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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의 북극비사] 딱 20분만 해 뜬다…새해 첫 일출 1월22일에 보는 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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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롬쇠의 새해 첫 일출. 북위 70도에 있는데다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새해가 한참 지난 1월22일이 되어서야 극야가 끝나고 새해 첫 일출을 볼 수 있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트롬쇠의 새해 첫 일출. 북위 70도에 있는데다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새해가 한참 지난 1월22일이 되어서야 극야가 끝나고 새해 첫 일출을 볼 수 있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⑦ 트롬쇠의 끝나지 않은 북극 도전

노르웨이 북단, 북위 70도에 걸쳐있는 트롬쇠는 나의 첫 북극도시였다. 2012년 처음 그곳을 간 이후 거의 매년 회의참석을 위해 방문하게 된다. 그곳에 북극과 관련된 세계적인 기관들이 집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상 깊었던 장면 하나. 무겁고 심각한 북극문제를 논의하던 국제회의장에서 예고 없이 회의가 중단되고 화면에는 회의와 관계없는 낯선 바깥 풍경이 비친다. 참가자는 대부분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듯한 눈치다. 내가 이곳에서는 여전히 이방인임을 직감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시작되는 카운트다운. 그들이 새해 첫 해돋이를 맞이하는 방식이다. 새해 첫날 해가 뜨는 이른 시간에 무슨 국제회의를 하나 하겠지만 북위 70도에 위치하고 있는 북극도시 트롬쇠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트롬쇠는 11월 말부터 약 두 달간 해가 뜨지 않는 극야의 시간을 보낸다. 이론적으로 북위 70도라면 보통 1월15일경에 첫 일출현상이 생기지만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트롬쇠 시내 중심부에서는 1월22일이 되어야 시민들이 직접 눈으로 태양을 볼 수 있다. 일출이라 해도 중위도에 사는 우리가 보듯이 태양이 해수면을 뚫고 올라 하늘로 솟아오르는 장엄한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이날 이곳의 태양은 말 그대로 산등성이 사이로 오전 11시쯤 빼꼼히 얼굴만 살짝 내밀었다가 20여 분 뒤에는 다시 지표면 밑으로 사라져 버린다. 두 달 동안 태양을 기다린 이곳 사람들에게는 야속해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새해 첫 일출은 이곳 사람들과 회의 참석자들에게 여기가 북극권이고 이제 태양이 다시 돌아왔음을 알리는 성스러운 의식처럼 받아들여진다. 물론 태양이 없는 극야기간 동안에는 더 선명한 달빛과 별빛, 그리고 신비로운 오로라를 더 많이 감상할 수는 있겠지만, 온기 어린 빛이 한 줄기도 없었던 차갑고 긴 겨울이 이제 끝나가고 있음을 돌아온 태양이 알려준다. 트롬쇠의 오로라는 도시의 아름다운 풍광과 어울려  신비감이 더하다. 북위 90도인 북극점에서 첫해가 뜨는 날짜는 3월18일이다.

 지난 10월말 촬영한 노르웨이 북단 트롬쇠의 오로라. [신화사=연합]

지난 10월말 촬영한 노르웨이 북단 트롬쇠의 오로라. [신화사=연합]

지구 최북단에서 만든 북극 맥주.

태양이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1월 하순 북극권의 일상은 쉽지 않다. 트롬쇠 주변 바다는 적도 부근에서부터 올라온 멕시코만류의 영향으로 얼어붙지는 않지만 찬바람은 만만치 않게 매섭고 그칠 줄 모르는 눈보라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무척 고통스럽다. 필자도 빙판에 넘어진 적도 여러 번이고, 이제 아이젠은 트롬쇠 출장길에는 반드시 필요한 짐의 일부가 되었다.

트롬쇠에서 경험한 것 중에서 터널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눈이 많이 오는 곳이고 언덕이 많아 차량이동이 매우 불편했기 때문에 그들은 지하터널을 뚫었다. 터널에 들어가면 교차로까지 설치되어 있다. 이런 터널개발은 트롬쇠의 공학기술을 발전시키고 북극개발에 필요한 토목기술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소소한 즐거움도 있다. 이곳 트롬쇠에는 지구상 최북단 패스트푸드점과 1877년 창업한 최북단 맥주양조장인 맥(Mack)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철에 특히 일찍 문을 닫는 식당들과 달리 회의가 늦게 마친 날도 어김없이 한끼의 식사를 제공해주는 패스트푸드는 깜깜한 저녁이 되어도 이방인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는 버팀목이다. 물론 햄버거를 얻는 대가로 2만원 가까이 지불해야 하지만 말이다. 또 140년의 역사가 깃든 양조장에서 마시는 북극 맥주(Arctic Beer)는 맛도 맛이지만 이곳 북극인들이 가진 끈질긴 삶의 의지를 이어가게 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어갈 때마다 들리게 된다.

트롬쇠 지하터널 내 교차로. 날씨가 춥고 항상 눈이 쌓여있다보니 지하도로 교통체계가 세계 어디보다 발달했다. [사진 해양수산개발연구원]

트롬쇠 지하터널 내 교차로. 날씨가 춥고 항상 눈이 쌓여있다보니 지하도로 교통체계가 세계 어디보다 발달했다. [사진 해양수산개발연구원]

지치지 않은 북극 도전의 도시

북위 70도에 위치한 교통과 문화의 중심지 트롬쇠는 북극도전의 상징이 되고 있다. 북극서클(북위 66.5도) 내에 있는 도시 중 3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러시아 소재도시를 제외하면 가장 큰 도시이다. 또 음악과 축제가 연중 이어지고 순록경주대회를 위해 만든 눈 포장도로가 이색적이다. 그래서 별칭도 많다. ‘북극의 관문’‘노르웨이의 북극수도’라고도 불린다. 18세기 이곳을 방문한 유럽 여행자들은 예상을 벗어난 이곳의 세련된 패션과 예술에 놀라 ‘북극의 파리’라고도 불렀다. 현재는 북극문제를 국가 간에 논의할 수 있는 유일한 협의체인 북극이사회 사무국과 지속가능한 북극경제를 위해 기업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북극경제이사회 사무국, 그리고 북극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북극이사회원주민 사무국이 모두 트롬쇠에 있다. 북극의 정치, 경제, 사회 부문의 정보와 논의가 이곳에 집결되어 있는 것이다. 노르웨이의 영웅적 존재인 프리쵸프 난센박사의 북극 항행에 이용된 탐험선 프람호의 이름을 딴 프람센터 건물에는 노르웨이 극지연구소가 입지해 있다. 또한 지방대학이었던 트롬쇠대학을 노르웨이북극대학으로 확대함으로써 토롬쇠는 인재양성과 연구, 그리고 산업과 국제관계가 모두 모여진 진정한 ‘글로벌 북극수도’로서 역할을 넓혀가고 있다.

트롬쇠 시내에는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또 한 사람의 극지 탐험가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인류역사상 남극점을 가장 먼저 밟은 로알드 아문센이다. 남극에서뿐만 아니라 북극에서의 그의 발자취도 탁월하다. 그는 최초로 북서항로를 항행해낸 탐험가이며, 북극점을 비행선으로 정복한 최초의 인물이다. 비록 북극점 도보정복은 미국의 피어리에게 ‘최초’라는 수식어를 빼앗겼지만 그의 위대한 극지 도전은 노르웨이인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을 울린 도전은 그의 마지막 도전이었다. 같이 북극탐험을 했던 이태리 친구가 북극에서 조난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5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체없이 친구 구조에 나섰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탐험이 되었다. 오히려 조난을 당했던 친구 움베르토 노빌레는 구조되었지만. 아문센은 북극인답게 북극의 어딘가에서 전설 같은 마지막을 맞았다. 동상은 그의 업적에 비해 평범하지만, 결연한 모습으로 트롬쇠의 남쪽 겨울바다를 내려보고 있다. 조그만 나무 한그루를 휘감은 전구 불빛이 그나마 그의 따뜻했던 마지막 마음의 온기를 전한다. 그의 뜻대로 이곳 트롬쇠는 지치지 않고 북극을 향한 도전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트롬쇠에 있는 아문센의 동상.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트롬쇠에 있는 아문센의 동상.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북극프론티어즈와 북극협력주간.

노르웨이 정부와 트롬쇠 사람들은 태양이 돌아오는 1월22일의 의미를 세계인들과 나누고자 2007년부터 이날이 포함된 주간을 북극프론티어즈(Arctic Frontiers) 주간으로 정하고 북극에 대한 도전과 이해의 폭을 넓히는 국제콘퍼런스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북극을 둘러싼 정치와 정책, 산업과 과학, 사람과 문화가 주제인 이 콘퍼런스는 북극문제를 최고의 전문가들이 종합적으로 다루게 된 첫 시도였고, 아이슬란드의 북극서클회의(Arctic Circle Assembly)과 더불어 유럽을 중심으로 북극문제에 대한 지적 리더십을 구축했다. 이 콘퍼런스는 필자가 처음으로 북극권에 발을 딛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동시에 우리나라가 북극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3년간의 논의 끝에 한국도 마침내 북극에 대한 종합적인 논의기회를 마련하였다. 범정부 차원의 북극정책기본계획이 마련된 12월10일이 포함된 주간을 북극협력주간(Arctic Partnership Week)으로 정하고, 국내외 10여 개 기관이 참가한 가운데 해양수산부와 외교부가 공동으로 2016년에 첫걸음을 떼게 된 것이다. 가장 앞선 노르웨이보다 10년이 늦었지만 아시아에서는 최초의 일이었다. 지난 6월 북극협력주간과 북극프론티어즈가 공식협력협정을 체결한 이후 첫 북극협력주간이 오는 12월9일부터 ‘북극협력, 경계를 넘어’를 주제로 북극국가들과 한ㆍ중ㆍ일 등 10여 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부산에서 개최된다. 노르웨이가 주도하는 북대서양의 북극프론티어즈와 한국이 주도하는 북태평양의 북극협력주간이 서로 손을 잡음으로써 북극해를 사이에 둔 두 지역이 상호 보완적인 북극협력을 논의할 수 있는 체계가 완성된 것이다.

트롬쇠에서는 한겨울에도 반팔차림의 시민을 볼 수 있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트롬쇠에서는 한겨울에도 반팔차림의 시민을 볼 수 있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이번 북극협력주간에서는 한국이 추진 중인 북극협력을 위한 틀을 구체화하고 과학과 환경보전 논의는 물론, 북극항로와 조선협력, 그리고 북극이 제공할 수 있는 에너지자원에 대한 협력방안이 북극국가 대표자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협의할 것이다. 특히 이번에는 북유럽의 북극국가인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과의 수교 60주년을 맞아 북극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통해 양자 간의 협력도 더욱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지치지 않는 북극도전의 도시 트롬쇠와 맺은 인연이 북극의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조화로운 협력과 평화를 위한 큰 그림으로 나타나고, 한국의 북극정책을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⑧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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