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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OECD '포용성장'은 소주성 새 '족보'가 될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열린 ‘노동시장 격차 완화와 소득주도성장’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열린 ‘노동시장 격차 완화와 소득주도성장’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문재인 정부 초반부터 '족보 논쟁'을 불러온 '소득주도성장론(소주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시한 '포용적 성장'에 이름을 얹을 채비를 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는 소주성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띈 정책이라고 설명한다. 홍장표 소주성특위 위원장은 지난 3일 '세계가 바라본 한국의 소득주도성장' 컨퍼런스 개회사에서 "나라별로 명칭·강조점은 다르지만, 일본·중국·유럽 등에서도 포용 성장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소주성, OECD '포용적 성장'과 같은 범주인가 

한국의 소주성을 OECD 등이 제시하는 '포용적 성장'과 같은 범주로 묶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슷한 면이 있긴 하지만, 같은 족보로 묶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포용적 성장은 일종의 '총론' 수준의 정책 담론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한 시장만능주의 극복, 소득 양극화 해소, 여성·노인·다문화 가족 등 사회적 약자 포용, 기후변화 대응 등 기존 경제 시스템이 간과한 가치들을 함께 안고 가자는 데서 출발했다. 목표가 같다고 같은 계보로 묶기에는 소주성의 접근 방식과 결과를 놓고 볼 때 의아한 점이 많다.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은 "계층 간 이동이 막히고 중산층 몰락 등 불평등 요인의 이해를 높이고자 포용성장 정책체계를 지난해 출범시켰다"며 "소외 계층과 낙후 지역에 투자하고, 기업 역동성을 높이고, 정부가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3가지 축을 기반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日 3%, 포르투갈 5%…한국만큼 최저임금 과속 안 해 

한국의 소주성은 OECD가 밝힌 포용적 성장 3가지 축과 얼마나 가까울까. 정부는 저소득층 소득을 늘리기 위해 2년간 최저임금을 29.1% 올렸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소외 계층인 영세 소상공인의 호주머니를 털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노동시장이란 '성 안' 사람에겐 일부 소득 증대 효과가 있었지만, '성 밖' 사람들은 취업 기회를 잃었다. 이 때문에 소주성특위가 지난 7월 공개한 여론 조사 결과, '내년 최저임금 동결'을 가장 강하게 요구한 계층은 임시·일용직(41%), 10인 이하 영세 사업장 종사자(44%)였다.

특위가 컨퍼런스에서 해외의 소주성 경험이라고 소개한 사례에서도 한국만큼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른 나라는 없었다. 일본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3%, 포르투갈은 5%였다. 준사이토 일본 국제기독교대 교수는 "일본의 아베노믹스는 통화·재정·투자증진 정책이 핵심이기 때문에 '임금 주도 성장' 정책이라 보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산층 몰락 못 막고 기업은 11개월째 투자 멈춰 

소주성은 중산층 몰락을 막지도 못했다. 기획재정부가 9월 발표한 통계에선 올해 2분기 중산층(중위소득 50~150% 가구) 비중은 지난해 60.2%에서 1.9%포인트 떨어진 58.3%를 기록,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자리 지표를 끌어올린 노인 일자리 사업도 근본적인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단기 정책이다. 최근 들어 저소득 노인 비중은 더욱 커지고 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를 분석하면 60세 이상 가구주 중 월 소득이 중위소득(2019년 2분기 기준 209만2000원)의 50% 미만인 저소득 가구는 올 2분기 45.8%에 달했다.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2분기(44.6%)보다 1.2%포인트 올랐다. 올해 3분기 이 비율은 47.4%로 더욱 올랐다.

기업 역동성도 보는 그대로다. 설비투자는 11개월 연속 마이너스 상태다. 그렇다고 정부가 국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지도 의문이다. 긍정적 지표만 내세우며 정부 정책을 '자화자찬'하기에 여념이 없다.

소주성, 국제적 담론에 숟가락 얹어선 곤란 

슬로건이나 정책 방향이 비슷하다고 같은 정책이 되지 않는다. '선한 의도', '좋은 말'만 가득 담은 총론이 아니라 현장에 녹아들어 포용적 성장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해 내야 한다. 그래야 소주성도 '한국형' 포용적 성장 정책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성장은 물론 분배 성과마저 내지 못하고 있는 정책을 국제적 담론에 숟가락을 얹으려 해선 곤란하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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