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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히잡 쓰고 휠체어 농구…가정폭력 피해 22세 여성 웃음 되찾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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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휠체어 농구단이 연습하고 있다. 채인택 기자

여성 휠체어 농구단이 연습하고 있다. 채인택 기자

“앞으로 나가.” “슛.”

3일 세계 장애인의 날 현장 취재 #방글라데시 여성 장애인 농구단 #국가대표팀 코치가 자원 봉사 #국제적십자위·신체재활센터 협업

지난달 중순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서부 사바르 센터의 운동장. 여성 휠체어 농구단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휠체어 바퀴를 밀고 달리면서 농구 경기에 열중하는 선수들의 이마와 얼굴에는 구슬땀이 흘렀다. 휠체어와 머리에 쓴 히잡(이슬람권 여성들의 스카프), 그리고 긴 팔과 긴 바지 차림이 독특했지만 열기는 다른 농구단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지난달 중순 방글라데시의 비정부기구(NGO)인 ‘신체 재활센터(CRP)’의 운동장에서 목격한 여성 휠체어 농구단의 연습 장면이다. 1979년에 설립돼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는 CRP가 여성 장애인의 재활을 돕기 위해 운영하는 팀이다. 2016년 생긴 이 팀은 여성 패럴림픽 위원회도 없는 방글라데시에서 사실상 유일한 여성 휠체어 농구단이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CRP 본원에서 여성 휠체어 농구 선수인 라트나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채인택 기자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CRP 본원에서 여성 휠체어 농구 선수인 라트나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채인택 기자

휠체어 농구단 선수인 22살의 라트나는 4년 전 가정 폭력으로 지붕에서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됐다. 2015년 CRP에 와서 재활치료를 받다 휠체어 농구를 시작했다. 라트나는 “농구를 하면 행복하다”며 “올해 초 태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나 인도네시아·네팔 팀에 이긴 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휠체어 농구를 하면서 보다 넓은 세계를 보고 더 큰 꿈을 꾸게 됐다”며 “앞으로 화장품이나 의류 사업을 벌여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곳에선 방글라데시 국가대표 남자농구팀 코치인 와시프 알리가 자원봉사로 휠체어 농구팀을 지도하고 있었다. 알리는 “스포츠는 만국 공통의 언어”라며 “이를 통해 사람들이 기쁨을 얻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차토그람 신체재활센터(CRP)에서 로힝야 난민(왼쪽)과 방글라데시 현지 주민들이 나란히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채인택 기자

차토그람 신체재활센터(CRP)에서 로힝야 난민(왼쪽)과 방글라데시 현지 주민들이 나란히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채인택 기자

CRP는 1979년 12월 11일 영국 출신의 물리치료사 발레리 앤 테일러(75)가 세웠다. 그해 비영리 국제개발조직인 해외자원봉사단(VSO)의 단원으로 방글라데시에 도착한 테일러는 다카의 병원 창고에서 4명의 환자로 CRP를 시작, 현재 100병상 규모의 재활 전문병원으로 키웠다. CRP는 국제인도주의 기관인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와 협업으로 장애인 재활 사업을 펼친다. ICRC는 박애주의자 앙리 뒤낭이 156년 전인 1863년 설립해 현재 세계 80여 개 나라에서 활동한다.

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바자르 관구(광역행정구역)에 있는 쿠투팔롱 난민촌을 찾았다. 이곳에는 91년부터 이웃 미얀마 서부 라카인 이역에서 종족·종교 박해를 피해 국경을 넘어온 난민(라카인 이탈자 또는 로힝야인으로 부름) 61만3000여 명이 임시 거처에 몰려 산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쿠투팔롱은 지난 9월 세계 최대 난민촌이 됐다.

ICRC는 CRP센터를 통해 난민 장애인들의 재활을 돕고 있었다. 대나무와 비닐로 만든 임시 거처가 즐비한 난민촌의 좁은 비포장도로와 벽돌로 만든 포장도로가 울퉁불퉁하게 깔린 산길을 한참 달리자 산비탈에 작은 가게가 보였다. 과자·음료수와 함께 마시는 차를 만들어 파는 찻집 겸 구멍가게로 이 지역에서 흔한 생계 수단이다.

왼쪽 다리가 없는 가게 주인 자히드 투산(55)은 “미얀마에서 살 때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아 잃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국경을 건너 난민촌에 온 뒤 ICRC가 CRP와 손잡고 제공하는 맞춤형 의족을 받고 재활 훈련까지 받을 수 있었다. 투산은 “의족으로 보행이 가능해지자 독지가의 지원이 들어와 작은 가게를 열 수 있게 됐다”며 “내 다리로 걸을 수 있게 되니까 이젠 내 발로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서 난민촌의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한 또 다른 마을을 찾았다. 오물이 썩어가는 개울을 지나 나무다리를 건너고 비포장 산길을 한참 올라갔더니 대나무를 엮어 만든 작은 집이 나타났다. 어머니, 언니 3명, 남동생 1명과 함께 집에서 손님을 맞은 7세 소녀 사모라는 왼쪽 다리에 교정기를 차고 있었다. 선천적으로 발목이 휘어지는 내반족을 교정하기 위해서였다. 혼자서 서지도 걷지도 못했던 사모라는 ICRC의 도움으로 3개월 전 교정기를 착용하고 CRP센터에서 재활 훈련을 받은 뒤 이제는 혼자서 걷고 있었다. 사모라는 “올해 초등학교에 갈 나이인데 움직일 수 없어 입학하지 못했다”며 “내년에는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도 사귀고 싶다”고 말했다.

ICRC의 지원으로 운영하는 CRP 차토그람(과거 치타공으로 알려짐) 센터에선 라카인 탈출 난민과 방글라데시 지역 주민 장애인이 나란히 재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곳에서 지난해 난민 취재 도중 만났던 무함마드 알롬과 재회할 수 있었다. 알롬은 “미얀마에 살던 1991년 소요 사태로 양다리에 부상을 입었는데 상처가 덧나면서 이듬해 모두 잃었다”며 “기어서 국경을 넘어왔지만 난민촌에서 ICRC로부터 의족을 얻고 재활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재활치료실에서 의족을 착용하고 보행 연습을 하던 알롬은 “의족으로 재봉틀도 돌려 생업인 의류 수선도 하고 있다”며 “인생이 달라졌다”라고 말했다.

같은 재활치료실에선 쿠투팔롱 난민촌 근처 우키야 마을에 사는 방글라데시 주부 조후라 베굼이 한쪽 다리에 의족을 하고 걷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2년 전 사고로 다리를 잃은 그는 화장실도 자녀의 도움을 받고서야 겨우 갈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열흘 전 이곳에 와서 의족을 맞추고 재활 훈련을 받으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베굼은 “앞으로 혼자 화장실에 가는 건 물론 가사도 다시 하면서 집안에서 내 위치를 되찾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날 CRP 차토그람 센터에선 2명의 난민과 6명의 난민촌 인근 주민이 나란히 의족으로 보행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ICRC 콕스바자르 현장 사무소의 공보 담당 잠쉐돌 카림은 “난민촌은 물론 그 주변 지역까지 챙기면서 지역 주민과 난민을 함께 돌보는 것이 ICRC의 인도주의 활동 접근법”이라고 소개했다. ICRC 한국사무소의 박지해 공보관은 “난민과 그들을 받아들인 가난한 농촌 마을의 장애인들에게 복지와 재활 기회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숱한 사람의 헌신과 수많은 나라의 기부 덕분”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월 3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이었다.

다카·쿠투팔롱·차토그람(방글라데시)=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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