보는 걸까? 몇 달 전엔 KBS ‘인간극장’에서 연락이 왔다. 위탁가족으로 사는 모습이 프로그램의 취지에 잘 맞는다며, 조심스럽게 제안을 해왔다.

‘내가 그렇게 특별해 보이나?’
그때 다시 생각했다. 아직 우리나라엔 ‘가정위탁제도’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나는 위탁부모로 살고 있다. 그러니까 특별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낱낱이 보여주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은지가 그린 가족. [사진 배은희]

은지가 그린 가족. [사진 배은희]

나의 내밀한 부분과 은지의 일상이 한 편의 누드화처럼 그려질 것 같았다. 그건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테고, 그 후에 이어질 피드백도 각양각색일 것이다. 내가 그걸 감당한다고 해도 은지에게 그런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정중히, 거절한다는 답장을 보냈다. 관심은 고맙지만 내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뭘 하든 서로 맞아야지 한쪽만 좋다고 할 순 없으니까. 그렇게 정리하고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는데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제주도 신촌리에서 만세하는 은지. [사진 배은희]

제주도 신촌리에서 만세하는 은지. [사진 배은희]

제주 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제 속을 다 보여주기 때문

맑은 날이건

흐린 날이건

하늘을 고대로 담아내다가

때론

발톱을 세우고 으르렁거리며

물어뜯고, 할퀴고,

기어오르고,

치받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헤헤거리며

속살대며

제 속을 다 내어주기 때문.

-진진 「제주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시인의 말대로 제주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는 ‘제 속을 다 보여주기 때문’이다. 발톱을 세우고, 물고, 할퀴고, 헤헤거리고, 속살대는… 모두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날, 카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다가 조금 숙연해졌다.

‘그렇구나.’
나는 지금도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데. 뒷감당이 안 될 것 같은데. 그래서 미리 차단하고 거리를 두려고 하는데…. 이성적으론 어떻게 사는 게 바른 건지, 실수하더라도 시도해 보는 게 옳다는 걸 알면서도 내 속을 보이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그 간극이 때론 밀물처럼, 때론 썰물처럼 다가오며 철썩거린다.

남들은 나를 특별하게 보는데 정작 내 속은 평범하다 못해 부끄러운 부분도 있다. [사진 오지선]

남들은 나를 특별하게 보는데 정작 내 속은 평범하다 못해 부끄러운 부분도 있다. [사진 오지선]

위탁부모로 살면서, 내 속을 보여주는 게 가장 힘들었다. 남들은 나를 특별하게 바라보는데 정작 내 속은 평범하다 못해 부끄러운 부분도 있으니까. 그게 보인다면…. 그게 보인다면? 아름답기보다는 마음을 할퀴는 꼴이 되지 않을까? 스스로 조심하며 내 속을 감춘 이유다.

이제라도 조금씩 드러내 볼까? 그럼, 조금 달라질까? 맑은 날이건, 흐린 날이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연습이라도 해볼까? 다른 위탁부모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다. 이 땅에 사는 9천여 명의 위탁부모들 속이 사뭇 궁금해진다.

내일도 평범한 삶을 살 텐데…. 용기를 내볼까? 나부터.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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